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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다

과제 분리를 하지 않는 한 "타인은 지옥"이다

by 진순희

나를 바꿀 수 있는 자者, 누구인가


'만남'은 이렇게 저렇게 연결되어 있음을 곳곳에서 경험한다. 이를 테면 <<미움받을 용기>>에서 '과제 분리'에 대한 것을 읽고는 미드 <굿 플레이스>에서의 치디와 같은 행위를 확인하는 식이다. 굿 플레이스에 남게 하기 위해 치디는 엘리너에게 윤리학 수업을 듣게 한다.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이다. 이 일은 치디가 나서서 할 것이 아니다. 엘리너 스스로가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맞다.


아들러의 말처럼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윤리학자 치디처럼 타인의 과제에 개입을 한다.


'과제 분리'를 설명하기에 앞서 인간의 욕구에 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들러에 의하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남보다 더 우월해지고 싶은 욕구가 있단다. 우월성이라고 명명된 이 욕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기본적인 요소이다. 그런데 우월성 추구는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라기보다는 자신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우월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은 자신이 지닌 강점을 찾아 확인하고 빛을 냄으로써 완성된다.


우리는 고독을 느끼는 데도 타인을 필요로 한다네.
즉 인간은 사회라는 맥락 속에서 비로소 '개인'이 되는 걸세.
<<미움받을 용기>>, 81쪽



'나'라는 개인이 입증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타인의 존재이다. 나의 존재는 타인과의 비교와 경쟁에 의해 정의될 수밖에 없기에 더욱 그렇다. '나'라는 존재가 홀로 있을 때라도 타인은 인간의 무의식이나 의식을 지배한다. 타인이라는 존재는 똬리 틀고 내 안 깊숙이 자리를 잡는다. 우리의 삶은 타인에게 둘러싸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인의 존재는 절대 벗어날 수 없기에 '나'에게 존재론적인 지옥으로 다가온다. 타인이 지옥이 되는 순간이다. 타자가 지옥이 되는 것은 개개인인 나의 과제에 타자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남의 과제를 별생각 없이 자신의 과제로 생각해 결국은 '나'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다.


자유.PNG 누가 나의 자유를 억압하려하는가


<<미움받을 용기>>의 셋째 날 <타인의 과제를 버려라>에서는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하라고 말한다.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에서 철학자는 이야기한다. "모든 인간관계의 트러블은 타인의 과제에 마음대로 침범하거나 자신의 과제에 허락 없이 침범해 들어올 때 발생한다'라고.


누구의 과제인지 불분명할 때 간단하게 구분하는 방법도 조언한다.

"그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생각해보면 판단하기가 수월해진다.


세상 부모들은 흔히 "너를 위해서야"라고 말하지. 하지만 부모들은 명백히 자신의 목적-세상의 이목이나 체면일지도 모르고, 지배욕일지도 모르지-을 만족시키기 위해 행동한다네. 즉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이고, 그 기만을 알아차렸기에 아이가 반발하는 걸세 -66쪽


무엇이 우리의 자유를 빼앗는가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맺기에서 무엇이 우리의 자유를 빼앗는가.

아들러가 말하는 '과제 분리'가 되지 않았을 때이다. 타인 과제에 개입함으로써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당사자에게도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다. 이를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당선된 단편소설 <해가 지기 전에>에서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해가 지기 전에>/서장원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101/99035751/1


소설은 예순여섯의 기선이 남편과 함께 아들이 입원해 있는 정신 병원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정신과 의사인 아들은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할 정도로 영민했다. 기선의 자랑이 되기에 충분한 아들이었다. 나의 자존심을 한껏 추켜세워줬던 아들이, 정신과 의사인 그 아들이 우울증으로 정신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황이다.


자기 병원을 차리기 전까지 한 달만 입원할 거라는 말과는 달리 두 달 넘게 길어지고 있다. 아들 영환은 정신병원에 들어가기 전에 말한다.

“엄마, 걱정 마세요.”

입대를 앞두고도, 의대에 진학하고 싶다는 말을 할 때도 그랬다. 기선의 불안감을 달래줄 때마다 이 말을 했던 차였다.


어린 시절 영환이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타러 갈 때도 그 말을 했다.

“엄마, 걱정하지 마.”


여덟 아홉 살 먹은 아들의 친구들이 드라이버를 가지고 와 보조바퀴를 떼어 냈을 때 기선은 경악한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과제에 깊숙이 개입을 한다. 급기야는 아들이, 그 나쁜 친구들에게 절교 전화를 걸게 한다. 이제 친구 그만하자며 눈물 흘리며 말을 못 하는 아들에게, 아들이 해야 할 말을 스케치북에 적어주면서까지 그 말을 읽게 한다. 기선은 이렇듯 타인의 과제를 자기의 과제로 인식해, 말하자면 타인의 과제를 버리지 못해 아들에게 씻지못할 트라우마를 안겨준다. '너'를 위한 다는 명분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우를 범한다.


캡처.PNG 곧 도착할 텐데 오지 말라고 하네 ㅠ


바닷가 근처의 아들이 입원한 그 병원은 가봤던 곳인데도 찾지를 못한다. 수의사였던 남편은 이제 차에 달린 내비게이션 하나를 다룰 줄 몰라 끙끙댄다. 기선은 길을 헤매며 생각한다.

그 일이, 혹은 그와 비슷한 일들이 아들의 병에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고. 길을 묻기 위해 들른 카페 몽마르뜨에서 차 한잔을 시킨다. 앞으로의 일을 예고하듯이 가벼운 맛이라던 커피는 너무도 썼다.


해가 지기 전에 '과제 분리'를 하라


거의 도착할 지점에서 아들의 오지 말라는 전화를 받는다. 돌아가는 길은 해변을 지나야 만 갈 수 있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기선은 “우리 해변 길 따라서 드라이브라도 하고 가.”라고 말한다.


차가 해변 도로를 따라서 달리기 시작할 때 기선은 멀리 빛의 가루가 흩날리는 광경을 본다. 일몰까지는 두 시간이 채 남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은 조급하게 불꽃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기선 자체도 과제 분리를 하지 못해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린 격이었다. 아들 영환의 선택과 판단에 맡겼더라면 오히려 영환의 앞길은 밤하늘의 반짝이는 불꽃으로 길게 이어졌을 것이다.


기선이 올려다본 하늘의 빛은 아주 잠깐 동안의 빛의 부스러에 불과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때 이른 불꽃이 공중에 피워 오르다 이내 사그라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뜬 빛의 부스러기는 보잘 것 없고 변변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꽃피우지 못한 영환과 기선 자신의 모습처럼.


기선은 쾌청한 하늘에 방금 전에 보았던 빛의 부스러기를 그려 보았다. ‘작고 초라하다.’ 그런 말밖에 해줄 수 없는 빛이었다. 기선은 일몰을 기다리지 못하고 폭죽에 불을 붙이는 누군가를 잠시 동안 상상해 봤다. 심지의 끝에 불붙은 성냥을 가져다 대는 손과, 하늘을 올려다보는 뒷모습을. 그리고 빛보다 더 오래 허공을 차지하고 있는 연기를. 차다 어느새 해변 도로를 완전히 지나쳐, 더 이상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해가 지기 전에>, 서장원 -


아들러는 어른과 아이 사이에서든 대인관계는 수직적이지 않고 수평적인 관점에서 보라고 한다. <해가 지기 전에>의 기선도 아들 영환의 과제에 개입함으로써 아들의 자유를 구속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과제조차 현명하게 해결하지 못한다. 그저 해변 길을 따라 드라이브나 하는 것으로 잠깐의 만족에 그칠뿐이다.


“누구도 내 과제에 개입시키지 말고, 나도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를 가슴에 품고 실천을 할 때 자유함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간에 내 과제에 개입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투쟁하거나 거역하며 버텨내야 한다.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새.PNG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푸른 하늘을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하여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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