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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독백 Mar 20. 2024

친언니가 된 친한 언니

어느 순간 나를 보니 어항과에 속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강이나 바다에 내놓으면 다른 물고기에 치여 튕겨나갈 무력한 존재. 지인이 붙여 준 별명 '쿠쿠다스' 과자처럼 내 마음은 조금만 부딪혀도 바스러졌다. 그래서 늘 두리번거리며 예의를 지키는 사람을 찾았다.

자칫 격식만 차리다 멀어지는 관계가 많았다. 그런데 마음에 두고 참을성 있게 조금씩 다가서며 깊이 알게 된 사람도 있다. 나는 친언니라 여기고, 언니는 나를 베프라고 한다.

몇 달 만에 통화를 했다. 언제 들어도 반가운 목소리. 어떻게 지냈어, 한 마디에서 내 기분과 생각을 낚는 신통한 사람이다. 언니와 얘기하다가 문득 바라보면 언니는 내 마음 밭을 솎아 내고 있었다. 걱정은 조심스레 뽑고 그 자리에 위로와 희망을 심어준다. 힘이 되어줄 때가 많았다.

때로는 서로 과격한 농담으로 치고받기도 하는데 꼭 베개싸움을 하는 것 같다. 얻어터져도 깔깔. 그러다 한 방 날리고는 까르르. 거의 모든 대화를 기-승-전-웃음으로 만드는 재주꾼이다.

이런 언니가 '나 모든 걸 그만두고 싶어'라고 했을 때 내 마음도 쿵 주저앉았다. 치매인 어머니와 위중한 아버지를 모시는 억척스러운 효녀. 샘물줄기 같던 언니의 웃음이 말라버렸다.

나는 언니의 고단한 마음을 보여주려고 했다. 힘든 여정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는지, 언니는 무거운 마음을 꺼내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등에 한가득 업고 있었다. 그 무게에 눌리면서도 하루씩 내디뎠다.

나는 언니가 호전되지 않는 부모님을 보며 절망하는 것에서 조금 벗어나기를, 그리고 스스로를 너무 다그치지 말기를 바라며 위로했다.

기쁨보다 슬픔을 나누는 것이 힘들다. 언니와 서로의 슬픔을 바라봐 주고 진심으로 다독이는 사이가 된 걸 알았을 때 감사했다. 다른 사람의 마음 길로 들어서는 법을 알려준 사람. 덕분에 쿠쿠다스가 오란다가 되어가는 걸 언니는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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