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우깡PD Sep 19. 2022

내 나이 서른일곱, 소변줄을 달다 #3

방광이 멈췄다. 투병일기 세 번째.

# 입원 7일 차, 30대 동안의 최후.

주말 내내 혼자 2인실을 쓰다가 새로운 병실 룸메이트가 등장했다. 


“어머, 인상이 너무 좋으시다! 병실이 아주 환하네! 호호홍” 

“네? 감사합니다.”


칭찬에 부끄러워진 나는 급 겸손모드로 병실 침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는 몇이나 있어요?”


“네?????? 저 아직 미혼인데요…”

“어머머머머, 내가 미안해요. 아가씨네 아가씨! 호호호홍” 


그랬다. 나름 동안이라고 자부하던 나도 이제는 돌이킬 수 없나 보다. 웨딩드레스 근처에도 못 가본 나에게, 결혼도 아닌 아이의 유무를 물어보다니. 이런 편견 가득한 대한민국 사회, 옳지 않다!


뼈 아픈 현실 자각과 함께 시작된 새로운 룸메이트와의 병실 동거. 그녀는 코로나 확진 후 완치했지만 후유증으로 입원하셨다고 했다. 오한과 땀이 그 증상이었는데 밤만 되면 더 악화됐다. 첫날은 새벽 1시에 남편께서 달려오시고, 간호사분들도 5분마다 병실을 다녀갔다. 분 단위로 끙끙대고 울먹이는 그녀를 보니 내가 더 아플 것만 같았다. 나는 결국 자리를 피해 새벽 3시까지 휴게실에서 대기하다가 병실로 돌아갔다.   


# 입원 8일 차, 한숨 쉬지 마!

낮이 되면 룸메이트의 컨디션이 조금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병실의 분위기도 차분해졌다. 하지만 이내 그 적막은 그녀의 한숨으로 가득 채워지곤 했다. 처음 겪는 고통과 증상에 그녀는 하루에 수십 번 한숨을 내쉬었다.


“아휴”

“어떡해.. 왜 이렇게 아프지..” 

“정말 속상하네.. 쯧.”


병실에 온갖 부정적인 단어들이 난무하게 되자 내게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기 때문에 불편하겠다며 사과를 건네셨지만
그녀의 한숨 때문에 내가 더 아플 것만 같았다. 




결국 병실을 옮기기로 했다. 밤에 잠을 푹 자야 내 방광도 얼른 치유가 될 것 같다고, 그분에게 솔직하게 양해를 구하고 헤어졌다. 병실 앞까지 배웅을 나와주신 룸메이트, 그녀의 쾌유를 빈다.


아참, 그리고 내가 가장 고치고 싶은 습관이 ‘잦은 한숨’이었는데 

이번 병실 생활을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됐다


한숨이 스트레스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하나의 방어기제라는 걸 책에서 본 후 나는 한숨의 당위성을 받아들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고쳐야겠다. 룸메이트의 한숨에서 전달되던 많은 불안과 근심, 예민함을 내가 직접 겪어보니 문득 내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해졌다. 


앞으로는 한숨보다는 '들숨날숨'에 집중해야겠다.


추신 : 그런데 나는 언제쯤 소변줄을 빼게 될까? 문득 퇴원이 기다려진다..  


이전 03화 내 나이 서른일곱, 소변줄을 달다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