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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다 하나씨 Jul 04. 2024

향(香) 숲

향이 우거진


제조가 예술이 됩니다


마을의 모든 길, 마을 회관 마당, 집 마당뿐인가요

빈 땅의 구멍이 보일세라 진꽃분홍 향 다발들이 소복이 피어나서

'향의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Làng Hương Quảng Phú Cầu,

꽝 푸 꺼우 마을

100년의 세월을 담은 '향(香, incense)'이 진동하는 곳입니다.


제조를 하는 곳인지 예술을 하는 곳인지 헷갈리는 이곳에 잠시 발길을 멈추게 됩니다.


온 마을에 향(香) 꽃이 피었습니다


베트남인이 실생활에서 오토바이만큼 많이 사용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온 집집마다의 향로에서 아침저녁으로 타오르는 ‘향(香)’입니다.  


이들이 믿는 신과 조상을 기리고 공경을 표하고 복을 기원하는 데에 사용되는 향은 베트남 온 나라의 종교적, 문화적, 사회적 맥락에서 아주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으니까요.


불교와 도교의 종교적 의식에 사용될 뿐 아니라, 명절이나 기일이면 제단에서 향을 피우며 조상들을 추모합니다. 베트남의 설날인 뗏(Tết) 기간 동안에는 집 안에 향을 피워 조상들과 신에게 한 해의 복을 기원합니다.

가족의 결속과 전통을 상징하는 결혼식, 장례식, 중요한 가족 행사에서도 향은 빠질 수 없죠. 특정 향은 악귀를 쫓거나 행운을 불러오는 것으로도 믿어져 부적처럼 기원 의식에서 사용됩니다. 향을 피워 실내 공기를 정화하거나, 휴식과 명상을 돕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는데, 향의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효능이 있다고 믿어집니다.


대부분의 모든 집과 모든 상업 공간마다 설치된 가정 제단 때문에 매일 향을 피우는 시간에 잘못 맞춰 들어갔다가는 코를 찌르는 향 냄새에 숨이 막혀 옷가게 옷을 구경할 수 없는 때도 많답니다. 옷 구경은 커녕 잠시만 들어갔다 나와도 머리카락부터 옷에 향의 향이 배어 버리곤 하죠. 때로는 향 냄새 가득 베인 새 옷을 굳이 사 와야 하는 웃픈 경우도 있구요. 모든 아파트에는 공동 제단이 있어 가짜 돈다발을 태우고, 종이 말을 태우고, 태울 수 있는 그 무엇들은 각자의 의미를 담고 타오릅니다. 매일 향을 피우지만 특히 매월 초하루, 음력 보름이면 온 나라는 평소보다 더 진한 하얀 연기에 휩싸입니다. 문을 열고 나서면 재가 날려 눈앞은 희뿌옇고 종이 태우는 냄새가 코 끝을 튕깁니다. 오토바이 매연도 모자라 지구 온난화에 가속을 가하는 이들의 열성적 관습이 참 염려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떡하나요. 외국인의 시선엔 염려가 가득해도 베트남인의 시선 속에는 기원에 대한 열망이 가득하니까요... 심지어 매월 초하룻날은 관습상 미수금 결제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돈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에겐 좀 별로인 날이지만 빚쟁이들에게는 한 달 중 가장 행복하고 평안한 날이 되지요.


아파트 앞 공동제단의 불이 활활 타오릅니다





향(香)의 숲,

그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깊이 들어갈수록 작업 분위기는 점점 더 급박해지고 분주해집니다. 그녀들의 규칙적이고 빠른 손놀림은 착착 소리를 내며 일사천리로 향을 제조해 냅니다. 그런데 만들어 내는 것이 제품이 아니라 예술이 되는 마을입니다. 마치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을 보는 것 같습니다.


대나무를 쪼개는 소리, 대나무에 분칠 할 때 날아 내리는 꽃분홍 가룻 소리, 막대를 묶는 소리, 작은 목소리로 주고받는 대화 소리, 향 다발을 말리기 위해 정돈해 나가는 배열 하며 그와 함께 향막대에서 뿜어 나오는 냄새까지 한데 어우러져 꽝푸꺼우 마을은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독특한 광경을 만들어냅니다.


막대를 깎고, 가루에 막대를 굴리고, 끝머리 부분을 염색하고, 말리고 포장하는 모든 과정에 그녀들의 세심함은 깊이 배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천연 재료(침향, 소나무, 자단, 백지, 파초향, 팔각, 계피, 나무 송진, 향나무 뿌리, 고목탄등의 가루)를 독특한 혼합 비법으로 섞어 그 가루를 막대에 고르게 묻도록 하는 과정이 아주 중요합니다. 가볍지만 단단하게 굴려야 고루 향을 입은 제품이 되기 때문이죠. 가루가 뭍은 향을 1차 건조한 후 다양한 색으로 물들입니다. 충분히 햇빛에 말려야 곰팡이가 생기지 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기에 자연 건조의 과정에 가장 심혈을 기울입니다.



꽝푸꺼우 마을의 아름다운 향과 색이 백 년이 넘도록 지속되게 하는 것은 모두 향숲 여인들의 세심한 손길 덕택입니다.



향을 생산하는 여성들의 노동은 고됩니다.

"Bán mặt cho đất, bán lưng cho trời", "얼굴은 땅에 팔고, 등은 하늘에 판다"고 하는 그녀들의 우스갯소리가 있지요. 그녀들의 노고 속에서 전통과 예술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제조의 공정이 끝나면 곧 국내로 해외로 판매될 향 다발들로

베트남 국기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지도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 재치만점 향숲의 여인들입니다.

향을 건조할 뿐인데 한 마을을 예술의 캔버스로 만들어 버립니다.


노동마저도 예술이 되게 할 일인가요.

베트남인들 안에는 미적 유전자가 디폴트로 깔려 있는 게 분명한 듯합니다.


향이 우거진

꽝푸꺼우 ‘향(香) 숲’에서

붉은 노을은

땅 위에 물듭니다.







Photos are extracted from:

https://www.vietnam.vn/

https://vinpearl.com/vi/lang-huong-quang-phu-cau-ha-noi

https://baodautu.vn/anh-lang-tam-huong-quang-phu-cau-diem-check-in-doc-dao-o-ngoai-thanh-ha-noi-m21073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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