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못 먹게 되었다.
( 그동안 돌아가신 외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적었어서 이 글 제목에 친할머니라고 적겠다. )
오늘 아빠와 충북 쪽으로 출장을 갔다. 사실 한 달에 몇 번은 지방 출장을 가지만 여태 일기를 남길 생각을 못 했었다. 그래서 오늘은 남겨 보려 했는데 그렇지 못할 거 같아서 가슴이 먹먹하기도 하다. 사실 오늘 일기는 이런 주제가 아니었는데… 오늘 출장 다녀온 일기를 적으려 했지만 주제가 이것으로 넘어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충북 음성 쪽에 아빠의 본가 즉 할머니 할아버지 댁이 있어서 일을 마치고 잠깐 들렀다. 몇 달 만에 뵙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반갑게 인사드리려는 생각으로 흥겹게 음성으로 향했다. 댁에 도착하고 들어가는데 할머니의 모습이 여간 이전 모습과는 전혀 달라 보이셨다. 사실은 몇 달 전 겨울에 길을 걷다 넘어지시는 바람에 입원까지 하셨어서 걱정이 컸었다.
조금은 괜찮아지셨나 하는데 거동도 이제 잘 못하시고 앉아서 힘든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셨다.
그리고 할머니가 내 이름을 잘못 부르고 계셨다. 얼굴은 알아보시는데 이름을 틀리게 말씀하시는 걸 보고 갑자기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께서는 치매 증상 때문에 처음에는 내 얼굴까지 못 알아보셨었고 몇 분이 지나고 나서야 나를 알아보셨었다. 그래서 설마 할머니도 치매가 오신 걸까라는 생각에 조금 충격을 받았다.
인지력이 많이 떨어지셨다. 그래도 대화를 나눌 때는 말도 잘하시고 알아들으시지만 전보다는 말을 잘 못 알아듣게 되셨다.
할머니는 분명히 몇 달 전 그 작년까지만 해도 정정하셨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모습을 더 이상 보기 힘들 정도로 많이 편찮아지셨다. 우리 아빠를 부를 때는 큰아빠와 작은 아빠 이름을 부르실 정도로 이름을 까먹고 계셨다. 아빠가 할아버지 할머니 댁을 들른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이제는 요리도 못하시고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를 위해 요양 보호사분을 모시기 위해서였다. 우리 아빠를 포함 자식이 5남매이셔서 고모들과 큰아빠 작은 아빠 사촌 형들도 주기적으로 왔다 갔다 하셨지만 매일매일 케어해 드리는 건 불가능하기에 어쩔 수 없는 가족들의 판단이 있었다. 그중 우리 아빠가 서울에서 음성까지 거의 일주일에 두세 번은 왔다 갔다 하시며 자식들 중 가장 많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케어해 드렸다.
할아버지께서는 그래도 할머니보다는 괜찮으시지만 수많은 세월 동안 할머니께서 밥을 해주셨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잘 못하시니 두 분 다 끼니를 잘 못 챙기시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가장 컸다.
사실은 할머니의 이러한 모습을 상상조차 못 했다. 외할머니 이후로 그래도 친할머니는 정정하실 줄 알았다. 아빠가 존경스러웠다. 잘못 부르시는 이름을 들어도 그저 덤덤하신 채 평소 착한 아들의 모습 그대로 할머니를 대하셨다. 나도 이러한 아빠의 모습을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라와서 그런지 아니면 외할머니의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나 자신도 이런 상황에서 그저 덤덤하기만 했다.
그냥 가장 속이 문드러지는 건 우리 아빠일 것이 분명하기에 나라도 그저 그런대로 행동하는 게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건 할머니의 손을 잡고 여러 옛날이야기를 하며 기억을 더듬으시게끔 하는 거 단지 그거 하나뿐이었다.
오랜만에 할머니 손을 잡는 거 같았다. 따뜻하고 좋았다. 전에라도 이렇게 잡아드릴 걸 하는 아쉬움도 컸다. 어린아이의 말투가 담긴 말들을 갑자기 한 두 번씩 하시는 할머니를 보며 그냥 속이 많이 상하기도 했다. 2년 전에는 손자 용돈 5만 원 챙겨주려고 집을 가려던 나를 쫓아오셔서 내 손에 현금 5만 원을 쥐여 주신 할머니의 그 모습이 머릿속에 너무나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좀 시간이 지나고 요양 보호사 분과 관리자분들께서 오셨다. 이것저것 치매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 주시고 주의를 주셨다. 옛날 기억은 잃지 않으셨는데 단기 기억을 간혹 잃으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옆에서 할아버지는 그저 점잖게 듣고 계셨다.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뭔가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남들 이야기 들을 때 내 모습과 거의 흡사해서 놀랐다. ( 이것 또한 유전인가… ) 대화를 하다가 관리자분께서 할머니께 손자 이름 즉 내 이름이 뭔지 아시냐고 물어보셨다.
할머니는 갑자기 “ 쟤가 누구였지? ”라고 하셨다. 얼굴은 아는데 이름을 또 까먹으셨다.
내가 입모양으로 힌트를 드리니 그제야 맞추셨다.
그 후 보호사 분과 이야기를 끝내고 오랜만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빠 그리고 나, 넷이서 밖에 밥을 먹으러 나갔다. 아빠 차를 같이 타고 가면서 할머니의 손을 잡고 창문을 열고 꽃을 보게 해 드렸다. 행복해 보이셨다. 거동이 불편하시니 이젠 꽃도 제대로 보시지 못해서 이렇게라도 꽃을 보게 해드리고 싶었다. 15분쯤 차를 타고 이동하여 갈빗집을 갔다. 이제는 고기를 잘 못 드시긴 했지만 그 집 된장찌개와 샐러드를 워낙 좋아하셔서 고른 행선지였다. 할아버지는 원래도 과묵하셨지만 할머니가 깜빡하는 말을 하시고 행동을 보이실 때 그걸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빛에는 굉장히 수없이 많은 감정들이 오고 가고 있어 보였다.
아무 말이 없지만 아무 말이 가득 담긴 눈빛이었다.
할머니께서는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허둥지둥 어깨에 멘 가방에서 현금 몇 다발을 꺼내시고는 밥값을 내시겠다며 투정을 부리셨다. 아직 그 어느 무엇도 주문을 하지 않았는데 들어가자마자 그러한 행동을 하셨다. 아빠는 어쩔 수없이 직원분께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 앉으셨다. 그래도 그 식당이 단골이었고 사장님과 직원분들이 너무 친절하셨기에 잘 대처를 해주시기도 했다. 사장님은 거의 천사셨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시고는 푸근한 말투로 " 자주 데이트하시네요. 어르신~ ", " 샐러드 가실 때 더 많이 챙겨드릴게요! 걱정 마시고 더 많이 드세요. " 정말 배울 점이 많은 분 같았다.
밥을 먹고 와서 또 할머니는 우리에게 이것저것 챙겨 주시려고 움직이셨다. 혹여나 넘어지실까 봐 불안해서 할머니 옆을 계속 쫓아다녔다. 아 세월이 이렇게 지났을 줄이야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할머니는 나와의 추억을 말씀하셨다. 아빠의 어린 시절도 그렇고 할아버지와의 첫 만남도 이야기하셨다. 확실히 단기 기억만 떠오르시지 않는 거 같았다.
나와의 추억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OO 너랑 집 앞마당에서 놀았었어. 키도 작았고 아주 귀여웠지. ” 아… 그 말 들으니 얼마나 울컥하던지.
그리고 이제는 할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속으로 통곡을 했다.
작년 그때가 할머니의 마지막 집밥이었다니…
저는 평생 그 맛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죠 할머니…
최근 나의 모습을 더욱 돌아보게 되기도 했다. 미친놈 같이 술을 들이켜고 우울에 빠지고 간 수치가 높아져 입원을 했던 최근 한 달 전까지의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다. 내가 뭘 위해서 여태 이리 살았지 싶었다. 정말 다시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라며 다짐도 하였다.
할머니,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서울로 올라오며 많은 생각을 했다. 아빠와 평소대로 웃으며 대화를 나눴지만 가장 걱정되는 건 우리 아빠이기도 했다.
그래도 아빠는 여전히 같은 모습이었다. 조금 더 아빠를 신경 써드려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건강하세요. 손자 결혼하시는 모습 보셔야 해요. 언제나 사랑합니다. 정말 사랑합니다.
그리고 관식이 같은 효자 사랑하는 우리 아빠 언제나 존경합니다.
꼭 푸근한 날들만이 가득하길 바라며 오늘의 일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