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14년째 같은 사람과 어떻게 행복할 수 있냐고 내게 물으며 의아해했다. 나에게는 내 남편, 내 남편에게는 나를 일컫는 질문이다.
나는 남편과 7년 연애 후 일찍이 결혼했고 결혼 7주년이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에 등 떠밀려 슬그머니 다가오고 있다. 이제서야 30대 초반을 들어선 우리에게 14년의 세월은 꽤 긴 시간이다. 내년이면 서로의 삶에 들어서기 전과 후의 시간이 동일해질 거고 내후년이면 서로의 존재를 알고 난 이후의 시간이 더 길어지는 셈이다. 이제 슬슬 서로에게 지루해질 법도 한데 행복하냐는 질문에 나는 확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행복하다며, 그리고 매일 더 행복하다며.
이제 연애하기 시작한 커플에게 흔히들 콩깍지가 씌었다는 말한다. 상대방에게서 보아야 할 것은 보지 못하고, 보이지 않아야 할 건 보인다는 의미이다. 14년 전, 훨씬 더 젊었던 내 눈에 만약 콩깍지가 붙어 있었다면 그건 이미 떨어진 지가 오래되었을 것이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중에 있었던 여러 다툼, 성격 차이, 환경 차이 같은 것들이 그 콩깍지를 한 꺼풀씩 벗겨냈다. 지금의 나는 내 남편의 잘난 점과 못난 점을 아주 정확하게 잘 알고 있다. 특히 결혼하고 나서는 갈수록 못난 점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우습지만 나는 아직도 남편에게 설렌다. 멀리서도 알아보는 내 남편의 얼굴, 목소리, 성격, 눈감고도 알아맞힐 수 있는 그의 향기가 내게는 너무나 익숙하다. 그 익숙함은 나에게 편안함을 느끼게 하고 이러한 편안함 속에서 설렘이 조용히 고개를 든다. 지나가는 나날들 속에서 서로 화를 내고, 실망도 하고, 슬픔을 나누지만, 이러한 상황이 지나고 나면 행복한 순간이 곧 찾아온다는 확신이 있기에 편안하고 그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우리 일상 속의 행복함이 언제나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에 설렌다.
사실 많은 이들이새로운 것에 설렘을 더 많이 느끼는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에게 익숙해질수록 새롭게 느껴지는 것들이 줄어든다. 역시나 설렘은 편안함보다는 불안감, 특히 모르는 것에 대한 긴장감, 짜릿함 등에 더 기반한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그 익숙함은 쉽게 하게 되는 착각인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늘 상대방을 간파했다고 곧잘 생각한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나만의 분석과 파악이끝나고 나면, 세워놓은 나의 기준대로 늘 그 사람을 정의한다. 가장 슬픈 것은 상대방이 내가 정한 기틀에 걸맞지 않은 행동(좋은 행동이든, 나쁜 행동이든)을 할 때에는 그 행동에 대한 새로움은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엉뚱함을 느끼며 의외라고만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14년이라는 세월 동안 거의 매일 본 내 남편도 나도 끊임없이 14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변화해 왔다. 그래서 나는 익숙한 내 남편의 아주 미세한 변화가 새롭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새롭다. ‘우리’가 매일 새롭다.
역시 나는 사람은 늘 변화하는 존재라고 믿는다. 변화하므로 늘 새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새로움을 가볍게 지나치거나 눈치채지 못하는 게 아니겠냐는 생각이 든다. 상대방의 아주 작은 성장과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설렘은 늘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나만의 그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언제나 새롭고 설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