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정을 직시하자 내가 서있는 곳이 천국이 되었다.
로마에서 같이 달렸던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던 날이야…
이날 아이들 아빠 이하 ‘문원장’ 이 같이 합정에 가고 싶어 하더라고.
그런데, 남편은 그 모임의 자격이 안된다고 스스로 검열을 했어.
“오빠가 거기 왜 와? 거긴 로마에서 같이 달렸던 사람들의 만남이야.”
로마에 있는 동안
서원이가 자꾸 소외되는 게 느껴져서
서원이도 안 데려가려 했었어. (잘 어울리는 지온이만 데리고 가려했지)
맞아… 경험을 중시하는 양육철학보다 내 감정이 더 중요하게 여긴 이율배반적인 행동이야.
일주일 동안 서원이에게 말을 안 들으면 <너를 안 데려간다>는 협박을 했어.
그리고 우린 4개월 만에 만났지
나는 사실 이 모임이 좋으면서 싫었어.
로마에 있는 동안 마음이 너무 힘들었는데, 그게 왜 그런지 곰곰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본 결과 답을 찾았는데
엄마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로마에 갔고, 그 로마에서 풀마라톤까지 뛰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으려고 자꾸 참고 이를 악물었던 것 같아.
돌발행동하는 서원이가 미우면서도 가엽고
사람들과 너무 잘 지내는 지온이가 기특하면서도 얄밉고
아이 둘을 혼자 어거지로 어떻게든 챙겨보고,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 가지 않게 하려고
나는 로마에서 내내 긴장상태였었지.
그리고, 다들 자신의 일을 하는데
내 애매한 포지션에서 오는 자격지심
나도 일을 하고 싶은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는 그 애매함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들이 있었지.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것을 어떻게 발달시켜서 내 일로 만들고 싶은 것인지
일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의 내면을 더 발전시키며 좋은 어른이 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는 중이야)
나란 사람은 나 이외에 다른 사람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어.
내가 속하지 않는 것에 감각의 촉각을 세우지 않지
예를 들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이유는 나와 나의 아이들을 찍어주기 위함이지.
타인의 모습을 담고 공유하려는 마음이 애초에 없어
남에게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 막상 남에게 관심이 없어.
모임에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면 스스로가 초라해지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어.
그런데 이 모임에서는 반짝이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내가 주목을 받지 못하는 거야. 다들 좋아 보이고 잘라 보이니까
어느 순간 짜증 나고 싫고 보고 싶지 않더라고.
로마를 다녀온 후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최악의 기간을 보내고
나는 그 기간 동안 그런 내 감정을 직시할 수 있었어.
아… 내가 그런 사람이구나.
이건 내가 챙김을 받지 못한다고 서운할게 아니구나.
‘셀레브리스탄에 사는 사람들’이 ’ 내가 사는 프레쉬매니스탄‘으로 들어온 순간 (로마에서 함께 달린 순간)
나는 그들을 질투하고 모방하고 있었구나.
저 사람들은 저렇게 사업을 하네
저런 경험을 하네, 계속 발전하네 성장하네 인사이트를 계속 얻네
(나에게는) 셀레브리스탄에 사는 사람들인데, 로마팀과는 직접적인 연결이 있네.
그걸 보는 내 속이 뒤집어지더라고.
내가 로마에서 힘들었던 것은
주목받지 못했고, 배려받지 못한다고 내 감정 때문이구나.
혼자 애들 챙기는 게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었는데
혼자 티 안 내고 좋은 모습만 보이려는 내 인정욕구 때문이구나.
그리고 그들과 나누는 그 대화들도
이젠 <질투와 나 자신이 못나 보이는 감정이 아니라,
그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돼서 감사하다는 생각>과
그들은 그들의 세계에서 그들이 직접 느낀 것이지
그걸 <우리 엄마 밑에서 지금의 남편과 서원이 지온이를 키우는> 내가 경험한 것이 아니니
무조건 옳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구나. 대신 그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나는 참 복이 많구나.
로마가 지금 기초화장품 시장이 없다는데 (리얼?? 이거 정말 너무 놀라운 사실 아니야?)
로마언니가 자꾸 유럽에서 요식업이 기회라는데
내 시야가 좁고 치열한 서울에서 유럽까지 넓어진 기분?
아는 이가 한 명도 없는 네덜란드 보다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열혈단신 도전하고 무너지고 탄탄하게 자신의 베이스를 쌓는 그들을 보니까
나도 서원이 지온이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더라고.
내가 느끼는 초라함, 자격지심을 직시하고,
그럴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 깨닫게 된 점.
4개월 동안 나의 내면이 성장했구나. 느껴진 포인트였어.
어제 7.5만 뷰티유튜버도 그 자리에 동석했어.
소정샘이 난년이라는 표현을 했던 친구라 기억에 남는데
그 친구가 그 자리에 오겠다는 거야?
나 사실 깜짝 놀랐다.
자격이 안돼서 문원장에게는 그 자리에 오면 안 된다고 스스로 검열을 했는데
뷰티 유튜버 친구가 온다니까 다들 너무 환영하는 거야.
자격이라는 검열은 나 혼자 하고 있었던 거지.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성장하고 시야가 넓어진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는데
왜 나는 문원장은 그 자리에 오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막상 온다고 했을 때,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을 텐데
(사실 이건 내가 깨야하는 벽이긴 해. 서원이도 챙기기 어려운데,
나도 자격지심이라는 웅덩이에서 빠져나오려고 허우적대는데
남편까지 챙기기 힘들었다고 판단을 한 것이지.)
그런데 왜 내가 남편의 행동과 말을 검열해? 나 그런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그는 나보다 훨씬 뛰어나고 깊은 통찰력을 지닌 사람인데
내 기준에서 왜 자꾸 그를 (가정 내에서 보이는 허점으로) 돌발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바라보았을까?
더 놀랐던 것은 그 뷰티유튜버의 말이었어.
“저는 진짜 인복이 많은 것 같아요.”
자기가 오고 싶다고 얘기해서 온 것인데, 그 인복을 스스로 만들었더라고.
‘내가 저기 가도 되나?’라는 자체 검열 없이 내가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면
‘내가 가야지’라는 마인드
그러니까 윤소정샘이 “나를 가져다 쓰는 난년”이라는 표현을 했던 거야.
그런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까
서원이가 보이더라.
서원이가 못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건 내 생각이잖아.
서원이도 그 자리가 불편하고 싫으면 분명 안 간다고 했을 텐데
일주일 내내 나의 협박에 “죄송합니다.” 평소 안 하던 사과까지 하며
숙제를 열심히 하고 동생도 안 때리고(평소 서원이가 지온이를 자기 부하라고 생각한다. ㅋㅋ)
그 모임에 가려고 태도를 고치더라니까
그래서 내가 진지하게 물었어.
“서원아 너 거기 왜 가고 싶어?”
“엄마 경험이잖아. 안 가본 곳에 가보고 싶어.”
서원이가 돌발행동을 하든 말든 서원이 스스로는 그런 상황을 새로운 경험으로 받아들이더라고
그 자리를 너무 좋아하더라고
이쯤 되면, 마음하나 고치면 되는 것은 나뿐인 거지?
한때는 로마에 다녀온 것을 후회하고
사람들을 속으로 미워하고 질투했는데
내 감정을 직시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니
내가 서 있는 곳이 더 이상 지옥이 아니더라.
나는 지금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애매한 구석이 많아
그래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부분에서는 지혜를 얻고 싶어
그 지혜를 단단한 나란 사람의 뿌리로 흡수하고 싶어.
이제와서는 진짜 말할 수 있어.
나 로마에 다녀오길 잘했다.
나 로마에서 풀마라톤을 도전해 보길 잘했다.
나 로마에서 지금의 로마팀을 만나길 너무 잘했다.
25년에 한 번 오는 이탈리아의 희년에서
혼자 애 둘을 데리고 가서 풀마라톤까지 뛴 나는
난년이야.
그걸 왜 지금 깨닫게 된 거지?
나는 내 속에서 스스로 솟아나려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 해. (데미안)
그것이 보이기 시작했어… (지금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