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독백 Mar 12. 2024

주말은 언제나 짧게 느껴진다

금요일까지 기세등등한 알람이 얄미웠다. 잠에서 막 끌려 나와 차가운 공기와 일상 속으로 던져지면 늘 이불 밑이 그립다. 그러나 주말 아침엔 다르다. 기다려. 내 손짓 한 번으로 입 꾹 다문 채 다소곳해진다. 느긋하게 시작한 토요일의 아침. 그 순간 아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엄마, 오늘 교보문고 가는 날이에요.

아이의 쿠폰 사용 거행식은 교보문고에서다. 아이가 스스로에게 약속한 학습량을 채우면 책 쿠폰을 발행해 준다. 전문가들은 내적 동기를 망가뜨리기에 외적 보상을 주면 안 된다고 하지만, 공부에 자신감이 붙고 재미를 찾을 때까지만 할 생각이다. 다행히 아이가 좋아하는 게 책이고 게다가 ‘책’이니. 학습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큰 그림을 그리며 조심스레 쿠폰을 발행해 준다.

아이는 청소년 소설과 에세이가 있는 곳을 기웃거린다. 사람끼리 닿지 않고서는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북적이는데 그 작은 몸으로 요리조리 잘도 다닌다. 동그란 눈을 하고는 아이스크림을 고를 때처럼 책 소개말을 하나씩 음미한다.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면 그 자리에 얼음이 되어 다 읽는데 그러고 나서 소장하는 경우가 많다.

근처에 아이들이 몇 있다. 바닥에 앉아서 읽는 아이도 있고 더러는 엎드려서 독서를 즐기기도 한다. 아이들 주변으로 두터운 고요함이 깔려 있어 한 마디 말소리를 내기도 조심스럽다.

구석에 서서 책을 읽고 있는데 아이가 밝게 웃으며 다가온다. 이날 <반음>이란 책이 아이의 친구가 되었다. 책표지에는 노을빛 배경에 단발머리 슬픈 눈을 가진 아이가 있다. 집에 오는 버스 안에서 아이는 그날 본 책들을 이야기해 준다.

그 많은 이야기 가운데 아이는 어떤 삶을 꿈꿀까. 부족한 엄마, 아빠가 알려줄 수 없는 인생의 길을 책과 함께 찾아가기를.


아이의 고개가 내 어깨에 와닿는다. 춤추듯 달리는 버스 안에서 둘 다 말없이 창밖의 계절을 본다. 주말은 언제나 짧게 느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의 生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