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에 대해 써보세요.
박지영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 질문에 생각나는 단어들을 적어보았다.
‘자격지심, 간장종지만 한 사고의 그릇, 남을 깎아내리는 우월감, 자기 연민..’
부모의 유산으로 생각나는 것들을 적다 보니 왜 이렇게 부정적인 것들의 대잔치인지 놀랍기만 하다.
지영이는 ‘인생이 어지러울 때 빛이 되는 조언을 부모에게 받는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부모님을 가장 존경한다는 친구의 말은 그저.. 거짓말, 진정성이 의심되는 말로 들렸다. 박지영의 세계에서는 ’친인척이나 부모에게 깊은 위로나 위안을 받는다.‘ 개념 자체가 없었다. 실제로 존경하는 사람이 짜내고 짜내봤자 딱히 없었다.
열등감 자격지심의 우물 속에 살다가 회사에 입사를 한 지영이는 가고 싶은 보직이 있었다. 용기를 내어 그 보직에 지원을 했으나 쓰임을 무시하던 회사 사람들은 면접을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어린 지영이에게 자격미달이라는 말조차 전하지 않아 더욱 자신을 공격하게 만들었다.
‘내가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나오지 않아서 나를 이렇게 무시하는 거야… 나는 더 이상 이렇게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
목표설정을 인서울 4년제 대학으로 잡고, 바로 편입학원에 등록을 했다. 회사가 끝나고 친구를 만나 영화를 보거나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안주거리 삼았던 일상을 접고, ‘성장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내 자격과 평가절하의 시선에 이를 갈고’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정리하고 낮에는 회사, 밤에는 편입공부를 했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얕은 조언을 해주거나 배려해주지 않는 사람들에 분노가 점점 커져만 갔다.
결국 인서울 4년제 학교에 합격했고 자격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지방대에서 인서울로의 자격
이 자격으로 사람들이 나를 달리 볼 것이다. 이직이나 넥스트 스텝은 없었다. 자격 하나로만으로도 충분했다. 편입으로 내 밸류를 올린 것
(지금의 사고로는 그걸 사람의 밸류라고 생각했다는 게 실소가 터지지만)
본질에 대해 탐구하고 뿌리를 깊게 내려 유행을 좇지 않고 나만의 색상을 가지지 못했을까?
왜 좋은 생각과 사고의 유전자를 물려받지 못했을까?
일주일 전 문득 40대 중반이라는 나이에 이토록 성장에 목이 마르고 쉬지 않고 밝은 쪽으로 가려하는지, 좋은 어른이 되고자 하는 사명을 지켜며 시간을 축적하려고 하는지 그 뿌리에 대해 깊게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지영의 수많은 유전자 중 깊은 심연 아래, ‘작지만 무게감이 있는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는 유전자.’
좋은 어른이 되고 본질을 탐구하고자 하는 유전자.
그 작은 유전자가 이제야 수면 위로 떠올랐구나…
티끌 같아 평생을 모르고 살다가 44살에 좋은 선생님을 만나 수면 위로 발현이 된 그 유전자.
부모로부터 받은 이 작고 강력한 유전자가 마흔 중반에 인생의 목표를 다시 잡고 좋은 어른으로 좋은 리더로 나아가고자 하는구나…. 세대를 거치고 거치면서 발현되지 않아 작아졌지만, 2023년 박지영에게 발현되었구나.... 나쁜 감정을 아우를 만큼 강력하게 지속될 단단하고 깊은 유전자.
나에게 와줘서 고마워.
발현되어 줘서 고마워.
책이라는 건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나의 엄마, 아빠
(1) 운전면허증을 따기 위해 필기 공부를 밤새워 공부하는 엄마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모습이 문득 떠오르는 건 지영의 엄마도 좋은 선생님을 못 만난 것은 아닐까?
(2) 3살 때 엄마를 잃고 엄마의 정을 평생을 모르고 살아온 나의 아빠. 아빠의 정을 느낄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이 이기적인 사람으로 기억되는데,
택시 운전을 하던 그의 차를 얻어 탄 날, 손님들에게 꼬박 존댓말을 하시며 10원까지 거스름돈을 챙겨주시던 매너 있던 모습에 내가 알던 모습과 달라 놀란 기억이 있다.
나에겐 발현이 되지 않은 그 유전자를 엄마 아빠도 바닥 깊숙한 곳에 가지고 있었던 것임을 이제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