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대신 닭?

속리산(문장대-천왕봉-법주사) 대신 청남대

by 난달

올해는 주말마다 비가 오는 듯하다.

하늘은 주말 산악인의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눈물 같은 빗방울을 꼬박꼬박 뿌려댄다.

나는 새벽까지 창밖을 두드리는 어둠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쩌면 이 비가, 어둠과 함께 녹아 사라져주기를…
그러나 바람은 통하지 않았다.
아침까지도 비는 쉬지 않고 내렸다.

조금 다행스러웠던 건,
기상 예보상으로는 속리산 도착 예정 시각인 10시경에는
강수 확률이 현저히 낮다는 것이었다.

비가 오는 중에도,
게다가 황금연휴임에도 불구하고,
최종 신청자 37명 전원이 단 한 명의 결원도 없이
버스에 올랐다.

빗속에서도 약속을 지켜준 이들의 마음이
차가운 빗줄기보다 더 따뜻하게 가슴에 스며들었다.

“속리산에 도착하면 비가 그치겠지…”
작은 희망을 품었지만,
속리산에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비는 더 거세졌다.
희망도 비에 젖어 조금씩 무거워졌다.

속리산은,
이상하게도 인연이 잘 닿지 않는 산이다.(주변 속리산 자락의 산은 많이 갔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문장대와 천왕봉이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 때 들렀던 법주사,
정이품 소나무를 품고 있는 산.
하산길에 그 풍경을 다시 보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그 기억은 꺼내기만 하고 되짚을 수 없었다.

우리는 안전을 위해, 다른 선택을 해야 했다.

대통령의 별장이었던 청남대로 향했다.
한때 독재자의 정원이었으나,
지금은 국민 모두에게 열린 정원으로 바뀐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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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남대 풍경

존경받지 못한 권력의 그림자와
존경받았던 이의 고독이 뒤섞인 청남대.
그 밝고 어두운 무늬들이
마치 잔잔한 호수에 흩뿌려진 송화가루처럼
고요히 스며 있었다.

호수변 산책길을 따라 걷는 동안
비는 점점 잦아들었고,
함께 걷는 이와의 대화는 점점 풍성해졌다.

지난 산행의 추억들,
군대 시절 고참과 쫄병 이야기,
또 누군가는 오래 묵혀둔 걱정을,
어떤 이는 요즘 본 드라마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그 모든 이야기들이 빗소리에 실려
조금 더 다정하게, 조금 더 가까이
우리 사이를 흘러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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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5900.jpeg 산불감시탑에서 내려다 본 조망

약속된 시간.
청남대 산책길도 또 한 줄의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
황 명예회장님의 추천으로 들른 삼겹살집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과 소주로
우리는 다시 한 번 크게 웃으며 즐거워했다.

비에 젖었던 옷은 여전히 눅눅했지만,
마음만은 뽀송뽀송하고 환하게 마를 수 있었다.

속리산은 결국 가지 못했지만,
우리의 여정은 멈추지 않았다.
회의 끝에 속리산코스는 다음 산행지로 다시 정해졌고,

희망이 언제나 그렇듯,
한 줄기 빗물처럼 조용히 이어진다.

다음 정기 산행 때엔—
부디, 비가 오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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