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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하게 일하며 하루를 보내던 월요일, 핸드폰에 익숙한 전화번호로 전화가 와 있었다. 부재중 전화를 보고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뒤에 떠 있는 부재중 카톡 알림 “00아 잘 지내?”. 보자마자 이 사람이 맞나 싶었다. 눈이 번뜩이고 이내 답장을 했다. “잘 지내지. 오랜만이네, 잘 지내?” 그 뒤에 오는 그 사람의 답장은 “오랜만이다, 이게 몇 년 만이야.” 이내 우리는 서로 근황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무려 자그마치 3년. 어찌 보면 내가 그 사람을 3년 내내 못 잊고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루아침에 이 사람에게 연락이 오게 되다니, 그토록 바라왔던 순간을 맞이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조금은 허탈한 감정도 밀려왔다. 왜 지금일까, 그리고 무엇 때문에 연락을 보낸 것일까. 그간 3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정말 잘 지내는지 궁금한 듯한 말투. 나는 어쩌면 그런 단순한 말투보다는 어색하고 미묘한 말투를 바랐을지 모르겠다. 1년 전, 내가 연락을 보냈을 때 읽고 아무런 답장도 없던 그 사람. 자꾸 의도를 파악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그때는 연락도 안 보던 사람이 왜 이제서야 먼저 연락이 온 것일까.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는 없었다.
3년 전 만났던 내 인생 진짜 첫사랑.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그만큼의 뜻깊은 추억을 선사해준 사람. 참 보고 싶은 사람이었다.
우리는 잠깐의 대화를 나누고 이 날 당일 저녁을 먹기로 약속했다. 순식간에 갑자기 위가 쓰리고 편두통이 오기 시작했다. 설레는 마음 반 걱정 반, 여행 가기 전에도 겪는 이 속 쓰림. 마냥 좋다가 아닌,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는 갈팡질팡 안절부절한 감정. 나는 후딱 일을 마치고 옷을 나름 차려입고 밖을 나갔다. 저녁을 먹을 장소는 당시 만났을 때 데이트를 했던 식당 중 한 곳. 일을 하면서도 그렇고, 옷을 갈아입고 있는 와중에도 그렇고, 그곳을 가는 버스를 타면서도 위가 많이 쓰라렸다. 심장도 방방 뛰면서 손에 땀도 나고. 크게 숨을 몰아쉰 게 몇 번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막상 이런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나만 이렇게 안절부절못하면서 가고 있는 거겠지 싶은 생각. 그 사람은 단순하게 생각을 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안 그래도 추운 겨울, 숨을 크게 몰아쉬니 온몸이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 기다리다 만난 그 사람. 나의 눈에는 그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서로 각자 많이 바뀐 일과 환경, 분위기 이런 걸 생각해 보아도 그냥 그저 똑같았다. 정말 이상하게도 마주쳤는데 내가 생각했던 설레는 감정이 드는 것이 아닌, 그저 편안하고 덤덤했다. 시간이 정말 지나서 그런가. 3년 동안, 무려 1년 전에도 그렇게 바라왔던 순간을 마주한 것인데 무덤덤하다니. 갑자기 현타가 오는 기분이었다. 내 스스로에게 오는 현타였다.
당연히 밥은 안 넘어가겠구나 싶었다. 위도 쓰리고 이야기하기 바쁠 것 같아서 말이다. 식당에 들어서고 의자에 앉자마자 더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냥 인생 처음 느껴보는 어중간한 감정. 기대와는 다른 나의 행동과 말투. 긴장이 서서히 풀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시작하게 된 별의별 이야기들. 3년간 바뀐 그 사람의 삶, 그리고 나의 삶. 그 사람의 3년도 궁금했지만 나의 3년을 돌아보는 대화이기도 했다.
3년 동안 감정의 소용돌이가 요동을 친 적이 참으로 많았다. 그 사람을 잊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고, 다양한 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이제는 내 인생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자부심이 되었다. 풍경 사진을 찍으면서도 그녀를 자연스럽게 생각하며 대입을 한 적도 많았다. 그리움, 공허가 자연스럽게 사진에 나타난 적이 많았다. 하지만 웃프게도 그 사진들이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별이 만들어낸 동기 부여, 미련이 만들어낸 나의 사진들. 셔터를 누르고 찍어 낸 그 수만 장들 속에서 건진 1,500장의 결과물들. 3년이라는 시간이 만든 소중한 결과물들이다. 그리고 당연히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알게 된 나 자신과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다양한 생각들. 사진은 나의 자아 성찰을 도와준 소중한 녀석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글들에도 소용돌이친 여러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잊지 못해 힘들어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밖에 나가서 찍었던 많은 순간들. 사진을 찍으면서도 바라왔던 이 날의 순간. 그런데 막상 만나니 편안해지다니. 차라리 버스 탈 때까지 느낀 감정이었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3년간 많은 걸 얻고 깨닫기도 했지만, 그 시간 속에서 힘들어했던 나 자신을 생각하니 참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어쩌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아마도 죽을 때까지 내가 나 스스로를 잘 알지 못하겠구나 싶었다.
저녁을 먹고 카페로 갔다. 그저 단순한 그 사람의 말투. 그리고 나 또한 단순해져 버린 그 편안한 분위기. 우리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 만나서 속풀이하고 싶었는데, 오히려 만나니 왜 그저 좋은 말만 해 주고 싶은 것인지. 행복하게 살아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왔다. 덕분에 많은 걸 깨닫고 알게 되었고 소중한 걸 얻기도 했다고 그저 그렇게 말이 나왔다.
이제는 의도를 파악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냥 3년간의 마침표를 찍게 되어 편안한 것 같다. 물론 나만의 마침표일 테지만. 카페에서 헤어지고 집에 돌아오니 순식간에 몸이 느슨해지는 듯했다. 별의별 감정도 안 들고 그냥 이제 더 새롭게 나아가 봐야지 싶은 생각만 하게 됐다.
시간이 약이다를 이해하기까지 3년. 끝없는 자아 성찰을 하며 보냈던 시간들. 그리고 그 속에서 찍은 많은 풍경, 써 내려간 많은 글들, 그로 인해 만났던 소중한 인연들과 순간들. 아마 이 많은 순간의 시간들이 지금의 내 감정의 마침표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싶다.
2025년 12월 겨울, 3년의 마침표를 찍으며 다음 봄날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