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km도 못 뛰던 아이가 1년 새 6km 달린 비결

데이터로 증명하는 1년 새 2배 성장 비결



저의 첫 마라톤 완주 메달을 아이가 자랑스럽게 목에 달고 다녔던 시기


달리기를 처음 시작할 때

저는 달리고 아이들은 킥보드를 타고 저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 기간이 꽤 오래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땐 아이의 달리기보다 저의 달리기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의도치는 않았지만, 아이는 달리는 엄마의 뒷모습을 꽤 오래 목격했습니다.



아이의 강박이 최고점을 찍었을 때,

아이를 데리고 제가 늘 달리던 양재천으로 나갔습니다.

그땐 조금 달리고, 하늘 보고, 조금 달리고 꽃구경하고,

그냥 편하게 시간을 채웠습니다.

달리기 후 아이는 물을 벌컥벌컥 참 시원하고 달게 마셨습니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2년넘게 꾸준하게 달렸습니다.

사실 아이를 데리고 달릴 때보다 혼자 달리는 게 저의 정신건강에는 훨씬 이롭습니다.

“못한다. 힘들다.” 징징대는 소리를 참으면서 아이를 데리고 달리기를 한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아이의 강박이 저를 인내하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 애는 끈기가 없어요.
조금만 힘들어도 포기해요


곧잘 달리는 저희 아이를 보고, 주변 친구들이 묻습니다.

너희 아이는 원래부터 잘 달리는 아이라고

우리 애는 끈기가 없고, 조금만 힘들어도 포기한다고…


아이의 체력 문제가 아닙니다.

'힘듦의 기준값'이 세팅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년 전 삼일절, 서원이와 지온이는 3.1km를 뛰며 "힘들다"라고 했습니다.

정확히 1년 뒤 오늘, 아이들은 그 거리를 두 번 반복해 6.2km를 달렸습니다.

중요한 건 거리의 숫자가 아닙니다.

"6km 정도는 할 만한데?"라고 말하는 아이의 '확장된 자아'입니다.


몸이 고통을 이겨낼 때, 비로소 뇌는 [의사결정]을 할 준비가 됩니다.

땀을 닦고 매헌 윤봉길 기념관으로 향했습니다.

폭탄을 던진 결단력 이전에, 매헌 윤봉길이 가졌던 '안목'과 '기개'를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독립투사들이 지키려 했던 건 이 땅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야성'이었을 테니까요.

대한독립만세보다 더 중요한 건, '내 삶의 독립'입니다.


서원이와 지온이는 자신의 삶으로부터 조금씩 독립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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