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노애락 / 현실과 이상 사이

by 차이

올 한 해 직무 성과에 대한 평가 의견서를 받았다.

첫 느낌은 한마디로 '망했다'였다.

나를 싫어하는 누군가가 평가위원으로 들어왔구나 싶어 짜증부터 났다.


그런데 하나씩 뜯어보니 결국 한 사람이 쓴 의견이었다.

그리고 우리 팀이 못하고 있는 부분을 너무 당연하게 지적해 놓아서 점점 납득이 가기 시작했다.


그래. 누가 우리 팀 업무에 대해 이렇게 구체적이고 귀한 의견을 주겠나.

단순히 못하고 있다는 질책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통찰을 제공해주고 있었다.


찬찬히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 의견을 이행하다 보면 우리 팀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과거에는 '양적인 성과'를 중요시했다.

기관평가의 지표가 그랬기 때문에 다양한 채널에서 많은 실적을 내는 것이 목표였다.

그래서 없는(인력, 예산) 살림에 나름 열심히 했지만 질적인 지표들은 놓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나의 고민도 여기에 머물러 있었다.

홍보 업무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이유.

그건 우리가 질적 차별화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평가 의견서는 바로 그 지점을 정확히 짚고 있었다.


하지만 가용 인력과 예산 내에서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또 멈칫하게 된다.


팀의 역할부터 다시 정립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기엔 역시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내년에도 내게 배정된 인원은 비정규직 1인이 전부다.

그마저도 이직하면 다시 공백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도 사업 계획을 질적 성장을 위한 지표로 가득 채울 수는 없다.


아직도 배워야 할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따라 구조적 한계가 더 뼈아프다.


그래도 늘 혼자서 좌충우돌하며 앞으로 나아가던 것처럼

더디더라도 옳은 방향을 향해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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