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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다 하나씨 Jul 18. 2024

비디오 아트에 역사가 담길 때

Rolex 멘토와 프로테제


예술은 때로
현미경의 대물렌즈가 되는 듯합니다.

초점 거리가 지극히 짧은
예술의 렌즈를 통해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표본의 화상은 확대되고
 그 속에 아려있는 아픔은
정밀하게 보이기 시작하니까요.


베트남 역사의 아픔을 깊이 들여다보고 기억하고 상처받은 이들을 돌아보려 애쓰는 젊은 예술가가 있습니다.

그녀는 시각 멀티미디어 예술가로 회화, 영상, 설치 미술을 아우르는 작업을 하며 베트남과 해외에서 많은 전시회를 가졌습니다. 그녀는 베트남의 역사, 관습, 전통 속의 모호한 문제들을 관찰하면서 질문하고 조국의 격동적인 과거를 언급하며 시사점을 끄집어냅니다.

Role(Rolex Ment

Thảo Nguyên Phan(타오 응우옌 판)의

[Mute Grain], ‘무언의 곡식’이라는 비디오 아트를 소개합니다.


롤렉스 멘토 앤 프로테제 아트 이니셔티브(Rolex Mentor and Protégé Arts Initiative)의 지원과 함께 샤르자 미술 재단(Sharjah Art Foundation)의 의뢰로 제작된 3 채널 비디오 아트입니다. 2019년 제14회 샤르자 미술 비엔날레에 전시되었던 작품입니다.


Three-channel video

Director of Photography: Le Vu Anh Huy

Producer: Truong Cong Tung

Music: Nhung Nguyen (Sound Awakener)

Commissioned by The Sharjah Art Foundation with additional support from the Rolex Mentor and Protégé Arts Initiative

First installed at the 14th Sharjah Art Biennale, Leaving the Echo Chamber, 7 March - 10 June, 2019

and Protégé ArtsIMute Grainnitiative)의 x Mento and Protégé Arts Initiative) eMute Grainx Mentor and Protégé Arts Initiative)


15:45 mins, loop, black and white, 2019

(Rolex Mentor and Protégé Arts Initiative)


1940년 9월, 일본은 하노이와 하이퐁을 지나 운남성 쿤밍시까지 이어지는 쿤밍-하이퐁구간 철도를 장악하여 중화민국으로 무기와 연료가 공급되는 것을 막기 위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침공을 실시합니다.

일본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점령(1940~45)하는 동안 발생했던 베트남의 기근으로 인해 북베트남의 홍강 삼각주에서 200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참혹과 상처의 실체를 담아내는 비디오 아트 작품은

그 시절 베트남의 기근에 대한 작가의 해석을 담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고통이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그녀의 질문이 가슴속을 파고듭니다.

몇 자로 압축되어 전해져 오는 역사적 고통의 기록은 어린 그녀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그 사건들이 어떻게 취급되는지, 어떻게 잊히는지,

과연 역사는 어떻게 해야 영광스럽게 남을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하고 질문합니다.

흑백으로 발산되는 아픔의 무게를 지고 선 아이들의 주머니에서 반딧불이 같은 빛이 반짝이고 있듯

베트남의 잊혀가는 역사를 아름다움으로 끄집어내는 그녀의 결과물들이 마음을 잡아당깁니다.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그녀의 비디오 아트와 인터뷰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My reflections on the history of Vietnam, the poetry of daily life' | Tate

https://www.google.com/search?q=thao+nguyen+phan&sca_esv=458fc5d25ecd7a59&rlz=1C1MRIB_koVN1111VN1116&sxsrf=ADLYWIKCK2_3ODUKz776xWNijTFY3IJY5Q%3A1720827963738&ei=O8CRZpbjLLyvseMPidG-CA&oq=thao&gs_lp=Egxnd3Mtd2l6LXNlcnAiBHRoYW8qAggAMgoQIxiABBgnGIoFMgUQABiABDIFEAAYgAQyBRAAGIAEMgUQABiABDIFEAAYgAQyBRAAGIAEMgUQABiABDIFEAAYgAQyBRAAGIAESIQRUABYmwNwAHgBkAEAmAFroAH8AqoBAzIuMrgBAcgBAPgBAZgCBKAClAPCAgQQIxgnwgIKEC4YgAQYQxiKBcICCxAuGIAEGMcBGK8BwgIFEC4YgASYAwCSBwMyLjKgB6ks&sclient=gws-wiz-serp#fpstate=ive&vld=cid:8bfc081d,vid:H5y-uYcBk4k,st:321


그녀의 이력을 둘러보는 동안 흥미로운 경력이 하나 있었습니다.

Rolex 멘토와 프로테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것인데요.

타오 응우옌 판은 이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그녀의 멘토가 된 뉴욕 출신의 아티스트 조안 조나스(Joan Jonas)와 교류하며 예술의 세계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시계로만 유명한 브랜드인 줄 알았는데 로렉스에서 예술계를 위한 이런 활동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로렉스가 앞서 대가가 된 선배들을 통해 젊은 예술가들이 세계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이런 프로그램을 지속하고 있었다니 다시 보게 됩니다.


Rolex 멘토와 프로테제 프로그램은 예술계의 신진 인재 발굴과 육성을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젊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가들로부터 지식과 경험을 배울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음악, 문학, 연극, 무용, 시각 예술,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시되며, 선정된 젊은 예술가들(프로테제)은 멘토와 함께 일정 기간 동안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창작 활동을 진행합니다. 세계적인 대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젊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기술을 향상하고, 창의적인 영감을 얻으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멘토와 프로테제 간의 관계는 단순한 기술 전수를 넘어서, 멘토가 프로테제의 창작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때로는 함께 작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젊은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목소리를 찾고, 예술 세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습니다. Rolex 멘토와 프로테제 프로그램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으며, 참여한 젊은 예술가들 중 많은 이들이 후에 자신의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세계 각국의 예술가 중 베트남 대표로 뽑힌 작가는 바로 타오 응우옌 판이었습니다. 젊은 예술가들에게 자신이 나아가려는 분야에 조예가 깊고 경험이 풍부한 멘토가 생기는 일은 정말이지 흥분되고 행복한 일일 것 같습니다. 앞서가는 선배이자 멘토의 작업실에서 그저 멘토가 사용하는 물건과 재료들, 읽고 있는 책과 관심사 등을 구경하는 것만도 너무나 흥미로운 일일 테니까요. 뉴욕, 스페인, 이탈리아, 인도에 위치한 조안 조나스의 스튜디오를 오가며 배우고 소통하게 되며 베트남도 함께 방문하여 베트남의 역사와 그녀의 예술을 더 세밀히 관찰하며 발전 시 키데에 도움을 줍니다.


Rolex entor ad Protéé Arts Initiati




[그녀의 멘토인 조안 조나스는 세계 문화를 발굴하며 기원 설화와 문학 형식, 고대 및 현대 미디어를 융합한 작품을 창조해 낸 아티스트입니다. 조안의 선구적인 예술 형식에서 영감을 얻은 타오 응우옌 판은 시에 담긴 직관에 기술을 결합하는 기법을 계승했습니다. 소리, 음악, 움직임, 무용, 그림, 움직이는 이미지를 레이어링 한 그녀의 영향력 있는 실험은 관객들이 좀 더 복합적인 방식으로 작품과 교감할 수 있게 했으며, 그 과정에서 선구적인 공연과 비디오 아트가 탄생하는 데 기여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Poetic Amnesia (시적인 기억 상실)

Tropical Siesta, 열대의 낮잠


2017

Double-channel synchronised video

13:41 mins (loop), HD, colour, sound


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tropical-siesta-0003/sQF46ADyCBQOFw?hl=ko

이 비디오 아트 영상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혹은 반대로) 이동하며 촬영하는 패닝 기법으로 제작된 이중 채널 동기화 방식의 영상입니다.

정치적 의제와 사회적 무관심으로 휩싸인 베트남 문화 환경에서 진실에 대한 질문에 사로잡힌 타오 응우옌 판은 마치 마술사가 과학과 미신, 논리와 환상 사이를 오가는 것처럼 자신의 예술에 접근합니다.

그렇기에 보편적이고 순차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기에는 난해한 작품입니다.


작품은 베트남 역사의 어두운 시기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1950년대 북베트남 공산당 정부는 사유지, 상업, 무역을 근절하여 집단주의 원칙에 따른 농업 생산 향상을 추구했습니다. 남북통일을 이루고 농업과 경제를 활성화시킨 호찌민 주석의 큰 업적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이들이 존엄과 생계를 잃었던 다른 한 편의 시선은 다를 수 있습니다. 이는 여전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이기에 국가 교육 과정에서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작가의 '시적인 기억상실'을 통해 우리는 이 금기된 풍경을 엿볼 수 있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흥미 포인트가 됩니다. 역사적 픽션으로 외국 아카이브에서 발견된 정보를 수집하여 역사적 트라우마를 가진 자들의 이야기에 대해 그녀의 렌즈를 통해 전하고 있습니다.


영상은 베트남 시골 논밭의 고요한 풍경에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자급자족하는 농촌 공동체에서 아이들은 농사를 지으며 버려진 황폐한 초등학교에서 스스로 공부합니다. 아이들이 '열대의 낮잠'을 자는 시간을 그린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보이는 회화 속에서 교실의 나무 책상 위에서 낮잠 자는 아이들 위로 떠다니는 한 아이의 형상이 나타나고, 여러 죽음의 형상이 마치 유령의 집과 같은 느낌으로 연출됩니다.


아이들은 유일한 교과서였던 알렉산더 드 로드(Alexander De Rhode)의 책에 쓰인 1651년의 '통킹 왕국의 역사'에서 이야기를 가져와 가짜 게임을 연출합니다. 아이들은 이야기들을 자신들의 관심사에 맞게 변형하고 조작합니다. 아이들은 '범죄와 처벌'에 대한 드 로드의 관찰을 희화화하는 놀이를 합니다. 죄수들이 목에 나무 장치를 하고 구걸해야 한다는 내용을 읽고서 아이들은 사다리를 목에 걸고 걸어가며 이 장면을 연출합니다. 다음으로 '물의 여신'이라는 구전 설화를 다룹니다. 아버지에 의해 익사당하고 눈도 감지 못한 채 떠난 중국 공주의 시신이 우연히 마을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후에 '퀸즈 게이트'로 불리게 되는 구전 설화 내용을 아이들은 변형합니다. 왕실 의상을 입고 발견된 공주의 죽음을 벌거벗은 채 땅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농촌 마을 사람의 모습과 대조시킵니다. 이러한 가짜 놀이는 아이들에게는 지루한 농촌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고, 그것에서 목적성을 경험한 어른들에게는 역사적 무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그들의 꿈과 밤을 밝히는 해바라기 조형물과 비둘기에 반영되게 되지요. 재생과 행운을 상징을 담아서요. 마지막 씬은 실제 소녀가 하품하는 모습으로 끝맺습니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 정치와 죽음, 권력의 세계 안에서 대비되는 부와 가난의 모양, 그럼에도 남아 있는 시골 생활의 순수성 등의 관계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타오 응우옌 판 작가의 메시지는 우리의 신화가 재해석되지 않고 아카이브가 부재할 때,

우리가 과거의 꿈과 두려움을 인식하는 것을 잊어버린다면

우리의 인간성과 상상력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다른 현재를 알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Becoming Alluvium (충적층이 되어가다)


충적층(Alluvium)은 하천에 의해 퇴적물이 쌓여서 생긴 굳지 않은 퇴적층을 말합니다.

그저 제목을 통해서만도 느껴집니다.

그녀가 무얼 이야기하고 싶은 건지요.

모래, 진흙, 점토, 자갈 등이 쌓여 퇴적층이 되어 굳어버리기 이전,

바로 충적층의 상태에서는 역사도 아픔도 다시 날려버리고 다시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겠지요.


2019-ongoing

Single-channel colour video,  16 mins, 40 seconds

Produced by the Han Nefkens Foundation


https://mubi.com/en/films/becoming-alluvium/trailer


메콩강을 타고 흘러 온 고통이 축적되며 발전해 온 역사에 대한 작가의 연구를 담은 단일 채널 컬러 영상입니다. 그녀의 시각 언어를 통해 전달되는 영상의 의미를 발견하기까지 꽤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여러 번 반복 재생해 본 후에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저건 나도 할 것 같은 쉬운 예술도 있지만 봐도 봐도 이해 하기 힘든 어려운 예술도 있지요. 하지만 어느 모양이든 담고 있는 의미의 깊이가 깊기에 예술이라 불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영상은 3부로 구성됩니다. 1부에서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의 『정원사(The Gardener)』시를 인용하며 댐 붕괴로 인한 마을 사람들의 죽음과 환생을 다룹니다. 인간과 자연 우주의 통일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2부는 메콩강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고, 마거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의 작품 『연인』을 낭독하는 보이스오버를 결합합니다. 이 부분은 다큐멘터리적이면서도 서정적인 톤을 갖고 있습니다. 마지막 3부는 크메르 민담을 다시 들려주며, 인간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재현해야 한다는 주제를 다룹니다. 이를 위해 작가는 19세기 프랑스 탐험가 루이 델라포르트(Louis Delaporte)의 삽화를 활용하고, 목이 잘린 크메르 조각상에서 영감을 받아 독특한 캐릭터를 그려냅니다.  


 우화를 통해 농업 확장, 남획, 도시 이주 등으로 인한 환경적, 사회적 변화를 탐구합니다. “메콩 문명은 물질성 측면에서 벼 문명의 강, 영성 측면에서 불교의 강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라고 판은 설명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연민과 마음 챙김의 가르침과는 달리 실제로 메콩강이 흐르는 땅은 극심한 격동과 갈등을 경험합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강물에 대한 인간의 개입은 너무나 폭력적이어서 강물 흐름의 성격과 주민들의 운명을 영원히 바꿔 놓았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며 그녀의 렌즈

속에서 그것들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충적층(Alluvium)에 내재된 이미지를 베트남의 역사와 예술에 결합시킨

작가의 깊은 생각의 미로 어딘가에 서 있는 듯한 기분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https://www.thaonguyenphan.com/


https://www.rolex.org/ko/rolex-mentor-protege/visual-arts/recovering-the-p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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