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제법 잘 지내요
어제 밤늦게 운전을 했다. 이틀 연속 야간 운전이라니 아이고 되다! 연휴라서 애매한 시간에 운전대를 잡았다가 더 골치가 아플 것 같아 아무도 움직이지 않을 시간대를 골랐더니 차는 안 막히는데 내가 너무 힘들었다.
커피를 사고 싶었는데 엄마집 근처에는 흔하디 흔한 메가,빽,벤티등등이 없다. 편의점 커피를 싫어하는 나는 결국 에너지드링크 하나를 집어든다. 9시 30분에 출발해서 12시에 도착! 평소 같았으면 휴게소에 들를 텐데 남편이 없으니 나와 아이는 논스탑으로 집에 도착했다. 너무 힘들고 피곤한데 저런 오늘이 그날이구나... 싶었다. 잠이 오질 않는다. 분명히 졸린데 정신이 또렷하다. 공부할 때는 그렇게 마셔대도 눈이 감기더니.. 결국 마지막으로 확인한 시간이 새벽 3시.. 몇 시에 잠이 든 건지 기억나지 않는다.
오늘은 조카의 생일파티날! 점심에 만나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다. 어제 분명 늦게 잠들었는데 왜 새벽 6시 반에 눈이 떠지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에너지드링크가 아직까지 열일 중인가 보다. 다시 잠에 들어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효과가 없다. 비몽사몽간에 그저 누워있었다. 뭉그적 뭉그적 최대한 늦게 일어난다. 이틀간 비운 집은 뭔가 너저분해 보인다. 정리를 해야 하는데 여전히 비몽사몽 몸이 느리게 움직인다.
역시나 느릿느릿 준비를 하다가 약속 시간에 늦을 위기에 처했다. 톤업과 보정효과가 있는 선크림만 대충 문질러 바르고 머리를 말린다. 말렸는지 안 말렸는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걸어갈 시간이 없어 마을버스에 급히 오른다. 선물은 그냥 내가 좋아하는 운동화를 샀다. 그리고 다 함께 식사를 무사히 마쳤다.
식당을 빠져나오니 해가 난다. 오전에는 구름이 좀 끼었나 싶었는데 이제 완전히 여름이 되었다. 배도 부르고 날은 덥고 사그라들었던 졸음이 다시 몰려온다. 다 함께 어머니네로 가서 조카의 생일 케이크에 촛불도 붙이고 노래도 부르자고 한다. 어머니네 식구, 우리 식구 그리고 형네 식구가 함께 오손도손 걸어간다. 우리 모두 서로 걸어서 5분 거리에 산다. 어머니네를 기준으로 형네가 길 건너 단지에 살고 우리는 구름다리(육교)를 건너면 있는 아파트에 산다. 동네에서 만나면 다 함께 걸어서 이동을 하니 편하고 좋다. 각자 식당으로 모여서 밥을 먹고 뿔뿔이 흩어진다.
같은 동네에 산지 3년이 다 되어가지만 길에서 마주친 적은 한 손에 꼽는다. 시댁이랑 걸어서 5분 거리에 산다고 얘기하면 다들 깜짝 놀라지만 어머니의 배려 혹은 무심하심 덕분에 불편함 없이 살고 있다. 급할 때 아이를 맡길 때는 오히려 도움이 되니 감사한 마음이 더 크다. 한 번은 오전에 운동을 하러 가는데 뒤에서 누군가 내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워낙 동네에 아는 사람도 없고 길을 걸을 때도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가는 스타일이라 계속 걷는데 아이 이름이 한 번 더 들려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를 돌았더니 산책 중인 시부모님이 뒤에 계셨다.
서로 운동을 가는 길이니 만났어도 대화가 길지 않다.
"산책 가세요?"
"응, 너는 운동가니?"
"네, 잘 다녀오세요."
"그래."
한 동네에 살게 된다고 생각했을 때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미리 상상하며 살짝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있었다. 혹시나 시부모님과 너무 자주 만나게 되는 건 아닐까? 그동안 가까이서 만나지 못한 만큼 뭔가 원하시면 어떡하지? 등등 말이다. 내 걱정들은 다행히도 기우에 불과했고 시부모님은 이삿날 빼고는 집에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으시다. 시어머니를 쿨하다고 표현하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다른 분들의 고부관계 스토리에 비하면 아주 훌륭하시다.
오늘도 어머니는 케이크에 초를 꽂고 노래를 부르고 아이들이 케이크를 다 먹자 바쁘게 "이제 너희들 집으로 가라"를 외우신다. 조금 더 있다가 갈래? 저녁까지 먹고 갈래?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점에서는 일등 시어머니 일지도 모르겠다. 애들은 더 놀고 가겠다며 아우성이고 오늘이 조카의 생일파티 모임이었던 만큼 어머니께서 한발 물러서신다.
그런 와중에 내 눈은 서서히 감겨 나도 모르게 단잠에 빠졌다.
"일어나! 이제 가야지!"
시부모님, 형네 식구 그리고 우리 식구. 9명이 다 함께 가족타임을 가지는 동안 나만 꿈나라에 다녀왔다.
"어제 친정에 다녀오느라 좀 피곤해서요."
멋쩍게 웃으며 이해를 바라는 눈빛으로 어머니를 바라본다. 어머니가 씩 웃으시며 어서 가보라고 손을 저으신다. 부모님께 받아온 이런저런 보따리 꾸러미 속에 쑥떡이 있다. 시댁 식구들과 나눠먹으라고 꽁꽁 얼려 싸주신 쑥떡을 들고 다시 와야겠다. 어머니네서 단잠을 잔 덕분에 야간 운전의 피로가 싹 풀렸다. 이러나저러나 우리는 가족. 이러쿵저러쿵 따지지 말고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