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아침 6시 30분. 핸드폰이 울린다. 일어나야 한다. 대충 요기를 한 뒤, 씻고 나가야 한다. 하지만 좀처럼 눈을 뜨기도, 몸을 일으키기도 쉽지 않다. 그렇게 알람을 5분 뒤로 맞춰 놓은 뒤 다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5분 뒤, 다시 알람이 울리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리고 5분, 또 5분… 반복되는 시간 동안 나는 가만히 누워있는다. 7시 정각이 되어야 겨우 몸을 일으킨다. “시발…” 눈 뜨면 ‘시발’로 시작해서 눈 감으며 ‘시발’로 끝나는 하루. 아침에는 무조건 샤워를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대충 물로 머리를 정리하고 서둘러 세수한다. 7시 7분, 시계의 분침을 확인하고 현관문을 연다. 오늘도 역시 양치는 안 한다.
회사에서 내게 준 흰색 1톤 트럭을 타고 출근을 시작한다. ‘이 트럭도 내가 친척이라 받는 특혜일까…’ 쓸데없는 잡생각을 떨쳐내며 매섭게 운전한다. 출근길 늘 막히는 도로를 피해 오늘도 지름길인 비포장의 산길로 돌아간다. 양쪽으로 잡초들이 난 콘크리트 외길을 헤치며 나는 마구 달린다. 어차피 내 차도 아니니 망가져도 상관이 없다. “내일은 진짜 10분만 일찍 나오자.” 혼잣말하지만 내일도 다르지 않을 것임을 안다. 7시 20분. 아직 병방시장도 못 지났다. 차선을 헤치며 난폭운전을 한다.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간밤의 정치 뉴스들이 살짝 씩 들려온다. “사장님은 이 내용을 뭐라고 말할까.” 혼잣말한다.
7시 29분, 어쩌면 30분. 가게로 빠르게 차를 넣어버리고 나는 재빨리 차에서 뛰어내린다. 손님 차들이 뒤엉켜 있어서 소리를 지르며 차를 하나둘 이동시킨다. 사장님은 아침부터 현장에 나와 동료들을 진두지휘 중이다. 오늘은 파이프가 들어오는 날이라 준희도 임 부장님도 유 과장도 열심히 파이프를 하차 중이다. 나는 가까이에 있는 사장님을 계속 의식하며 손님들에게 씩씩하게, 친절한 척 응대한다. “사장님, 100밀리 맞아요? 125밀리일 수도 있으니 둘 다 보여드릴게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성공과 행복을 위하여 오늘도 힘차게' 사무실에 걸려있는 큰 액자가 눈에 띈다. 형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십니까.” 하지만 돌아오는 형의 인사가 마땅치 않다. “새벽부터 사장님이랑 차장님이랑 한바탕 했어요. 요즘 왜 그러시나 몰라요.” 유 과장이 무표정으로 오늘 아침의 사무실 분위기를 내게 조용히 설명해 준다.
일할 때 시계를 절대 보지 않는 것이 시간을 죽이는 데 아주 효과적이다. 9 시. 하지만 그걸 못 참고 결국 봐 버렸다. 아직 두 시간도 안 지났지만 나는 벌써 땀범벅이다. 8월 중순의 사악한 날씨는 나의 모든 의욕과 그나마 남아있는 기운들을 모두 빼앗는다. 바지까지 축축하게 젖어서 편히 움직일 수가 없다. 바지 밑단을 무릎까지 걷어 올린다.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가 고무호스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려 물을 뿌린다. 온몸이 젖으면 냄새가 나겠지만 그나마 버틸 만하니까 괜찮다. 점심시간까지 2시간만 버티면 된다.
이제 겨우 손님들의 파도가 잠잠해지는 것 같아 철 계단에 조심스럽게 앉아본다. “내가 파이프 저 안쪽에 넣으라고 했는데” 어디선가 사장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해야 할 일들은 차고 넘친다. 벌떡 일어나 하나둘 파이프를 짊어지고 사장님이 지시하는 곳으로 옮겨놓는다. 손목이 시큰거리지만 어쩔 수 없다. 손목이 아프다는 이유로 일을 멈출 수는 없다. 내가 들지 않으면 옆에 임 부장님이 내 것을 들게 된다. 임 부장님도 허리가 좋지 않다. 내 손목도, 부장님의 허리도 이미 더 이상 완전히 나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11시 30분. 점심을 먹으러 바로 옆 식당으로 간다. 점심시간이 내게 주어지는 유일한 휴식 시간 30분이다. 매주 한 번씩 나오는 부대찌개도, 만두전골도 나는 너무 싫다. 계란후라이도, 고등어 반토막도 구경할 수가 없다. 한 끼 가격 8,500원에 식당 아줌마는 손님들에게 너무나도 많은 이윤을 가져가려 한다. 테이블에 올라온 반찬과 국을 하나하나 보며 원가가 얼마나 들었을까 계산해 본다. 내 속도 모르고 그저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먹는 동료들 모습에 화가 치민다.
12시 5분. 다음 식사 교대를 위해 빠르게 일터로 돌아온다. 1시간 식사 시간 보장은 포기한 지 이미 오래다. 화장실에 들어가 내 모습을 물끄러미 본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이제는 더 이상 친절함도 자상함도 따뜻함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축축하게 젖어있는 옷에서 쉰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생각하지만 밖에서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다. 빨리 나가야 한다. 퇴근 시간은 6시. 나는 앞으로 6시간을 또 버텨 내어야 한다. 나는 서둘러 고무호스를 들어 머리에 물을 뿌리고 밖으로 달려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