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올림과 동시에 형광등을 켰다. 모유는 내가 어쩔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다. 온갖 신생아 용품이 지뢰처럼 박힌 불 켜진 상주 대기실은 내 자립방을 재연해 놓은 듯했다.
"사수!"
나는 사수를 불렀다. 모유를 어쩔 수 없는 건 예수님과 결혼한 사수도 마찬가지였다. 때마침 자아는 내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오열했는데, 사수는 우리에게 다가오지 못한 채 대기실 문턱에서 종종거렸다. 이쯤이면 둘은 전생에 철천지원수가 아니었을까. 안 그래도 작은 사수는 자아 앞에선 더욱 움츠러들었다. 아직 초점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자아는 사수만은 기막히게 알아보았다. 이유라도 속 시원히 알면 좋을 텐데…… 자아는 지금도 사수가 자기한테 뭘 어쩌기만 하면 목 놓아 울어댔다. 의기양양하던 40년 경력 육아 베테랑의 자신감은 차라리 깔끔하게 은퇴를 선언하는 게 어떨까, 싶을 정도로 바닥을 치고 있었다.
"똘라!"
사수가 똘라를 불렀다. 모유를 먹어보기만 한 똘라 역시 이 분야엔 문외한이었다. 똘라는 출산 경험이 없는 처녀, 거기다 모태 솔로였다. 똘라가 지독하게 모태 솔로의 삶을 고집했던 건 가족과 친구와 직업과 고향과 조국과 꿈, 전부를 뒤로하고 사랑을 선택한 결과를 어려서부터 직관해 온 탓이었다. 꼬시고 꼬셔서 여자친구 시절의 엄마를 캄보디아로 데려와 결혼식을 올린 아빠는 자신의 진정한 꿈은 스님이라며, 그걸 이제 깨달았는데 어쩌라는 거냐며 수시로 출가를 원했고, 그 좋아하던 술까지 매정하게 끊어버렸다. 퇴근 뒤 아빠랑 한잔하는 게 유일한 낙이었던 엄마는 어린 똘라를 젖은 눈으로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이 꼬맹이가 언제 커서 내 술친구가 되어줄까, 하며 홀로 채운 잔을 홀로 비웠다. 뒤에 두고 온 것에 대한 그리움. 엄마는 그것을 안주 삼았고, 덩그러니 야위어갔다.
'너만 보고 산다.'
엄마가 안쓰러우면서도, 엄마 스스로 포기한 것들의 대가가 자신인 것처럼 느껴질 때마다 둘이 좋아서 만들 땐 언제고 이제 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고, 누가 낳아 달랬냐고 핏대를 세웠다는 똘라는 모유를 찾는 아기 앞에서 눈물만 훔칠 뿐이었다. 위와 같이 본인 사연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징그럽대도, 가슴이 막 봉긋해지던 무렵까지 엄마 젖을 만지며 잠들곤 했다는 똘라. 엄마의 보드라운 젖무덤 사이에서 들려오던 세찬 박동은, 엄마의 나라에서 만취한 밤이면 똘라의 귓가에 더욱 생생히 되살아났다. 새벽 내내 속엣것을 게워낸 애주가 똘라는 바닥을 기었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빠르게 방망이질 치는 심장을 움켜쥐었다. 잡히지 않아서 긁어댔다. 나의 자장가였던 그것. 살아 있는 엄마의 소리. 그건, 밤의 소리였다. 잠 못 이루는 깊은 밤의 소리. 엄마가 고장 나는 소리. 나의 아침이 오는 소리.
"대장!"
가까스로 본인 사연에서 빠져나온 똘라가 눈가를 문지르며 대장 조리사를 불렀다. 약 40년 전, 직접 생산한 모유를 보육원 아이들에게 물심양면 내어준 대장 조리사는 일단 빈 젖이라도 활용해 몸과 몸이 맞닿아 있다는 안정감을 준 뒤 젖병을 물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곤 자신의 늘어진 한쪽 가슴을 꺼내 자아의 입가로 가져갔다. 이미 짜증이 최고조에 다다른 자아는 어디에 뭐가 닿기도 전에 더욱 도리질하며 울어댔고, 그 소리에 누가 부르지도 않은 두 수녀님이 뛰어왔다. 아버지 아버지 하며 걷다시피 뛰어온 늙은 수녀님들에게도 마땅한 대책은 없어 보였다. 진작 빈소 구석에 자리를 깔고 누운 스님은 어떻든 숙면 중이었다.
그렇게 이 품 저 품을 거쳐 내 품으로 되돌아온 게 새벽 2시. 자아는 여전히 내 품에서 가장 적게 울었다. 지쳤는지 쩌렁쩌렁하던 울음이 한풀 꺾였다. 나는 혹시나 해 젖병을 다시 물려보았지만 자아는 아예 입을 다물어버렸다.
'기다리면 올 거야.'
그 혹독한 배고픔의 대가로, 자아는 어쩌면 배 속 엄마와의 교감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모두 나가주세요."
나오는 건 없지만, 배 속 엄마인 도다리의 것과 여러모로 다르겠지만 전체적인 구조는, 체온은 비슷하지 않을까. 나는 그나마 신빙성 있는 대장 조리사의 조언대로 그곳을 충분히 탐색할 시간을 준 뒤 젖병을 물려보기로 마음먹었다. 다행이랄까. 그쪽에도 털은 충분했다. 마음먹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렀고, 새끼들이 안 먹으면 속이 탄다던 사수의 말이 어렴풋이 이해되는 것도 같아 더는 지체하지 않았다.
나는 형광등을 껐다. 다시금 어둠이었다. 아무리 급해도 형광등은 꼭 끄고 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어둠은, 내 마지막 위안이었으므로. 지금 나는 극도로 비장했다. 자아가 원한다면, 끝끝내는, 내 걸 물려볼 용의도 있을 만큼.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빈 젖을 문 자아와 빈 젖을 물리는 나를 마주할 용의는 아직 내게 없었다. 뻔한 형광등 불빛 아래서, 텅 빈 채, 서로의 빈 곳을 갈구하는 우리를 외면할 용의는 더더욱. 실제로 뭐가 핑 도는 듯 가슴이 저릿해져 왔다. 까만 허공을 응시하며, 나는 단추와 단추를 풀어나갔다. 오야오야 오야오야. 보육원 복도에 스며든 어슴푸레한 새벽빛에 기대, 언젠가 사수가 뭉그적뭉그적 수녀복 단추를 풀어나갔듯.
마침내 내 두 가슴이 개방되었다. 한쪽만 열까, 잠깐 고민했지만 어느 쪽을 좋아할지 모르니까 다 열었다. 자아의 두 손이 쇠붙이에 끌린 자석처럼 내 양쪽을 찰싹 움켜쥐었다.
립싱크와 라이브의 차이랄까. 같은 맨살과 맨살의 만남이었지만 자아에게 배를 내줄 때와 가슴을 내줄 때의 압박감 차이는 엄청났다. 자아는 그쪽 털엔 작은 관심도 주지 않았다. 자아의 손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고, 보물 찾기를 하듯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손놀림엔 활기가 묻어났다. 과연 모유 생산 경력자 대장 조리사의 짐작이 맞는 걸까. 자아는 털만 쓸면 힘없이 잠들어버리던 그때와 전혀 달랐다. 만난 이래 최고로 신나 보였다. 신이 난다는 것. 자아는 비로소 진짜 안정을 찾은 듯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껏 안전한 세계에서.
까만 허공을 응시하며, 나는 눈을 감아보았다. 안으로, 안으로 감아보았다. 나는, 도다리가 되어보았다. 사수가 되어보았다. 대장 조리사가 되어보았다. 내 생모가 되어보았다. 화면 속 국민 배우 엄마와 마더 테레사와 성모 마리아까지. 내가 아는 엄마란 엄마는 다 되어보았다. 진짜 엄마 가짜 엄마로 구분되는 그들의 이름이 아닌, 한 아기를 가슴에 품은 순간 어쩐지 하나였을 것만 같은 그들의 어떤 심정이 나는 되어보았다. 그럴수록 내 내면은 더욱 비장해졌고, 자아 역시 숨소리마저 줄인 채 이쪽저쪽 무아지경 본인 작업에 빠져들었다. 마침내 내 한쪽으로 자아의 뜨거운 입김이 모여들었다. 스르르…… 나는 벽에 뒤통수를 파묻었다. 모든 걸 받아들인 그때였다.
"스톱! 스톱!"
똘라가 대기실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열린 내 몸이 저절로 웅크려졌다. 문고리가 앞뒤로 흔들렸다. 자아의 입과 손이 내 가슴에서 떨어져 나갔다.
"스톱! 스톱! 노! 노! 노오오오!"
똘라가 절규했다. 나는 자아를 요 위에 내리고 서둘러 단추를 잠갔다. 잠근다고 잠그는데 깨알 같은 그것들이 자꾸 밀려 잠겼다. 몇 번을 풀었다 몇 번을 다시 잠그는 사이, 애타게 스톱을 외치던 똘라가 고래고래 울음을 터트렸다. 친구의 영정 사진 앞에서 소리 없이 눈물을 떨구던 똘라. 일도 보통은 아닌 일이 터진 듯했다. 다 쥔 목표물을 놓쳐버린 자아 역시 세상이 망한 듯 울음을 터트렸다. 꺼끌꺼끌 꺼끌꺼끌 아래턱이 사정없이 떨렸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비장하게. 비장하게. 안간힘으로. 다 울어도 나는 울면 안 되었다. 빈소에 큰일이 난 게 틀림없었다. 나는 상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