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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은 Oct 27. 2024

14화 (3)업혀

첫사랑에 빠진 고대로는 도다리를 챙겼다. 마음은 삼시 세끼에 야식까지 챙겨주고 싶었지만, 실제론 말 한 번 붙이기 송구스러웠다. 식판을 들어주려 해도, 책가방을 들어주려 해도 도다리는 철벽이었다. 이렇게 자라온 아이구나, 싶으면서도 순수한 호의를 무작정 오해하 것 같아 고대로는 숱한 밤을 상심으로 날려 보냈다. 공 차는 꿈이 도다리에게 걷어차이는 꿈으로 변했. 그러다 그날이 왔다. 벚꽃잎이 흩날리는 봄날의 하굣길, 그들이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팔은 멀쩡하거든?”


도다리가 고대로에게 쏘아붙였다.


“그런데?”


부처님 미소로 응수해 온 고대로도 이번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만난 지 년 만에 도다리에게 처음 정색했다. 열다섯, 둘 다 중이병에 걸려 한참 예민해진 그때.


“내가 할 테니까 두라고!


도다리가 긴 다리를 이리저리 피하며 소리쳤다. 고대로가 다리를 꿋꿋이 따라가며 풀린 신발 끈을 묶었다.


“신발, 바꿔야겠다.”


단단히 매듭을 지은 고대로가 도다리의 짧은 다리로 시선을 옮겼다.


석 달 전에 바꾼 신발이었다. 한쪽 뒤꿈치가 빨리 닳기에 신발을 자주 바꿔야 했다. 사수는 때맞춰 새 신발을 내밀었지만, 도다리는 눈치챈 지 오래였다. 보육원 살림 늘 거기서 거기라는 걸. 사수는 신발 하나로 5년 이상을 버티는 중이었다. 도다리는 갈수록  뒤꿈치가 신경 쓰였다. 한 걸음이 곧잘  걸음이 되었다. 얼마 전부턴 같은 반 여자아이가 고대로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날아갈 듯한 몸과 웃음을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도끼눈을 뜨고 관찰한 결과, 걔만 보면 특유의 미소가 잦아지는 게 고대로 역시 관심이 없는 것 같진 않았다. 도다리는 여러모로 고민이 깊었다. 초경이 시작되었다. 또래보다 늦어 걱정했는데 막상 시작하니 더 걱정이었다. 열 살 꼬마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리 아빠라도 이렇게나 커버린 딸을 한 번에 알아보진 못할 것 같았다. 몇 밤이라더니 백 밤, 천 밤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은 아빠……


“관심 꺼.”


도다리가 고대로가 묶은 신발 끈을 풀어 젖혔다.


“나도 안 보고 싶다.”


고대로가 신발 끈을 다시 묶었다.


“그러니까 보지 말라고.”


도다리가 신발 끈을 다시 풀었다.


“어떻게 안 보냐고.”


고대로가 신발 끈을 다시 묶었다.


“야!”


“뭐!”


“너, 내가 불쌍해?”


도다리의 눈에 눈물이 그렁했다.


“전혀.”


고대로가 무심하게 일어섰다. 잠시 앞을 응시한 그가 지그시 도다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비참해지니까.”


도다리가 고대로를 노려보았다. 켜뜬 도다리의 두 눈에서 방울방울 눈물이 떨어졌다.


“싫다면?”


“네가 뭐라도 되는 것 같아? 우쭐해?”


고대로가 코웃음 치며 바닥에 도로 주저앉았다. 도다리의 눈앞에 훅, 그가 드리웠다. 서로의 코끝이 닿았다.


“네 마음껏 상상해.”


고대로가 도다리의 신발 하나를 거칠게 벗겨냈다. 나머지 신발 하나를 는 더욱 거칠게 벗겨냈다. 도다리의 신발 하나, 하나가 내려앉은 벚꽃잎 위에 가지런히 놓였다. 고대로가 찬바람을 일으키며 뒤돌았다. 땅 위에 켜켜이 쌓인 꽃잎이 그의 움직임을 따라 붕 떠올랐다, 내려앉았다. 그가 걷기 시작했다.


“나더러 뭘 어쩌라는 건데!”


대략 열 걸음 정도 멀어진 고대로를 향해 도다리가 소리쳤다. 도다리는 십 리가 그쯤인 줄 알았다.


“나더러! 뭘! 뭘! 뭘! 얼! 어쩌라는……


고대로가 반쯤 돌아섰다. 완전히 돌아서려다 반쯤에서 그쳐버린 그는 지금 내가 발병이 났구나 싶었다.


“어쩌라는 게 아니다. 이젠! 어쩌지 말라는 거다.”


발병 난 고대로가 소리쳤다. 그들이 멈추었다. 정적. 정적이 이어졌다. 


철푸덕!


마침내 도다리는 뒤로 벌렁 드러누웠다. 책가방째 누워버려서 얼른 벗고 다시 누웠다. 더는 앉아 있을  없었다. 도다리는 앞이 안 보였다. 벚꽃잎이 퍼붓듯 쏟아졌. 그래서 아예 누웠더니, 꽃잎은 이제 사방을 간질였다. 책가방이 등에 배겨도 안 배겨도 사방이 간지러운 건 같았다. 특히 코끝이 간지러웠다. 꽃잎은 퍼붓고, 도다리는 여전히 눈 뜰 수 없었다. 도다리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고여 있던 눈물이 사사삭, 귓바퀴를 타고 흘렀다. 도다리는 울었다. 사사삭 사사삭 소리 내어 울었다. 그의 말이 옳았으니까. 멀어지는 등 뒤에선,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뚝.”


변성기도 비껴간 하이 톤. 수치화할 수 없는 무게이므로 가볍다기보단 자유로운 그의 하이 톤. 사뿐 코끝 위로 날아 앉을 듯, 핑그르르 햇살 사이를 떠도 한 장의 꽃잎 같은 그의 하이 톤. 도다리는 냉큼 몸을 일으켰다. 두 팔을 뒤로 뻗은 채 그 자리에 꿇어앉은 그의 모습. 언제부터였을까. 그의 머리에 어깨에 여기저기에 하얀 꽃잎이 소복했다. 작게 바람이 불자 소복한  땅으로 나렸다. 하늘에서 나려 오는 건 그의 여기저기로 새로이 쌓였다. 너는 나의 꽃잎. 바람이 불어도 안 불어도 그에게 머무르는 꽃잎은 만큼이었다. 그건, 잠깐이었다. 나는 너의 바람. 도다리는 양쪽 소매로 번갈아 눈물을 훔쳤다. 그러곤 재빨리 옆에 놓인 신발을 챙겨 들었다. 


“잠깐.”


그 순간 고대로가 몸을 일으키며  뒤돌았다. 그의 여기저기에 쌓인 꽃잎이 햇빛과 함께 부서지며 자체 후광 효과를 냈다. 도다리는 지금,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까까머리 소년 예수님을 보았다. 고대로가 두 무릎을 굽혀 그 자리에 다시금 꿇어앉았다. 그들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도다리는 고대로의  눈을 마주 보았다. 고대로는 도다리의 두 발을 마주 보았다.


“업혀.”


고대로가 말하며 두 팔을 뒤로 뻗었다.


훗. 오란다고, 도다리가 다. 책가방을 안 메고 와서 얼른 메고 다시 다. 챙겨 든 신발은 양손에 신고, 양말 바람으로 온다. 착 스윽 착 스윽. 고대로는 조금씩 가까워지는 도다리의 두 발을 더욱더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에 도다리의 두 발이 점점 가득 찼다. 늦게,가 아니라 천천히. 착 스윽 착 스윽. 당장,이 아니라 곧. 도다리의 리듬이 그의 꿇은 무릎을 타고 땅을 울다. 고대로는 통째로 따라 울렸다. 도다리의 리듬에, 그는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태어난 이래 최대치로 벌떡이는 심장을 손바닥으로 눌러 진정시켰다. 경험해본 적 없는 불규칙함이었다. 그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도다리가 고대로의 등에 업혔다. 흡, 일어선 고대로는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하나만 생각했다. 가볍다고. 열 살 꼬마만큼 가벼워서 날마다 업어도 거뜬하겠다고. 그런 고대로의 목을 도다리는 힘주어 끌어안았다. 캑캑대는 기침 소리에도 인정사정없었다. 놓을 수 없었다. 도다리는, 고대로를 놓아버릴 수 없었다. 처음이었다. 아빠 아닌 이가 무릎을 내어준 건. 그 등이, 멀어지는 아빠의 등보다 안전해 보이는 건. 좁다란 에 저릿해오는 두 다리를 홀랑 내맡긴 건. 첫사랑이었다.


“잠시.”


나아가던 고대로가 불현듯 멈춰 섰다. 구부정하게 기운 그의 곡선만큼 그의 등에 업힌 도다리의 몸이 앞으로 쏟아졌다. 고대로는 두 발에 더욱 힘을 주어 땅을 버텼다. 그의 두 손바닥이 대롱대롱하는 도다리의 두 발바닥을 가만가만 두드렸다. 작게 흙먼지가 일었다.


"도다리, 양말에 빵구 나면 말해."


"……"


조금  도다리의 신발을 벗기던 고대로는 흠칫했다. 웃지 마, 웃지 마, 박력을 잃지 마, 가까스로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도다리의 발바닥에서 하나, 하나, 새빨간 하트가 튀어나왔다. 하트 위에선 'as it is'이라는 문구가 양쪽 입꼬리를 끝까지 올린 채 동그라미로 미소 지었다. 얼마 전 고대로가 도다리의 책상 위에 올려둔 쿠션 빵빵한 순면 양말. 고심에 고심을 덧대 고른 양말. 너를 처음  그날부터 내 심장을 네 발아래에 고대로 받쳐두었다, 뭐 그 자그마한 뜻을 어필해보았다. 주는 사람 이름을 적어놓은 것도 아닌데, 양말을 발견한 도다리는 바로 교실을 가로질러 와 고대로에게 말했다. 뭐 이런 걸 다. 필요 없는 척하더니, 벌써 꿈치가 해져 있었다.  발 다.


"꽉 잡아."


고대로가 등에 업은 도다리를 추켜올렸다. . 그가 발을 떼었다.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도다리의 손에 들린 기우뚱한 신발 한 켤레가 왼쪽 오른쪽 왼쪽 오른쪽 춤을 추었다. 흩날리는 꽃잎처럼.




*



새벽 4시, 수실라 부부가 무사히 돌아갔다. 잘 먹었고, 이제 집에 도착했노라, 바로 출근해야 하노라, 푸스빠람이 서툰 한국어로 사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대장 조리사와 두 수녀님이 주방 모퉁이에 이부자리를 폈다. 스님은 지금껏 자세 한 번 바꾸지 않은 채 창가에서 바랑을 베고 잠들어 있었다. 대자로 누운 스님의 이마에 달빛이 비스듬했다. 똘라가 스님이 걷어찬 이불을 끌어다 다독였다.


"오전 9시, 입관입니다."


사수가 눈을 거의 감은 채 말했다.


"저는 스님 곁에서 잘게요."


똘라가 스님 발치에 이부자리를 펴며 말했다.


"자비, 들어가자."


사수가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밋밋한 사수의 눈두덩에 네다섯 겹의 쌍꺼풀이 졌다.

    

나는 놀랐다. 마주한 사수의 눈에 핏발이 가득했다. 하도 새빨개서 순간 피가 고인 건 줄 알았다. 모두가 피곤해 보였지만 특히 사수의 피로도가 심히 걱정되었다. 그러고 보니 장례식장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잔 누구와는 달리, 사수는 거의 이틀 밤을 새운 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수가 갑자기 벽을 짚으며 휘청거렸다. 벽에 기댄 사수의 몸이 속절없이 미끄러졌다.


나는 재빨리 사수를 부축했다. 주저앉은 사수를 일으키는데, 손안에 아기의 것만큼 작은 어깨가 감겨와서 또 한 번 놀랐다. 나는 사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굵직한 주름들이 사수의 눈가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마, 뺨, 목…… 그곳에서 이곳저곳으로 뻗어 나간 갖은 굴곡 들. 그 사이사이에서 얽히고설킨 세월의 옹이들. 큰 거 하나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희미한 검버섯이 여섯 개나 되었다. 오래전에 꿰맨 듯한, 아래턱 끝에 남은 희끗희끗한 흉터는 아예 금시초문이었다. 사수는 마치, 그제도 보고 어제도 보고 오늘도 본 그 수학 문제 같았다. 볼 때마다 새로운. 나는 불쑥 사수가 낯설게 느껴졌다. 사수는 여기서 얼마나 더 미분되어 결국엔 무엇으로 적분 될까. 아리송하던 개념이 한 방에 정리되었다. 할머니보다 더 늙으면 뭐가 되는 걸까. 사수는 꼭 그것 같았다.


어깨에 사수를 거의 매단 채 상주 대기실 문을 열었다. 딴 세상이 열리듯, 자아의 경쾌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달빛에 묻혀 잠든 자아를 가운데에 두고 사수와 나는 나란히 누웠다.


땀이 났다.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나 혼자 꺼내고 나 혼자 도로 접어 놓은 철 지난 사랑 이야기가 새삼스러워서는 아니었다. 그들의 러브스토리는 식구들 입과 가슴을 서슴없이 오가며 농담처럼 둥글어진 지 오래였다. 상주 자리에 앉은 뒤로, 나는 이럴 때가 가장 곤욕이었다. 뭐라도 하지 않는 때. 바닥에 머리를 파묻어도 확 잠이 오지 않는 이런 때. 나는 지금 자꾸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떠남이 아닌 보냄을 위해. 그들은 떠난 적이 없으므로 그들을 보내기 위해. 돌이켜 보니 그러기엔, 자아를 안고 흔들면서 걷는 그때가 가장 쉬운 때였다. 내가 부서져라 걸을 때, 그로 인해 내 품에 안긴 자아가 흔들릴 때, 그제야 그들은 우리에게서 조금씩 멀어지는 듯했다. 그만큼 걱정 없이. 모든 식구가 겨우 잠자리에 든 지금, 영원한 상주는 아니어도 나는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잠들면 아무 소리도 못 듣는 내가 숙면하는 사이 자아가 깬다면 피곤에 찌든 사수는 할 수 없이 나보다 먼저 일어나야 할 거였다. 더욱이 조문객은 새벽 2시에 찾아왔다. 새벽 4시 넘었다고 조문객이 안 온단 법은 없었다. 나는 달빛 아래를 기어 내 가방을 더듬었다. 당장 뭐라도, 찬물에 세수라도 해야 좀 더 오래 버틸 듯했다. 새 마스크를 챙겨 욕실 문고리를 잡은 그때였다.


"어디 가니."


'……!'


꽉 잠긴 사수의 목소리는 섬뜩했다.


"화장실 좀……"


"어디 가."


나는 왠지 움츠러들었다.


"세수하러……"


"왜! 도대체 왜!"


나는 슬그머니 뒤를 보았다. 달빛에서 벗어난 사수는 어둠에 파묻혀 형체조차 없었다.


"땀이 나서……"


"다리야! 대로야! 얘들아…… 어디 가니…… 아버지…… 차라리 저를……"


어둠 속에서 작고 하얀 물체가 어렴풋이 허공을 휘저었다. 손. 사수의 손이 허공을 쥐었다, 놓았다, 했다. 죔죔…… 죔죔……  움켜쥐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그러는 내내 사수의 주먹은 떨렸다, 멈추었다, 했다. 움켜쥔 그걸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사수는 손가락 사이사이로 그들이 흘러내리는 꿈을 꾸는 모양이었다.


나는 문고리를 놓았다. 사수 곁에 앉아, 허공에서 떨리는 사수의 주먹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사수의 손에서 어마어마한 악력이 느껴졌다. 경직된 그 손등을 살살 어루만지자, 그곳에서 악력과 함께 솟아 있던 혈관들이 서서히 제자리로 흡수되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 자리에 누웠다. 내 움직임을 따라 힘없이 바닥으로 묻어오는 사수의 손. 나는 사수의 손을 감싼 내 두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아무것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가지 마, 가지 마, 그렇게 오래 중얼거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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