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돌리면서도 꾸준히 주목받는 주제
"내 누드 그림은 단지 지나간 시대의 개념일 뿐"
이라고 부이 쑤언 파이 작가는 농담하곤 했습니다.
누드화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서양 미술에서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서양의 누드화라 하면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거장들이 그린 누드 이미지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이 시기의 예술가들은 인본주의자로서, 삶의 가치를 높이고 인간을 역사적 주체로 찬양하는 정신을 작품 속에 표현했습니다.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그려진 그들의 누드화는 매우 정교하고 사실적이기까지 하지요.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는 유교적 세계관으로 인해 누드 이미지는 터부시되고 높이 평가되지 않았습니다. 주로 여성을 모델로 한 누드 그림이 성적 대상화가 되는 것에 비판적 시각이 발생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주제 중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감상하고 그리기를 좋아하지만, 어떤 이들은 언급하기만 해도 고개를 저으며 다른 이야기로 얼른 넘어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는 수백 년 동안 지속적으로 존재해 왔습니다. 인간의 본질과 아름다움을 탐구하는데 그 목적이 있어서 일 것입니다.
부언 쑤이 작가가 누드화를 많이 그린 것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베트남 대중들에게는 그의 누드화가 아닌 소박한 집들이 모여있는 하노이 옛 거리의 그림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동일한 유화기법을 사용했지만 한 작가의 상반되는 예술 화풍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그럼 함께 감상해 볼게요.
사후 호찌민상(Ho Chi Minh Award)을 수상했고 2020년에는 그를 기리는 100주년 기념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부이 쑤언 파이적 해석으로 그려낸 누드화를 감상해 보겠습니다.
차가운 듯 슬픈 듯 블루 배경의 선택이 아주 매력적입니다. 벽에 기댄 여성의 팔에 비치는 달빛을 강조하기 위해 그레이와 화이트로 대조적인 명암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붓 선이 거칠어 보이는데 다가오는 느낌은 또 따듯합니다. 하노이 옛 거리 그림에서도 이러한 느낌은 이어지는데 부이 쑤언 파이 작가만의 매력과 특성인 것 같습니다. 그는 누드화를 그릴 때 완벽한 비율과 조화를 보여주기보다 그림의 구도 논리에 따라 신체 비율을 늘리거나 줄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야수파의 정신이 깃든 듯 거친 이미지를 전달합니다. 여성 누드 인물을 강조하려 주위에 탁한 색면을 배경으로 한 그의 누드 시리즈는 그가 회화를 두고 고민한 흔적을 뚜렷하게 반영합니다. 고민과 만족의 경계를 오가며 수많은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다른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처럼, 부이 쑤언 파이의 작품도 답보다는 질문을 제기합니다. 그의 그림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과 익숙하다고 자부하는 사람 모두는 그가 예술에서 아름다움의 표현에 대해 고민했던 것처럼 계속해서 함께 고민의 물음표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는 여성의 몸에 대한 리듬과 선을 깊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또한 억압된 감정이 얼마나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는지를 선 드로잉이 그려내고 있습니다.
유화가 아닌 사인펜으로 끄적인 드로잉의 느낌도 색다릅니다.
그는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누드화에 대해 가장 많이 탐구했는데, 40대 초반 창작 에너지와 여성 신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이 가장 왕성할 때부터 노년 시절 까지였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에로틱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며, 피카소(Picasso)도 이러한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는 동료 화가들의 작업실에 가서 보통 3~4명 정도의 모델 그룹을 그리곤 했다고 합니다. 호아(Hòa)와 떰(Thơm) 같은 그 시절 유명했던 모델들을 그렸다고 전해집니다.
"예술가는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것을 그린다는 점에서 사진과 다릅니다."라고 말한 그가 보는 것과 다른 결과물을 캔버스에 담아내고 있는 장면입니다.
계속 누드화를 감상하다 옷을 꼭꼭 껴입은 여성의 그림을 보니 자전거를 끄는 평범한 여성의 느낌이 오히려 특별하게 다가오네요.
자 이제, 그가 대중들에게 명성을 얻게 된 하노이 옛 거리의 집 그림들을 보여드립니다. 하노이 국립 미술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하노이의 36개 골목과 올드 쿼터 거리의 모습을 소박하고 두터우면서도 간결한 선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옛 거리 그림들을 Phố Phái(포 파이=파이의 거리)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포파이 그림으로 처음 부이 쑤언 파이 작가를 만나고 이후에 그의 누드화를 접하게 되었죠. 인간 신체의 아름다움을 그린 누드화와 북적이는 거리에 늘어선 가옥의 선에 주목한 그의 화풍을 바라보고 있으면 결국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인간과 삶의 본질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가 평생을 살았던 도시 하노이, 그중에서도 항 멈 거리를 늘 새로운 각도와 배치로 익숙하면서도 신선하게 그려내었습니다. 항 멈 거리는 주로 젓갈과 피시소스 해산물 등을 팔던 거리였습니다. 구름 낀 잿빛 하늘아래 진갈색 지붕들이 어깨를 부대끼며 서 있습니다. 앞면의 홍색 창문, 청회색 문과 곰팡이 난 하얀 벽이 보입니다. 어두운 색감 속에서 울퉁불퉁 구불거리는 회색 지붕선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귀엽고 따듯한 느낌을 전달합니다. 그 옛날 항멈 거리 집들이 품은 건축의 음악성마저 전달하는 듯합니다.
갈색과 회색의 배경위에 툭툭 던지듯 끼워 넣은 오렌지와 민트 색감이 상큼합니다.
1950년에서 1970년 사이의 어둑한 하노이 거리를 그림에 담았습니다. 각 지붕 속에 서린 과거의 영혼을 담고서 추억과 그리움, 슬픔, 아쉬운 회한을 담아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투박하고 뭉툭한 듯 하지만 현대적이고 간결한 그의 굵은 선은 소박하고 조용하게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베트남인들에게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향수와 생생한 현실의 교차점을 보여 주고 있다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미술 평론가 Thái Bá Vân(타이 바 번)은 Bùi Xuân Phái의 그림을 "마치 지하수의 흐름처럼, 점점 더 넓어지고 진정으로 낯선 영혼의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단순히 감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감동을 주고 사유하게 한다는 것이죠. 사유하기 전에, 먼저 본질을 감상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작가도 잊지 않고 전하고 있습니다. 진솔한 영혼과 자유로운 필치, 그리고 깊고 섬세한 표현 덕분에 베트남인의 기억에 오래 남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의 백주년 기념 전시회에 소개되었던 유품들과
생애 마지막으로 남긴 그의 자화상입니다.
https://vnexpress.net/trich-hoi-hoa-bui-xuan-phai-va-toi-my-cam-trong-tranh-khoa-than-46247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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