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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계현 Oct 23. 2021

'완벽한 해결사'라는 환상

[심리상담 안내서] 선택과 책임

세 번째 직장을 그만둔 날, 그는 그동안 할까 말까 망설였던 상담을 바로 신청했습니다.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지요. 잦은 이직으로 들어오는 돈은 들쭉날쭉인데 돈은 꼬박꼬박 나가니 통장 잔고는 두 자리였고, 뜨뜻미지근했던 연애도 끝냈습니다. 나쁜 일은 왜 연달아오는 건지, 유일하게 내 편이었던 외할머니도 지난달에 돌아가셨습니다.


일도, 사랑도, 유일하게 안아주던 사람도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이제 남은 , 다음 달이면 적자가   뻔한 잔고,  소식을 알면 ‘그걸  버티냐 비난할 엄마, 초점 없이 천장만 보고 누워있을 나입니다. 한숨만 나옵니다. 뭐든 열심히 했던 그였기에 빨리 해결하고 싶다는 조바심도 납니다.



상담을 하면서 그동안 묵혀두었던 슬픔이 봇물 터지듯 나왔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날 지경인데, 상담자가 대놓고 이것저것 물어보니 기다렸다는 듯이 울어버립니다. 한참을 꺽꺽대며 울던 그는 조금 진정이 되어가자 저를 빤히 쳐다보며 묻습니다.


선생님, 저 이제 어쩌지요?


그렁그렁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순박하게 물어보니, 순간 저도 잠시 길을 잃었습니다. ‘어쩌냐’는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어떻게든 해결해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누군가의 딱한 사정을 알아버린 사람의 정상적인 반응이겠지요. 하지만 어찌해줄 수 없기에 저도 막막해집니다. 동시에 무력감도 느껴요. 상담자가 해결책을 제시해주기를 기대하는 그를 실망시킬까 걱정도 됩니다. 그게 상담자로서의 전문성을 해칠까 불안해지기도 해요.


말과 말 사이에 존재하는 단 몇 초, 그 짧은 사이로 막막함과 무력감, 걱정, 불안이 오갑니다. 그 안에서 제가 선택한 건 ‘있는 그대로 꺼내놓기’였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저 역시 막막해지네요. 뭔가 대신해줄 수만 있다면 좋겠다 싶기도 하고요.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제게 실망할까 걱정도 돼요.

근데 이런 감정이 지금 당신이, 당신 인생 앞에서 지금 겪고 있는 감정들이겠지요. 그래서 그 마음이 느껴져요. 얼마나 아플지”


대부분 사람들은 상담사를 만나면 ‘환상’을 품습니다. ‘내 이야기를 들으면 상담사는 해결책을 제시해주겠지. 다 알고 있을 거야.’ 이런 환상은 자신도 모르게 생깁니다. 지금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은 간절함도 있고, 상담사를 찾아오면서 수고했던 노력과 비용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도 있지요. ‘상담료가 얼만데, 돈 값은 하겠지.’


하지만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해주기를 원하는 환상은 금방 깨집니다. 상담사는 미적거리고 굼뜨고 뱅뱅 돌립니다.  ‘이럴 때는 이렇게 하세요’라고 속시원히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상황이 매우 위급하거나 내담자가 스스로 알아차릴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입니다. 대부분은 ‘내담자가 받아들이는 가’를 기준으로 단계적으로 합니다. 현재 상황을 ‘이해’하고, 어떤 ‘방법’이 있는지 안내받고, 그다음이 ‘선택’이지요.


- 현재 상황을 ‘이해’하기

지금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봅니다. 이건 상담에 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되었을 겁니다. 부족한 부분은 상담자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지금 상황을 한층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을 거예요. 상담자는 마음이 왜 극한까지 불안해졌는지, 그 마음이 어떤 연유로,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진 건지 찬찬히 설명합니다. 그 설명을 듣고, 그 말에 동의를 하는지를 또 물을 거예요. 내담자가 받아들이는 만큼만 다가가니까요. 상담자는 내담자가 걷는 속도보다 딱 반 발자국만 앞설 거예요. 언제라도 속도를 맞출 수 있게끔.


- 여러 ‘방법’을 안내받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방식만 고수하지요. 자신이 살아오면서 겪은 시행착오가 발판이 되니까요.

 

거짓말을 해서라도 얻은 이득이 많은 사람은 계속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게 그 사람의 생존 방식이 되어 버리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사기죄로 고소를 당해요. 거짓말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니까요. 어찌어찌해서 고소가 취하되었고, ‘다시는 거짓말을 안 하겠습니다’라고 맹세를 했지만, 그다음부터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을까요?


아뇨. 할 겁니다.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을 바꾸는 건 쉽지 않거든요. 그게 익숙하니까요. 그런데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비슷한 이득을 얻는 방법이 있다면, 그런 방법을 소개받는다면 어떤가요? 한 번쯤은 생각해보겠지요. ‘경찰서 들락거리기도 귀찮은데, 아, 이런 방법도 있구나~’하면서요.


좌절감은 대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어. 그래도 안 돼 잖아. 더 이상 방법이 없어.’하면서 찾아옵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내가 살아오지 않은 인생, 시행착오도 존재하니까요. 때로는 내가 해온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희망’이 자라납니다.


내담자의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알려줍니다. ‘저라면 이렇게 하겠어요’를 포함해서,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해요’, ‘이렇게 하는 사람도 있고요~’하면서요. 그리고 각 방법을 취했을 때의 장단점, 예상되는 난관도 이야기합니다.


- 스스로 ‘선택’하기

그다음이 ‘선택’입니다. 정확하게는 내담자가 스스로 자신이 행할 방법을 선택합니다. 상담자가 제시한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아, 제3의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거대로 괜찮습니다. 내담자가 실천하기로 마음먹은 방법이 어떤 득이 있고, 실이 있을지를 함께 의논합니다. 잘 되지 않을 때 어떻게 할지, 대체할 방법은 있는지도 말합니다.


중요한 건, 상담에서 결정적인 부분은 내담자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책임을 집니다. 이건 너무나 중요합니다. 책임을 져야 ‘내 인생’이에요.


어찌 보면 ‘상담자가 완벽한 해결책을 말해줄 거라는 기대’는 의도적으로 실망시켜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간절하게 묻는 내담자에게 그를 ‘실망시키는 위험’을 무릎 쓰고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당장 결정하기는 어렵겠죠. 앞으로 찬찬히 해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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