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사이즈에 나를 껴맞춘다는 것은?
속옷을 고를 때나 수영복 사이즈를 선택해야 할 때
다양한 사이즈가 나에게는 스트레스다
모든 사이즈가 스몰, 미듐, 라지로만 나뉘어 있으면 좋겠다.
(그래 좀 통 크게 엑스스몰과 엑스라지까지 허용하겠다.)
얼마 전 낡은 속옷을 정리하고 새 속옷을 구입하려는데
다양한 사이즈 옵션에 심리적 불편감을 느꼈다.
결국엔 스몰, 미듐, 라지로만 나뉜 속옷을 최종적으로 구매했다.
(디자인과 가격보다 단순한 사이즈로만 이루어진 속옷을 골랐다니… 글을 써놓고 보니 스스로에게 킹 받는다.)
그 속옷은 얼추 나에게 맞았다.
브래지어는 약간 헐렁이고, 팬티는 꽉 끼지만 이건 나에게 딱 맞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문득
내가 이렇게 규격사이즈에 나를 껴맞추는 인간이라는 깨달음이 있었다.
인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날에도
예식장을 대충 고르고, 드레스며 부케도 웨딩플래너가 골라주는 것으로 선택한
취향이 없는 규격화된 인간
다른 사람이(사회가) 정해놓은 네모난 상자에 나를 꾸겨 넣어야 하는데
그 상자가 너무 다양하면,
여러 번 시도 끝에 나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 확인하는 노력을 해야 하니
나를 미듐사이즈 인간으로 정해버린 것이다.
속옷도 수영복도 바지도 원피스도
제조사가 어디건 무조건 미듐사이즈에 내가 들어가 있을 때
마음이 편하다.
마라톤을 준비하며, 나에게 딱 맞는 운동화를 고를 때
피로감은 대단했다. 신발은 발볼과 길이 그리고 달리기 전과 후
심지어 나의 체형과 달리기 자세, 몇 킬로를 달리는지까지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서
박지영이란 사람에게만 맞는 사이즈를 골라야 하기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어쩌면 규격화 미듐 인간으로 살아온 날이 대부분이라
딱 맞는 맞춤형 인간으로 사는 것의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경험이 없는 것인데 방법을 모르겠는 시간을 스트레스로 받아들였다.
대중적인 것, 취향이 없는 것
현재 인기 있는 것들에 나를 맞추는 것
규격화된 상자 안에 나를 구겨 넣는 것.
이런 무색무취 행동을 그만하고 싶다.
규격사이즈 인간에서 탈퇴를 선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