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잇장처럼 얇은 각지角紙 속에 청춘을 갈아 넣었다
진순희
‘화각장’(華角匠)
늙은 사내가 우시장을 찾았다
풀 먹고 자란 서너 살짜리 황소 뿔
조심스레 모셔온다
왼손 오른손
골절기에 바친 손가락이 셋
종잇장처럼 얇은 각지角紙 속에
청춘을 갈아 넣었다
용, 모란, 십장생…
장수와 재물의 문양 새겨진
웬만한 머릿장 하나 장식하려면
소 200마리의 뿔을 동원해야 한다
타고난 가난이야
황소 싸움처럼 이겨낸다지만
감탄 자아내던 작품 놓고
비싸다는 말 한마디에 풀이 죽는다
쇠뿔에는
상품 아닌 작품만을 만들겠다는
화각을 필생의 업으로 악물고 사는
사나이의 집념이 서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