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모태 솔로 똘라에게 이상 신호가 감지된 건 오래전 일이었다. 도다리와 고대로, 그들의 러브스토리야말로 나를 포함한 모든 식구가 인정하는 자람 보육원의 전설이었다. 예수님과 결혼한 사수 역시 그들의 러브스토리 안에선 칠십 살이 된 지금도 길을 잃곤 했다. 두고두고 눈부신 사랑이야, 확 예수님 아닌 다른 이를 사랑해 볼까. 모태 불자로서 약 70년째 부처님과 동고동락 중인 대장 조리사의 어깨를 때리며 얼마 전에도 까르르 들먹이는 걸 봤다. 본의 아니게 도로 모태 솔로가 되었지만, 나 역시 그들의 러브스토리에 그 아이와 나를 수시로 대입해보던 때가 있었다. 물론 그때의 결말은 무한대의 해피엔딩이었고 말이다. 그러므로 연애에 있어 수녀보다 자유롭고, 오직 본인 의지로 모태 솔로였던 똘라가 그들의 러브스토리에 명중되어 자기도 모르게 눈가를 비벼버린 건, 어쩌면 뻔한 결과였다. 거대한 하루살이가 눈동자에 앉아도 꿈뻑꿈뻑 버틸 뿐 절대 안 비볐다. 그곳엔 아침잠과 맞바꾼 아이라인이 있었으니까. 똘라의 견고한 그걸 서서히 무너뜨린 게 바로 그들의 러브스토리였다. 이제 똘라는 그리되, 눈물이 나면 그냥 눈가를 비비며 울게 되었다. 그렇게 울고 나면 자신에게서 희미하게 엄마가 보였다. 달란 적도 없는데 엄마가 강제로 물려준 실낱같은 두 눈. 그건 똘라가 엄마에게 물려받은 유일한 것이기도 했다. 시원하게 울고 다시 그리는 편이 여러모로 속 편했다. 눈이 두 배로 커지는 마법을 포기할 순 없었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딱 두 배여야 했다. 똘라의 아이라인은 똘라 자신만이 완성할 수 있었다.
자람 보육원 마당에서 공을 차던 고대로 앞에 도다리가 나타난 건, 그가 열 살 때였다. 알고 보니 동갑이었지만 도다리는 작아도 너무 작아 한참 동생처럼 보였다. 또한 충분해 보였다. 사랑을 양보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 사랑을 독차지해 온 아이. 보육원 밖 세상에서 온 아이. 고대로는 일단 인사를 건넸다.
"환영한다."
고대로의 환대에 아이가 눈을 희번덕였다.
"잘 왔다는 뜻이냐?"
삐뚜름한 태도. 어느 정도 자란 아이들이 입소할 때 보이는 반응 중 하나였다.
"못 올 곳도 아니지."
고대로는 너그럽게 대꾸했다.
"끽해야 열 살? 선배 노릇은 꿈도 꾸지 마라."
건들건들 짝다리에 팔짱까지 끼는 의도가 충분히 이해되어, 고대로는 작은 아이가 귀여웠다.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도다리."
의도와는 어울리지 않는 착실한 대답도 귀엽기 그지없었다.
"오빠라고 불러. 훗, 물론 네가 원한다면."
"도다리라고."
고대로는 머쓱했다.
"으응…… 난 고대로…… "
"고대로라고 부를게. 고대로니까."
아이가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뒤돌았다. 멀어져 가는 뒷모습에서 고대로는 눈을 떼지 못했다. 온전치 못한 균형이었다. 의도적 짝다리가 아닌 본래 다리였다. 다리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짧았다. 착 스윽 착 스윽. 이윽고 아이가 보육원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빛을 머금고 태어난 아이였다. 속이 훤히 비치는 아이. 겉과 속의 경계가 없는 아이. 아이의 걸음처럼, 고대로의 가슴 한쪽이 툭 내려앉았다. 고대로는 내려앉은 가슴에 손을 얹었다. 작은 아이의 껑충한 발아래로, 세차게 뛰는 이 심장을 받쳐주고 싶었다. 첫사랑이었다.
믿음의 뿌리가 흔들렸다. 도다리는 십 년 인생 최대 고비를 맞았다. 함께였던 날은 손가락 열 개로 거뜬히 셀 수 있는 아빠. 그리웠던 날은 많아서가 몰라서 셀 수 없는 아빠. 새카맣게 그을린 아빠 얼굴이 벌써 아른거렸다. 가족 여행. 결국엔 오지 않을 그날을 기다리다 열 살이 돼버렸지만, 아빠를 사랑하지 않은 날은 없었다. 사랑은 내가 나에게 시켜서 생겨나는 게 아니었다. 도다리는 바다 위 아빠가 늘 걱정되었다.
사랑하는 아빠를 걱정하다 잠자리에 드는 밤. 아빠는 얼마큼 먼 바다에 있는 걸까. 일기예보가 먼바다에 풍랑특보를 내린 밤이면 누운 등을 튕기며, 두 다리를 되는대로 뻗지르며 도다리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비명 속에선 아직 입에 붙지 않은 욕이 저절로 되풀이되었다. 그렇다고 그게 입에 문 이불을 뚫고 밖으로 새어 나오는 일은 없었다. 엄마한테 걸리면 등짝 스매싱이었다. 소리 죽여 아빠를 부르는 일. 땅에 누워, 바다 위에 누운 아빠를 향해 온몸으로 뛰는 일. 기다림. 도다리는 그것이 자신만이 감당해야 하는 무게라 여기지 않았다.
몇 밤 자면 온다더니 최소 백 밤이었다. 아빠는 세계의 바다를 구석구석도 누비는 원양어선 위에서 삼백 밤 넘게 돌아오지 않은 적도 있었다. 기억에 없는 어린 시절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아빠 얼굴을 익혔다. 십 년 인생 전부를 아빠를 기다리는 데 썼다. 이름도 생소해 아직도 그 발음이 어려운, 드문 병에 걸린 엄마와 함께. 그렇다고 아빠를 믿지 않은 날은 없었다. 아빠는 그 믿음을 아내의 약으로, 너무 헐렁하거나 너무 조이는 딸의 새 신발로 바꿔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몇 밤 뒤면 바다로 돌아가야 했지만. 그런 아빠가 딸을 보육원에 맡길 줄이야. 이젠 엄마도 죽고 없으니 여기서 혼자 기다리라는 걸까. 평생 기다리게 하더니 결국 버리는 거냐고, 도다리는 속에서 나오는 대로 따지고 말았다. 몇 밤, 이번엔 진짜 몇 밤일 거라고 아빠는 언제나처럼 말끝을 흐렸다. 도다리는 아빠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몇 밤이 아닐 것 같았다. 이번에는 더더욱. 바다로 떠나가는 아빠가 지금처럼 대충 운 적은 없었다. 엄마도 없는 마당에 저런 억지웃음까지. 이건, 그동안 숱한 이별 앞에서 아빠가 보여준 진정한 울보의 자세가 아니었다. 도다리는 보란 듯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성한 다리가 왈칵 떨렸다. 아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빠는 길이가 다른 두 다리를 갖고 태어난 딸에게 '다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도다리. 거창한 뜻은 없고, 멀쩡한 두 다리로도 툭하면 넘어지는 게 인생인데 그마저 온전치 못하게 세계에 내놓은 게 죄스러워 이름으로나마 성한 다리를 만들어주자는 취지였다. 경계를 잇길. 너의 삶이, 네가 달려 나갈 세계에 안전하게 연결되길. 그래놓고 아빠는 도다리를 도다리라 부르지 않았다. 도다리는 아빠가 자기 이름을 옹알이라도 하길 지금껏 기대했다. 알고 보니 아빠 역시 병에 걸려 있었다. 딸의 이름을 부르려 할 때마다 목소리가 사라지는 이상한 병. 아빠의 병에는 이름이 없었다. 도다리는 아빠를 사랑했지만, 이름 없는 병에 걸린 울보 아빠를 닮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몇 밤이면 돌아온다는 아빠의 약속을 이번에도 씩씩하게 믿기로 했다. 대신, 늘 그래왔듯 반만 믿기로. 몇,이라는 밤의 개수와는 상관없이 아빠는 꼭 돌아온다고. 도다리는 아빠를 기다리는 자신을 가엾게 여기기 싫었다. 그건 아빠가 가여워지는 일이기도 했다. 딸을 앞에 두었을 때, 자신이 얼마나 똥 마려운 표정이 되는지 아빠는 모르는 듯했다. 딸이 가여워지는 만큼 자신 또한 가여워진다는 걸. 아빠에겐 독한 약이 필요해 보였다.
"어디 죽으러 가? 울지 말고! 돈이나 많이 벌어 와! 얼른 가! 얼른!"
"……"
아빠와 헤어진 도다리는 먼저 뒤돌았다. 언제나처럼. 자람 보육원 마당으로 들어서자 사라 수녀님이 멀리서 부산스레 손을 흔들었다. 뭘 두 손씩이나. 도다리는 가볍게 손가락을 들어 대충 성의만 비쳤다. 저쪽에서 오뚝이처럼 넘어졌다 일어섰다 하는 수상한 아이에게 시선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골키퍼 없는 빈 골대 앞에서 뛰고 넘어지며 혼자 공을 찼다. 저리 진지한데, 저리 진심인데, 어째서 골은 들어가지 않는 걸까. 평생 차본 적 없는 공, 평생 공을 찰 수 없는 다리. 진짜 신이라는 게 있어서 단 한 번 공을 찰 기회가 주어진다면, 도다리는 그 공을 골대째 우주 밖까지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엿 같은 기분이라면.
슛이 계속되었다. 공과 아이의 발은 갈수록 엄격히 분리되었다. 아이는 오로지 준비 자세에만 집중했다. 연습을 얼마나 한 건지 헛발질 폼도 그럴듯해서 이번엔 진짜 들어가겠는데, 하고 몇 번 속았다. 아이는 지금까지 골대도 맞히지 못했다. 그러곤 웃었다. 차려던 공을 보기 좋게 밟아버렸을 땐 미끄러지면서 웃었다. 픽! 픽! 이따금 공은 아슬아슬하게 그물을 스치기도 했다. 그때마다 도다리는 마치 공중 부양을 하는 듯한 희열을 느꼈다. 아이는 보육원 담장 너머로 날아가는 공보다 빠른 속도로 마당을 뛰어다녔다. 동시에 검지로 하늘을 막 찌르는 걸 보니, 세리머니인 모양이었다. 큰 것보단 작은 게 먼저인 아이. 디테일이 소중한 아이. 과정이 곧 결과인 아이. 이 아이는 그 다리로 공을 찰 게 아니라 저 다리로 달리기를 했어야 해. 도다리는 조금 웃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연달아 서너 번 그물을 스친 공은 그 뒤론 감감무소식이었다. 공은 아이에게서 완전히 분리되어 아예 보육원 지붕 위에 꽂혔다. 체중을 싣고 선 한쪽 다리가 슬슬 저렸다. 시시해진 도다리는 돌아서려고 몸을 틀었다. 그때 그 아이가 헤벌쭉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환영한다."
눈을 희번덕일 필요까진 없었는데 아이의 환한 미소에 괜스레 심통이 났다. 환영한다니. 자세한 사정은 둘째치고 자람 보육원이 아이의 집인 건 분명했다. 세상에 알려진 보육원은 내내 미소 지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못 올 곳도 아니지."
상황은 더욱 의아해졌다. 아이의 한마디에 마음속에서 굳어가던 아까 그 엿이 주욱 늘어났다. 달달달 입꼬리가 느슨해졌다. 도다리는 그 이유를 알고 싶지 않았다. 도다리는 오로지 이 순간을 알고 싶었다. 이 순간은 분명, 기다려온 순간이었다. 아주 오래. 아이의 한마디는 어쩌면 누군가에게 꼭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지도 몰랐다. 도다리는 아이와 순순히 통성명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게 이유였다. 이름 한번 현실적이었다.
'고대로? 도다리 못지않네.'
돌아서는 도다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얼마 못 가 도다리는 입이 찢어지게 웃고 말았다. 아이와 자신에겐, 그게 골이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