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빠처럼 될 수 있을까.

존경하는 아빠

by 낭말로
유럽 여행 갔을 때 아빠의 뒷모습

시간 지나니 나는 아빠 성격을 좀 닮았구나를 많이 느끼게 된다. 나이가 드시면서 유순해지시긴 했지만 성격이 급한 것과 취미가 됐던 좋아하는 무언가 하나 마음에 들면 그 하나에 지속적으로 몰입하는 집중력, 그 몰입한 하나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모습이 남들이 봐도 느껴진다는 것과 거절을 쉽게 못하고 사람에게 정이 생기면 감정적으로 다 받아주는 그런 성격. 아빠는 그래도 이 성격을 제대로 발휘하신 분이다. 나는 그에 비해 생각이 너무 과도한 편이라 문제지만.


아빠는 가족이 보든 제3자들이 보든 가족에게 진심을 다하는 사람이다. 그만큼 할아버지, 할머니를 대하는 모습을 볼 때마저 감히 흉내 낼 수도 없는 효자이기도 하다. 최근에 위암 시한부 판정을 받으신 할아버지와 치매에 걸리신 할머니를 뵈러 일주일에 3~4번은 차를 끌고 서울에서 충북을 왔다 갔다 하신다.

5남매 중 막내이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해 정말 할 수 있는 건 다하는 아들이다. 그런 아빠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난 저런 아들이 될 수는 있을까이다.


그래도 나 또한 아빠의 모습대로 행동을 했던 적이 있었다. 아빠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셨을 때 나름의 아들 역할은 제대로 했었다. 아빠가 쓰러지고 당시 충북에 있던 커피농장을 거의 매일 엄마와 같이 왔다 갔다 했었다. 불안장애, 공황장애가 지금보다 극심했던 때라 마음이 크게 요동을 쳤었지만 그때는 무의식적으로 이성을 붙들어 메고 흘러가는 대로 행동을 했었던 거 같다.


아빠가 머리가 너무 아파서 새벽에 응급실을 가게 됐던 날, 같이 택시를 타고 본래 다니던 병원을 가려 했었는데 40분 넘게 걸리는 거리였고 통증이 너무 심해서 급박했던 상황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선택지를 바꾸고 더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가달라고 기사님께 말씀을 드렸고, 아빠는 그 후 그 병원에서 시술을 잘 마쳐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는 중이시다.


인생에 있어서 순간의 선택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때 처음 몸과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아빠는 입원을 하고 누워있을 때 그런 와중에도 내 마음 상태에 대해 걱정을 했었다.

아들이 괜히 본인 때문에 더 불안이 심해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 지금 생각해 보면 시간이 후딱 갔지만 정신없이 보냈던 한 해이기도 했다.


그때의 나를 보고 지금의 나를 볼 때면 너는 그때 어떻게 그런 거냐라고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을 때가 많다.


이 기억을 그대로 안고 있는 채 지금의 아빠를 바라보면 아 자식으로서 당연한 거지 싶으면서도

먼 훗날에도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면 나는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대하는 것처럼 더 적극적으로 케어해드릴 순 있을까라며 나 자신을 돌아보는 듯하다.


언제나 존경하는 사람이 우리 아빠, 엄마였지만 단순히 존경을 표한다고만 했지 깊게 어떤 무엇을 존경하는지를 명확히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들로서 대놓고 티 내기 부끄러워 이렇게 글로나마 표현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물론 직접 보여드리거나 하지는 않지만… 마음이나마 뒤로 이렇게 남겨두고 싶다.


내 블로그와 인스타, 브런치를 직접 찾아보시거나 하지는 않으실 테니 먼 훗날 꼭 다른 방법으로 이 글들을 직접 보여 드리고 싶다는 꿈이 좀 있다.


나는 아빠처럼 될 수 있을까. 가족에게 진심을 다하고 부모에게 진심을 다하고 생각이 많은 걸 다른 쪽으로 발휘하고 그 어느 자존심 하나 없이 재지 않고 남들에게 똑같이 정 많게 대하는 사람. 그런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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