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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Feb 09. 2021

나는 시댁의 봉이었다.

경주마처럼 달려가려는 내게 ‘잠시 멈춤’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내일모레면 명절 연휴가 시작된다.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명절 기간이 오면 시댁 생각이 간절하다. 명절에 시어머님 생각이 난다고 하면 주변에선 미쳤다고 한다. 제정신이냐고, 뭐 잘못 먹은 거 아니냐고, 심지어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지 하고 묻는 사람도 있다. 지금은 두 분 모두 다 돌아가셔서 남편의 고향엔 형제들이 아무도 살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명절이 가까우면 어머님이 계셨던 시골엘 가고 싶어 진다.      


나는 시댁의 봉이었다. 아니 호구였다. 나 스스로, 봉 노릇을 자처했다.

돈이 없으면 몸으로 때웠고, 일을 갖고서부터는 돈으로 물건으로 해결을 했다.

건강하시던 시어머님이 갑자기 풍을 맞아 오랜 기간 앓으셨다. 집안 살림을 하시는 아버님께 CJ에서 김치며 불고기며 수년간 음식을 주문해드렸다.

아버님의 유일한 낙이 마을 사람들 불러다 음식을 함께 먹는 거였단다. 부쳐드린 갈비찜이나 불고기를 사람들과 함께 마을 회관에서 드시는 것을 제일 즐거워하셨다는 것을 마을 어르신들을 통해 들었다.    


    

결혼초부터 시댁에서는 내게 끊임없이 뭔가를 요구했다.

그때는 그런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요구하는 쪽도 당당했고 요구를 받는 쪽도 싫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트랙터가 고장이 나도 내게 전화해서 돈을 부치게 했고, 염소를 사는 데도 내 돈이 들어갔다. 시동생 중장비학원 다녀야 한다며 신혼인 내게 몇 달씩 떨구어 놓아 결국 집주인에게 모진 소리를 듣게 했다.   

  

중장비 자격증 따기 위해 공부하러 온 시동생은 공부보다는 TV를 끼고 살았다.

단칸방에서 저녁 어린이 방송 나올 때부터 애국가로 TV가 꺼질 때까지 봤다. 개구리 왕눈이가 나오면 노래를 따라 부르며 율동을 했다.  

    



“삘리리 개굴개굴~~

비바람 몰아쳐도 이겨내고

일곱 번 넘어져도 일어나라

울지 말고 일어나 일-어나라”를 복창하며 흥겨워했다.


시동생이 몇 달씩 안 가고 있자 급기야 주인아주머니가 들이닥쳤다. 두 식구라고 속이고 들어왔으니 방을 빼서 당장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를 듣고 나서야 시동생은 시골로 내려갔다.    


   



한쪽에만 짐을 지우는 것이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보다.

『감정 시대』를 읽다가 나와 비슷한 상황이 나와격하게 공감했다.  

『감정 시대』 개인의 감정은 사회와 맞닿아 있다는 전제에서 ‘감정’을 통해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기획한 이다. EBS 다큐프라임 <감정 시대>를 토대로 엮어서 감정을 불안감, 모멸감, 고립감, 좌절감, 상실감, 죄책감 등의 여섯 가지로 분류하고 분석했놨다. 감정을 구분해 현재 대한민국이 어떤 사회이며, 더 나은 사회로 향하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한지를 살폈놓았다.   

   

단연 누가 뭐래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감정은 불안감 일터이다. 그런데도 좌절감을 다룬 4부 <좌절의 시대>에 눈이 갔다, 인터뷰 대상자인 최우성 씨의 모습을 보면서 과거 나의 모습과 중첩이 돼 지난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우성 씨는 서른다섯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누나와 홀로 된 어머니의 생활비까지 책임지고 있었다.      


“어머니를 움직이는 건 금전적인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족들에게 나는 돈인가, 부양 의무를 다하면 그뿐인 기계 같은 것인가,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자신을 꽁꽁 옭아매고 있는 쇠사슬처럼 느껴지자 우성 씨는 폭발 직전에 이른다. 중년의 가장인 우성 씨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하자 제일 먼저 나온 감정이 원망하는 마음이었다.    

   

“넌 아들이니까 부모한테 이렇게 해야지”, “그래도 네가 형편이 좀 나으니까 이런 부분들을 책임져야지”     


시어머님은 다른 동서들이 늦게 와도, 심지어 오지 안 와도 아무 소리를 못하셨다. 아니 안 하셨다.


“너는 배운 애니까, 그래도 네가 제일 형편이 나으니까.”    


 내게만 부담을 줬다.

둘째 동서네 집안 행사에도 어머님께서는 그러셨다. 네가 안 오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다고.

     

“큰 형님이나 다른 동서는 안 와요?”   

  

“놔둬라 그것들이 올 거라고 생각도 안 했다. 아무렴 기대도 안 했고 말고.”      

뜨악해서 쳐다보는 내게 마무리는 항상 똑같았다.  

    

“부모한테 효도해야  자식들이 잘 된다.”  

        

<감정 시대> 기획팀은 자신의 마음을 선뜻 드러내지 못하는 40대 아저씨들에게 심리 처방전을 내렸다. 마음을 나누고 싶은 존재를 떠올리게 하고 평소 느끼고 있는 마음과 닮아 있는 시 한 편을 그 존재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우성 씨는 원망 뒤에 좌절을 경험해 이 짐을 내려놓고 싶다는 지경에까지 와 있었다. 시를 고른 우성 씨는 유하 시인의 <내 마음의 고기 한 마리>를 어머니께 건넸다.



출처: //sootax.co.kr/m/80?category=610789

      

     


내 마음의 고기 한 마리


              유하  

     


늦가을 강바람 속으로 매순간

힘없이 메마른 숨결의 손을 놓는 나뭇잎들과 같이

지금 돌연 내가 죽어 없어진다 해도

저 강물은 계속 흐를 것이다 간혹

물 위에 떠가는 낙엽이나 갈대 부스러기처럼

내 죽음이 쓸쓸히 노을의 저편으로 흘러가도

강은 이 자리를 지킬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바로 눈앞으로 흐르는

강물이란 강물 다 지나가버려도

강의 호흡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듯,

영영 떠내려 가버릴 것 같은 죽은 나뭇잎들

푸르름의 기억을 되살려 나무의 뿌리로 되돌아 오듯,

내 육신의 죽음이 진정 나를 죽게 할 수 있을까

나는 본다, 벗어나려 해도 벗어나려 해도

그대로 온통 강물인 양수리의 삶을

뭐 하나 뾰족할 것 없는 생의 굴레를

하여, 살아온 날들의 온갖 희희낙락과 절망들이여

살아갈 날들의 하릴없는 기대감들이여

그만, 잔잔하라 고인 물처럼 잔잔하라

강물이 끝내 강물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수백 생 동안 죽음의 진화 작용을 해왔을 내 모습

이제 그 깊은 곳에 사는

마음의 참붕어 한 마리 보고 싶다.     



아들이 고른 시를 받아 든 우성 씨의 어머니는


“네가 그동안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걸 지켜보면서 엄마 마음도 너무 아프고 힘들었어. 힘들어하는 너를 보면서, 도와주지도 못하면서 말로만 해서 뭐하겠나 싶어 전화도 못하고 그랬는데. 어떤 방식으로 널 대하면 좋을까, 어떤 말을 해야 좀 위로가 될까, 고민도 했는데 길이 없더라.”     


어머니의 솔직한 말을 듣는 순간 우성 씨는 그간의 관계에서 느낀 원망이나 자책감 같은 것이  깊은 곳에서부터 흔들리며 사라지기 시작했을 것만 같다. 마음을 털어놓기가 어려운 것은 중년의 남자나 늙은 어머니나 모두 똑같은 듯했다.


<감정 시대>에서는 중년 아저씨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인생에서 상처가 됐던 순간을 적어보게 했다. 그것을 함께 참여했던 다른 사람이 읽어 공감을 얻는 과정을 거쳤다. 그런 다음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에게서 위로를 얻는 순간에 도달하도록 했다.


어머님이 중풍으로 쓰러지시고 돌아가시기 몇 년간은 누워만 계셨다. 시댁에 갈 때마다 목욕을 시켜드렸다. 목욕하기에도 어설픈 시골집에서 고양이 세수하듯 목욕을 시켜드렸다. 큰 다라이에 뜨거운 물을 담아와 한 쪽 구석에 놓고, 세숫대야에 물을 떠서 머리를 감겨드리고 한 팔 한 팔 씻겨드렸다. 중간중간 물을 갖다 버리며 수 차례의 물을 바꿔가면서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다 씻기고 나면 어린아이처럼 좋아라 하셨다.     


 

끝없이 내게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 주문만 하던 어머니셨다.

돌아가시기 전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남편은 다른 형제들보다도 시댁에 일찍 가고 늦게까지 남아서 정리하고 가기를 원했다. 형제들이 돌아간 뒤에 마당에서 뒷설거지를 다하고 들어섰더니 어머니께서 가만히 내 손을 잡아 당신 가슴에 얹었다.


미야, 고맙다. 네게 미안한 게 참 많아.”라며 말문을 여셨다.


평소의 어머니답지 않으셨다. 늘 나 보고는 “멀쩡한 내 아들 날갯죽지 부러뜨린 사람이 너”라고 퍼부으셨던 분이셨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아야 되는데 여편네가 욕심이 많아서, 발광을 하며 돈 벌려고 밖으로만 나돈다고 하셨던 분이셨다. 하긴 일정 부분 맞는 말이긴 하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이 양에 안 차긴 했다.      

언제나 의기양양, 대차신 분이 갑자기 내게 미안하다니, 상황이 좀 그랬다. 돌아가실 때가 되면 사람이 바뀐다더니 딱 그런 상황이었다. 자꾸 미안하다고 하시는 어머님께


"아니에요. 아니에요. 어머니 무슨 그런 말씀을 하셔요." 했더니  

   



“아니다. 없는 집에 시집와서 네가 고생이 많았지.
물러터진 내 아들 만나 애 많이 쓰며 살아온 거 내가 다 알지.
근데 그런 마음을 네게 말하기가 싫었다. 내 아들 우습게 볼까 봐.
이래저래 미안하다. 우리 며느리 정말 애썼다. 그 마음 내가 잊지 않으마.
이만하면 됐으니까 너무 애쓰며 살지 말아라”



하시기에 “아니 곧 돌아가실 분처럼 말씀을 하셔용” 하면서

 “이번 명절에 임실 아지매 딸은 안 왔는가 보네요” 하면서 얼른 화제를 돌렸다.

     

내게 마음을 여신 지 며칠 안 있어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집에 도착해 짐을 푼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서둘러 짐을 싸서 다시 시골 고향으로 내려갔다.

장례를 치르는데 어머님이 누워 계셨던 안방으로만 눈이 자꾸 머물렀다.     

 

지금도 어쨌든 열심히 해야만 마음이 놓이는 내게 

 “너무 애쓰며 살지 말라”는 어머님의 말씀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말씀은 경주마처럼 달려가려는 내게 ‘잠시 멈춤’의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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