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직장이 경기도로 발령이 나고 그녀는 부산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에 우린 의도치 않게 ‘장거리 커플’이 되어버렸다. 10년 동안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는 우리였기에 ‘롱디(Long Distance) 연애’가 그리 달갑진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기관사가 된 덕분에 일반 직장인보다는 원활하게 부산을 오갈 수 있었지만 예전처럼 자주 보진 못했다.
3일은 경기도에서 일을 하고 또 3일은 부산으로 내려가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루틴을 이어 나갔다. 그마저도 매번 할 수는 없고 한 달에 2~3회 정도 부산에 가고 있다. 부산에서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은 나에겐 너무 짧게 느껴졌고 서울에서 일을 할 때는 바쁘게 흘러갔지만 퇴근 후 혼자 오피스텔에 있을 때면 많은 생각들이 밀려왔다.
직업적으로도 만족도가 높았고, 그녀와의 관계도 아무 문제가 없었으며 우리 가족 모두 별 탈 없이 건강하고 평온한 상태의 나날들이었다.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행복한 축복인지 난 여행을 하며 크게 깨달았음에도 나의 마음 한편에는 조금 더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무엇인가 더 이루어야 할 것만 같은 강박이 차오르면서 동시에 약간의 우울감도 느껴졌다.
뭔가 내 인생이 이렇게 그냥 결정 나 버린 것 같다는 아쉬움과 그러기엔 난 아직 젊고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 데라는 욕심이 피어올랐다.
“정인아? 내 인생에도 꽃 피는 날이 올까?”
“꼭 피어야 해?”
“한 번은 화려하게 꽃 피고 싶어”
“장미꽃 같은 꽃만 피는 게 아니야. 들꽃도 피는 거야. 다만 이름이 없고 사람들이 몰라줘서 그렇지”
“그럼 난 들꽃이야?”
“아니! 넌 내가 알잖아. 들꽃은 아무도 몰라. 폈는지 안 폈는지... 관심도 없어. 그렇다고 그게 의미가 없는 걸까?”
“들꽃...”
“그리고 너 충분히 피어 있어”
꽃은 알까? 자신이 활짝 핀 상태라는 것을. 어느 들판에 피어나는 이름 없는 꽃. 그 꽃에만 유달리 한 꿀벌이 날아온다. 그것도 15년째. 그리고 꽃은 꿀벌에게 말한다.
꽃 : “야 꿀벌! 넌 왜 나한테만 날아오냐?”
꿀벌 : “넌 한결같이 피어있으니까 눈에 잘 띄어!”
꽃 : “거짓말하고 있네! 나 아직 꽃봉오리도 안 폈어”
꿀벌 : “너 바보니? 꽃도 안 폈는데 내가 왜 굳이
너한테 꿀 빨러 오겠어?”
꽃은 꿀벌이 날아와 알려준 덕분에 알게 되었다.
자신이 피어진 상태라는 것을.
그리고 꿀벌도 알았다.
이 꽃을 자신이 피우게 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