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닭다리

남편과 결혼하게 된 것도 순전히 그 닭다리 때문이었다

by 진순희

늘 궁금했다.

백숙을 하면 닭다리는 왜 변함없이 아버지랑 큰 오빠만 먹는지. 아침이면 해가뜨고 저녁이 되면 달이 떠오르는 것처럼 일 년 열두 달 매번 똑같았다. 어쩌다 한 번씩이라도 내 차례가 올 법도 했다. 하지만 한결같이 닭다리는 아버지와 큰오빠 차지였다. 문제는 여덟 식구 중, 아무도 이에 대해 불만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큰오빠보다도 나이가 많은 큰언니도, 심지어 작은 오빠까지도 닭다리는 왜 먹는 사람만 계속 먹어야 하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아니, 당연히 그들의 몫이라 여겼다.


백숙 먹는 날은 늘 집안이 시끄러웠다. 감히 막내인 주제에 분배의 정의를 실현시키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엔 얻어맞고 일단락 짓는 것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울음 끝이 질겨서 한 번 울면 하루 종일 울었다. 놀다가 생각나면 다시 울고, 울다가 밥 먹고, 또 생각나면 울었다. 그래서 또 얻어맞았다. 그냥 우는 게 아니었다. 가족들이 다 보게 시위하듯 안방 문을 붙잡고 대성통곡했다. 결국 아버지가

"닭다리 쟤 주고 입 좀 막게 하라."


고 일어서면, 먹던 거 안 먹는다고 닭다리를 던져서 또 얻어맞았다. 부당함에 대해 무감각하기에는 그 당시 나의 촉수는 지나치게 발달되어 있었나 보다.


처음부터 두 마리를 삶으면 네 다리가 나오지 않는가. 그럼에도 한 마리로 물을 흥건히 부어 여덟 가족이 먹으니 항상 분쟁의 씨앗은 싹트고 있었다. 그렇게 백숙 먹는 날이 되면 혹시나 하며 기대 반 체념 반으로 신경이 곤두서곤 했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게 된 것도 순전히 그 닭다리 때문이었다. 남편은 그때 자취를 하고 있었다. 유년시절부터 닭다리 때문에 내가 얼마나 부당한 대접을 받으며 살아왔는지를 누누이 말해 왔던 터였다. 겪어보지 않는 사람은 이 억울한 심정을 모를 거라며 백숙 먹은 날은 빠지지 않고 고해바쳤다. 7년 연애하는 동안 우리 집에서 백숙 먹은 날은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이 불평등한 관계에 대해 시시콜콜 고자질을 했다. 어서 이 공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벗어나 해방된 민족이 돼야 한다고 주먹을 불끈 쥐며 울분을 토했다.


데이트 기간이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밖에서 삼계탕 먹을 일이 그다지 없었다. 사귄 지 꽤 되었을 때, 지방에서 어머님이 올라오셨다. 퇴근 무렵 같이 만나 들어가니 동글동글하니 수더분하면서 까무잡잡한 분이 앉아 계셨다. 시골에서 올라오신 그의 어머님이었다.


키우던 장닭을 잡아서 갖고 오신 것이었다. 인삼을 넉넉히 넣고 닭을 큰 솥단지에 푹 끓이기 시작했다. 나는 하릴 없이 앉아있었다. 부엌에서 닭 삶는 냄새가 솔솔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냄새였다. 바로 그 냄새! 설움의 냄새, 슬픔의 냄새가 갑자기 확 올라와 목울대가 팽팽해졌다.



삶계탕.PNG https://blog.naver.com/kkury6825/221705120202



잠시 후 큰 쟁반 위에는 토종 닭 한 마리가 기세 좋게 앉아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닭다리였다. 사람은 세 명인데 닭의 다리는 두 개밖에 없는 난감한 상황이 펼쳐졌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 집에서도 닭다리가 내 차지가 되지 않으면 어쩌지......

이번 생은 망한 것인가 나는 혼자 셈하고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의 어머니께서 당신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객지 밥 먹느라 얼굴이 홀쭉해졌다며 닭다리 하나를 찢어서 건넸다. 아들이 어머니도 닭다리 한쪽 드시라 하니 입맛이 없어 안 먹겠다고, 아니 안 먹어도 된다고 극구 사양을 했다. 두 다리 모두들 아들에게 주고 싶었는지,

"서울 아가씨들은 삼 넣은 닭다리 안 먹지?"

하며 말을 건넸다. 엉거주춤 대답을 하려는 찰나, 그가 잽싸게 다리 두 개를 몽땅 내 그릇으로 넘겼다.


"엄마, 얘 닭다리 무지 좋아해요. 잘 먹어요."

하니 마뜩잖은 표정으로

"그래? 어여 식기 전에 들어요."

하셨다. 이번에도 엉거주춤하니 표정관리를 하고 있는데 재차

"식기 전에 먹으라고, 식으면 맛이 없다."

고 강력하게 권했다. 애인과 애인의 어머님이 먹으라고 간곡히 권하는데, 어찌 안 먹을 수가 있겠는가.


그동안의 설움도 씻을 겸 아주 맛나게 먹었다. 어른 말을 잘 들어야 자손 대대로 잘된다는 말을 신줏단지처럼 뼛속 깊이 새기고 있던 터여서 고분 고분 하니 시키는 대로 했다. 콧잔등에 땀이 송글송글 배어 나올 정도로 정신없이 먹었다.


조보아.PNG 조보아 만큼 맛있게 먹었다 http://news.wowtv.co.kr/



내게 닭다리가 오다니...... 그것도 한 다리도 아니고 두 다리였다. 이게 무슨 횡재란 말인가 흡족해하는데, 갑자기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 기운은 뭐지? 이건 적의 기지에서 오는 어둠의 에너지라 여기며 매의 눈으로 살폈다. 가뜩이나 까무잡잡한 얼굴에 눈까지 까매서 내뿜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그때 눈빛에서 레이저가 작렬했다. 그의 어머니에게서 나오는 초강력 울트라 눈빛이었다.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는 아들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엄마, 얘 잘 먹는다고 전에도 말했지. 저렇게 말랐어도 되게 잘 먹어, 봤지."

아들의 채근에 마지못해 "잘 먹긴 하네." 하시더니 "무슨 쬐끄만 아가씨가 닭다리를 두 개씩이나 다 먹냐?'고 낮은 소리로 말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아들들은 푼수 짓을 할 때가 많은가 보다.


나는 결단의 시기가 왔음을 지레짐작했다. 평생 숙원이었던 닭다리를, 바라마지 않던 그 닭다리를. 한 다리도 아니고 두 다리씩이나 갖다 바친 애인에게 하사할 선물이 무엇이었을까. 그와 결혼해주는 것이었다.

그 시절 내게는 나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주고 후원해 줄 아군이 필요했다. 사노라니 이런 일이 어디 그때뿐이랴. 서른 살 즈음의 일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때의 결단을 후회하지 않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누가 우리를 복종하게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