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광이 멈췄다.
“지금 보이는 이게 방광입니다. 소변으로 꽉 차서 터지기 일보 직전이네! 큰일 날 뻔했어요!”
산부인과 초음파 진단을 하는데 새까만 지방 덩어리 같은 모양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의사 선생님은 친절하지만 꽤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지금 당장 소변을 빼야 한다고. 산부인과에 가 본 여자들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했을 굴욕(?) 의자에 반쯤 누워, 나는 내 가장 밑바닥의 물을 끝없이 배출해냈다.
“아이고, 응급실을 갔어야지. 이걸 어떻게 참았을까?”
“그렇게 심각한가요?”
“아니 소변 나오는 걸 봐봐요. 내가 지금까지 소변 받아본 환자 중에 양이 제일 많네!”
의사 선생님은 한참 동안 내 소변을 받아내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아무리 아랫배를 누르고 눌러도 나의 방광은 멈출 줄 몰랐다.
일반적으로 방광에 200-300cc 용량(여성의 경우)의 소변이 차면 방광 근육 수용체가 활성화되면서 뇌로 신호를 보내고, 방광을 수축하는 운동신경을 자극해 소변을 배출하게 된다. 하지만 방광의 기능이 일시적으로 정지되어 방광에 계속 소변만 차오르게 되는 것. 그로 인해 방광이 최대 3배 크기로 늘어나고, 아랫배가 팽팽해지고 극심한 하복부 통증이 증상으로 수반된다.
그랬다. 아랫배는 누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아팠고, 소변을 보고 싶어 힘을 주면 그 아픔은 더 했다. 고요한 적막 속에 화장실 문고리를 잡고 고통의 신음만 커져갔다. 처음엔 방광염이겠거니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 처음 방광염을 앓던 느낌과 비슷했기 때문. 동네 비뇨기과로 달려갔다. 하지만 소변 검사 결과 염증 수치는 제로.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계속 소변볼 때 통증이 있다고 하니 신경과를 가보라는 무심한 의사의 말. 택시를 타고 옆 동네 신경과를 찾았지만 거기서도 해결 방법은 없었다. 진통제를 먹고 밤새 견디는 것뿐.
몸이 조금만 이상해도 툭하면 병원에 달려가는 내가, 왜 그날만큼은 바보처럼 참고 있었나 모르겠다. 회사를 쉬게 되면서 겁이 많아진 걸까? 인내심이 많아진 걸까?
아무튼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나는 산부인과로 달려갔고, 도뇨관을 삽입해 소변을 빼고 통증으로부터 벗어났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늦은 오후가 되자 또다시 통증이 찾아왔다. 두려움과 공포감이 나를 엄습해오기 시작했고, 친구의 도움으로 응급실을 찾았다.
응급실 의사는 내 증상을 듣고, 아랫배를 만져보더니 곧바로 소변을 빼야 한다고 했다. 아침에도 1000cc 가까이 뺐는데 이번에는 750cc의 소변이 나왔다. 그리고는 곧장 입원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의 말. 입원 절차를 위해 코로나 신속항원, 심전도, X-ray 등등 다양한 검사를 하고 소변줄이 삽입됐다.
하지만 맨 정신으로 돌아와 소변줄을 삽입하는데 어찌나 창피하던지. 동성의 간호사 분이셨는데도 내 얼굴은 빨개지고, 동공은 갈 곳을 잃었던 것 같다. 급성요폐는 일단 1~2주 정도 도뇨관을 삽입한 채 방광에 휴식을 주고, 방광 근육이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의사 소견이 나왔다. (마침 친구 남편이 의사로 일하는 병원이 집 근처여서 왔는데, 아플 때 병원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다.)
< 소변줄을 통해 방광의 움직임 없이 24시간 내내 소변은 하얀봉투로 배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