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의 장자는 어린 시절부터 언젠가 농장을 물려받게 되리라는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야만 한다고 느끼면서 자라는 다른 형제들보다 훨씬 좋은 상황에서 성장한다. 다른 대부분의 집들에서도 맏아들이 언젠가 집의 주인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이런 전통이 그리 비중 있게 지켜지지 않는 집안, 즉 일반 시민들의 집이나 무산 계층의 집에서도 장자는 적어도 매우 커다란 힘과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집안의 조력자이자 감독자로 간주된다.
-『아들러의 인간이해』, 193쪽
의식하지도 과시하지도 않은 채 그런 걸 할 수 있는 사람.
실망스럽고 두려운 순간도 더러 있었지만 한영진은 김원상에게 특별한 악의가 있다고 믿지는 않았다. 그는 그냥……그 사람은 그냥. 생각을 덜 하는 것뿐이라고 한영진은 믿었다. 한영진이 생각하기에 생각이란 안간힘 같은 것이었다. 어떤 생각이 든다고 그 생각을 말이나 행동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고 버텨보는 것. 말하고 싶고 하고 싶다고 바로 말하거나 하지 않고 버텨보는 것. 그는 그것을 덜 할 뿐이었고 그게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매일 하는 일.
- 『연년세세』, 70쪽
내가 몇 시에 퇴근하든 엄마는 부엌에 불을 켜 두고 나를 기다렸어. 다른 식구들이 다 자고 있어도 엄마는 자지 않았지. 매일 늦게까지 나를 기다렸다가 금방 지은 밥하고 새로 끓인 국으로 밥상을 차려줬어.
그런데 엄마, 한만수에게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아.
그 애는 거기 살라고 하면서 내게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어.
돌아오지 말라고.
너 살기 좋은 데 있으라고.
나는 늘 그것을 묻고 싶었는데.
하고 싶은 걸 다하고 살 수는 없다.
- 『연년세세』, 81쪽
한영진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이순일에게 묻고 싶은 오랜 질문이. 왜 나를 당신의 밥상 앞에 붙들어두었는가.
한영진은 그러나 그걸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 질문을 들은 이순일의 얼굴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답을 기다리는 순간을 대면할 용기가 없었다. 이순일은 이제 칠십 대였고 일생 아이들을 돌보느라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았다. 아마도 끝까지, 그걸 묻는 순간은 오지 않을 거라고 한영진은 생각했다.
-『연년세세』, 83쪽
너 하고 싶은 걸 다하고 살 수는 없어.
기억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중략-
거짓말.
거짓말, 하고 생각할 때마다 어째서 피 맛을 느끼곤 하는지 모를 일이라고 한영진은 생각했다.
-『연년세세』, 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