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 개새……"
모두가 숙연한 가운데 흘러나온 무의식의 소리였다. 식구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개……뭐?"
조금 전까지 그렁한 눈으로 벌에 쏘인 아이를 안타까워하던 사수의 얼굴에 잠깐 독기가 흘렀다.
"사라, 개가 아니라 새요. 새라고 하던데……?"
보육 교사 두 수녀님 중 작은 수녀님이 한 손으로 눈가를 비비며 말했다. 다른 한 손으론 제대로 끼워진 보청기를 괜스레 고쳐 끼웠다. 나는 개한테도 새한테도 미안해졌다.
"아니, 그 사장 말이에요. 위장 수술받게 가불 좀 해주지. 어차피 갚을 건데. 돕고 살지."
개와 새를 주장하던 식구들이 내 넋두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마친 똘라 역시 마구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이따금 눈물을 쏟으면서도 꿋꿋이 이야기를 잇던 똘라. 똘라의 아이라인은 반 정도 남아 있었다.
나는 아까부터 위장이 터지도록 일하다 세상을 떠났다는, 한 노동자가 남기고 간 메시지에 한껏 이입되었다. 가불. 그건 코러스 알바 시절 나 역시 경험해본 제도였다.
수염도 안 났을 때였는데 그날따라 삑사리가 잦았다. 녹음은 밤늦도록 이어졌다. 결국 택시를 타고 보육원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가진 게 2천 원뿐이어서 하는 수 없이 당겨썼었다. 프로듀서는 10만 원도 아니고 1만 원인데 뭐, 하며 흔쾌히 내주었다. 이자는 필요 없다고. 혹 갚지 못하면 너 그만둘 때 까고 정산하면 된다고. 없는 사람끼리 돕고 살아야 한다고. 너에겐 내일의 삑사리가 있을 테니, 오늘의 삑사리는 잊어버리라고.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 동네 빵집의 페이스트리를 세트로 사 먹기 위해 모아 온 비상금을 털어 다음 날 바로 갚았다. 1만 원에 그가 좋아하는 목캔디를 두 통 얹어서. 오리지널 허브 맛만 사서 나왔는데 서운해서 도로 편의점에 들어가 신상 레몬민트 맛도 샀다. 내 형편이 넉넉해서는 아니었다. 그건 마음의 이자였다.
회당 25만 원의 레이저 치료. 그걸 그때 꼭 받아야 했다면? 그래야 내가 사는 거였다면? 선택지엔 가불밖에 없었다면? 다리 위에야 몇 번 섰을지 모르지만 나는 재빨리 가불을 신청했을 거다. 호르몬의 고장으로 수염이 난 건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레이저 치료를 받는 건 내가 어쩔 수 있는 일이니까. 가불을 해주고 마는 건 프로듀서의 선택이지만, 그것 역시 그가 어쩔 수 있는 일이니까. 내가 전 재산을 당겨 달란다면 그도 어쩔 수 없겠지만…… 그게 자신이 어쩔 수 있는 일이라면, 우린 각자 어떻게든 그걸 어쩌면서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삶의 끝에서도.
초기 염증만 다스리면 완치되는 흔한 위장병. 약물 치료 몇 번이면 백 퍼센트 아물기에 완치율이라는 게 따로 없다는 병. 초기에 발견한 그걸 거금의 수술비를 가불해야 될 만큼 번지도록 가만두다니. 죽을 때까지 가만두다니. 사람이 서서히 위장이 터져 죽는다니…… 그를 살리기 위해 지게차에 치여 죽고 만 그의 동료는? 그 순간, 그가 동료의 죽음을 당겨써버린 거라면? 나는 마스크 안 뿌리 하나하나에 불이 붙는 듯 아찔했다. 죽으려고 찾아간 다리 위에서 극적으로 득음에 다다른 그때, 기어 오른 난간을 어기적어기적 되돌아 내려오다 발을 헛디딘 그 순간 나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깨달았다. 와 씨…… 대체 어떻게 올라온 거지…… 난간이 이렇게 높았었나…… 조심조심…… 벌써 죽을라…… 데뷔는 해보고 죽어야지…… 조심조심…… 그러므로, 나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게 아니라 이 순간 정해지고 있구나, 라고. 운명은, 피할 순 없지만 그것에 부딪혀갈 순 있구나, 라고. 죽어가는 몸을 알았을 때, 가불에 실패한 그는 무엇을 살리려 한 걸까. 무엇을 살리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일터의 기계를 놓지 않은 걸까. 당겨쓴 가불금도 없으면서 그는, 무엇에게 무엇을 갚아야만 했던 걸까. 사는 날까지…… 거기다 뭐? 당겨주지도 않을 거면서 개새끼라니…… 그 개새…… 아니 그 사장 역시 오래 살긴 어려울 듯했다. 시름시름 말라갈 듯했다. 마음의 빚이 엄청날 테니까. 나무아미……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스르르 스님을 바라보았다.
"저렇게 없어도 돕고 사는데……"
내 안의 뭔가가 자꾸 중얼거렸다. 평생 없이 살아왔다는 그에게도 들린 걸까. 뭘 찾는 건지, 아까부터 바랑을 뒤지던 스님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옅게 미소 짓는 스님의 얼굴이 창백했다.
"늘 소화제를 챙겨 다니는데…… 똑 떨어졌습니다."
스님이 바랑에서 꺼낸 빈 소화제 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스님은 속이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기 있어요!"
"여기 있습니다!"
이분들이 이렇게 빨랐었나……? 늙은 빈소 식구들이 한꺼번에 우다다다 몸을 일으켰다. 각자의 가방을 든 그들이 도로 상 앞에 둘러앉았다. 우덜덜덜.
"우리 나이쯤 되면 소화제는 필수지요."
사수가 가방에서 꺼낸 소화제 한 알을 스님 앞에 내밀었다.
"저는 여기 또 있으니, 넣어놓으시지요."
보육교사 두 수녀님 중 큰 수녀님이 사수의 한 알 옆에 소화제를 꺼내 놓았다. 한 박스, 새 거였다.
끜-
보기만 해도 후련한 걸까. 창백하게 소화제를 바라보던 스님이 작은 트림을 흘렸다. 채소탕 한 사발에 물 네 컵을 연속으로 비운 스님의 트림 소리는 어쩐지 공허했다. 똘라가 재빨리 물을 따라 스님 앞에 내밀었다. 스님이 소화제 한 알을 물 한 모금과 함께 삼켰다. 새것은 그전에 바랑 깊숙이 넣어두었다. 나는 조금 울 뻔했다. 덧댄 자국 가득한 스님의 낡은 바랑은 공짜로 줘도 아무도 안 가질 듯했다.
*
“더…… 드릴까요?”
대장 조리사가 스님에게 물었다. 대장 조리사는 장을 봐 와야 한다며 똘라의 이야기 중간에 빠진 참이었다.
“아뇨, 아뇨, 아뇨, 아뇨, 아뇨! 아뇨! 내일도, 모레도, 올 겁니다. 그때! 잘 부탁드립니다……”
막 소화제를 넘긴 스님이 양손으로 손사래를 치며 허리를 굽혔다. 이마가 상에 닿을 듯했다.
“혹…… 입에 맞지 않으셨는지요……”
앞치마를 말아 쥐는 대장 조리사의 손등에서 서서히 혈관이 드러났다. 조금 울 뻔하던 나는 풋 웃음이 터졌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그들을 보며 나는 장례식장에 들어선 이래 가장 길게 웃고 말았다. 이 한겨울에 한여름 초록을 떠올리게 하는 대장 조리사표 채소탕은 보기만 해도 썼다. 사발 밖으로 뻣뻣하게 삐져나온 푸른 이파리들은 그곳에서 또다시 숲을 이루었다. 어쨌거나 스님은 그 꽉 찬 채소탕을 국물 한 모금 남기지 않았고, 아마도 우리의 대장 조리사는 국물 한 모금이라도 더 퍼담았을 터였다. 스님과 대장 조리사는 각자의 방식으로 끔찍하게, 서로를 배려하고 있었다.
대장 조리사가 주방으로 향했다.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장 봐 온 채소를 새로 다듬는 걸 보니, 대장 조리사는 스님 입맛을 저격할 채소탕을 본격 개발할 모양이었다. 사수 말마따나 대장 조리사의 손끝에서 한 번에 ‘요리’라는 게 탄생한다는 건 모세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므로 중간 맛이라도 되는, 채소 이파리 숨이라도 제대로 죽은 탕이 완성되기까진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터였다. 과연 스님이 그 채소탕을 맛보게 될지는 미지수였지만, 여하튼 스님은 장례식 내내 오실 모양이었다. 내일도. 모레도. 하긴, 그게 스님만의 추모 방식일 테니까. 그런 스님을 바라보는 사수의 입가가 작게 떨렸다.
스님은 열정 가득한 새내기 시절을 캄보디아에서 보냈는데, 일주일 동안 진행된 한 장례식에서 쉬지 않고 염불을 외다 쓰러진 적이 있었다. 사경을 헤매다 사흘 뒤 깨어났다는 스님. 의욕이 앞선 나머지 그대로 부처님 곁으로 갈 뻔했다는 이 서늘한 무용담은 스님의 인터뷰에 매번 등장하는 레퍼토리였다. 조금 전, 제단 앞에 꿇어앉아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염불을 외는 스님의 뒷모습을 보며 기도하듯 중얼거리던 사수. 그 혼잣말을 나는 들었다. 젊어서도 늙어서도 좀체 염불을 그칠 줄 모르는 저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이 열리기 전부터 준비해두신 거룩한 종교인임을 종교인으로서의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멘. 예수님 고향도 제대로 몰랐던 어린 시절, 그때는 귀했다는 티브이 속에서 골고다 언덕 세트를 오르는 배우 예수님을 우연히 본 뒤 사흘을 울었다던 사수였다. 그 이유를, 사수는 이젠 궁금해하지 않는다고 했다.
“스님, 센터에 모셔다 드릴까요?”
똘라가 벽시계를 보며 물었다.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채소탕 리필을 거절한 스님은 눈을 감고 이따금 고개를 끄덕이는 게 다였다. 자는 척하는 줄 알았는데 진짜 잠든 것도 같았다. 새벽 1시, 사실 빈소 식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지쳐 보였다.
자아의 식사 시간이기도 한 그 시각, 나는 뜨뜻하게 분유를 타 대기실로 들어섰다. 희미한 달빛 아래 누운 자아는 여전히 단잠에 빠져 있었다. 깨워서 먹여야 할까, 망설이다 일단 자아 옆에 몸을 누였다. 하아…… 마스크를 벗어던지듯 내려놓았다. 습기가 얼마나 차 있었는지 훅 밀려드는 찬 공기에 뿌리까지 시큰했다. 나는 젖병을 이불속에 묻었다. 젖병 물려본 아기들이 수두룩했지만 이 시간에 물려본 적은 없었다. 그건, 늘 사수의 일이었다.
다행히 자아는 밥에 진심인 아기. 머지않아 작게 입맛 다시는 소리가 났다. 이불속에서 꺼낸 젖병은 아직 따뜻해서 다시 데우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자아를 품에 안았다. 그러나 여러 번의 시도에도 자아는 혀로 젖꼭지를 밀어내며 식사를 거부했다.
‘아아…… 그거……’
자아의 손을 끌어 단추와 단추 사이에 얹었다. 작은 손가락들이 그 사이를 거칠게 파고들었다. 조금 웃음을 띠며, 나는 다시 자아에게 젖병을 물렸다. 그러나 밀어내는 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니야……?’
자아의 손길에 짜증이 묻어났다. 결국 몇 가닥을 뽑아내며, 자아는 단추와 단추 사이에서 손을 빼버렸다. 들어본 적 없는 낯선 소리와 함께. 그 소리로 자아는 낮게 울기 시작했다. 혼을 쏙 빼놓는 자지러짐이 아닌 숨죽이지 않고선 알아채기 힘들 듯한 흐느낌이었다. 이 자아는 내가 알던 자아가 아니었다. 나는 멍해졌다. 스윽 식은땀이 났다. 그곳은, 그제야 아렸다. 뒤늦게 얼얼해져 오는 뽑혀 나간 자리를 마구 문지르며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달빛에 묻혀 있던 자아가 서서히 선명해졌다.
자아의 낯선 행동은 계속되었다. 무언가를 놓친 것처럼, 이번엔 손을 허공으로 뻗어 죔죔을 했다. 흐느낌은 끊어질 듯 이어졌다. 혹, 아픈 걸까. 뽑혀 나간 자리를 문지르다 말고 나는 자아에게 몸을 숙였다. 자아의 턱받이에서 옅은 분유 비린내가 났다. 내 품을 스쳐 간 수없는 아기들이 내게 남긴 냄새. 입 안 가득 깨물어보고 싶던, 고소한 냄새. 아기의 숨 냄새. 나는 더욱 몸을 기울여 자아를 살폈다. 어둑어둑한 시야 언저리에서 자아의 손이 어룽어룽 허공을 쥐었다 폈다 하는 게 느껴졌다. 죔죔…… 죔죔…… 그러다 홀연 시야 밖으로 사라진 자아의 손. 그 손이 내 턱에서 몇 번의 죔죔을 한 건 그때였다.
'……!'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 턱이었다. 자아의 손은 몇 번 그러곤 어디론가 가버렸지만 내 수염 끝엔 진한 죔죔의 여파가 남았다. 파르르르…… 파르르르……
'……!'
나는 뿌리부터 쫘악 소름이 돋았다. 어둠이라고 무작정 안심할 순 없었다. 털에서 안정감을 찾는 아기가 수염을 느껴버리다니…… 수염에서 더 큰 안정감을 찾기라도 한다면…… 만에 하나……
'……!'
분유고 뭐고 마스크부터 써야 할 듯했다. 나는 허겁지겁 바닥을 더듬었다. 머리맡에 던져놓았던 마스크가 한 번에 손가락에 걸렸다. 그걸 막 끌어당기는데, 자아의 흐느낌이 마법처럼 뚝 사그라들었다. 동시에 나도 뚝 얼어붙었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완벽하게 가만히.
‘……!’
힘이었다. 그것은, 안간힘이었다. 내 심장이 벼락을 치며 뛰었다. 안간힘은 본능이었다. 아기의 본능은 여리지만 확고했다. 그것은 단단한 씨앗 같았다. 꽉 쥔 두 주먹에 그 힘을 조금씩 조금씩 더해가며, 자아가 내 양쪽 가슴을 움켜쥐었다.
‘……!’
전혀 다른 부분의 단추와 단추 사이였다. 자아의 힘이 그곳을 파고들었다. 나는 이미 땀범벅이었다. 자아는 모유를 찾고 있었다. 안간힘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