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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Apr 05. 2021

나는 이럴 때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 다른 책에서 읽었던 문장을 만났을 때

나는 이럴 때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     

작고 확실한 행복인 ‘소확행’과 느닷없이 맞닥 뜨릴 때가 있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사랑은 사치일까』를 읽으며 만난 문장에서 기쁨이 오롯이 전해져 왔다. 지적인 충만감은 물감이 퍼져나가듯 잔잔하게 내 마음을 오래도록 물들였다.   

  

페미니스트인 우리가 사랑한 남자들은 불평등에 관해 인식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존재들이었다. 대개 이 남성들은 인종차별이나 계급 착취의 문제에 관해서는 자신들의 노선을 분명히 했다. 그들도 말로는 여성의 인권을 위한 투쟁을 격려했다. 그러나 페미니즘 혁명에 대해 우리가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평등한 권리를 넘어 남성성의 개념이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문화 전반적인 변화를 요구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대개 진심으로 우리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사랑은 사치일까』, 97쪽  

   


남성들은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 한해서만 불평등을 인지할 수 있는 감수성이 있었다. 그것이 거대담론인 인종차별과 계급 착취와 관련된 것일 때는 자신들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심지어 여성들의 인권 투쟁도 지지했다. 다만 남성들이 이룩해 놓은 범주 안에서만 가능한 거였지 ‘평등’의 개념이 확장될 때는 수용하지를 못했다.      


실제로 이 책에는 저자 벨 후크가 “동등함 보다는 공정함을 우선시한 재정 원칙”이 나온다.

그녀가 생각하는 ‘공정함’이란 ‘정당하거나 바른 것’을 의미하기에 제 자리를 찾기까지 몇 년이 걸렸음을 고백한다.      


벨 후크가 선택한 것은 다음과 같았다.

각자가 월급을 벌기 위해 투여하는 시간 대비 수입의 차이를 따져본 후에 생활비의 3분의 2를 그가 부담하기로 결정한다. 이렇게 결정하기까지 걸린 세월은, 그와 함께 산 지 7년 만의 일이었다.    

  

벨 후크는 페미니즘적 교육을 받은 여성답게 자기 몫의 생활비를 전적으로 부담하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벨 후크와 동거했던 상대가 얻는 수입은 벨 후크보다 무려 세 배나 높았다. 그녀는 박사학위를 받기 전 세 과목이나 강의를 맡고 있었지만 똑같이 세 과목을 가르치던 그의 수입은 그녀보다 세 배가 차이가 났다.    

  

우리 대부분에게 이 같은 연대의 실패는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 가장 선명하고 고통스럽게 일어났다. 남성 동지들은 특히 섹슈얼리티에 대한 생각과 여성이 자신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성차별적
사고를 바꾸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 가부장제가 자신들에게 부여한 특권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성차별적 사회화를 정당히 대면하기를 거부하고 정서적·정신적으로 성장하지 않기를 선택한 것은 또 다른 배신이었다.  

   -『사랑은 사치일까』, 97쪽    

 

벨 후크와 같은 페미니스트들이 느꼈을 절망감과 실망감은 얼마나 컸을까? 남성들의 도량은 말로만 풍성했다.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의 크키를 제대로 봤다고나 할까. 그들의 민낯을 적확하게 본 셈이다.   


 이와 비슷한 현상을 "성장판 독서 모임"에서 읽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찾을 수 있었다.

마이클 샌델이 쓴 이 책은 ‘능력주의의 문제’와 ‘공정이 모든 것이라고 보는 생각의 허구’를 지적하고 있다. 

능력주의 혹은 실력주의, meritocracy는 언뜻 보기에 공정해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능력주의적 이상은 학력주의 문제로 직결되는 어두운 모습을 보여준다. 대학 학위의 소지 여부에 따라 성공이 결정되기에 학위를 갖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자리잡게 된다.      


마이클 센델이 보기에 학력주의의 편견이 위험한 것은 성공한 자들에게 교만한 마음을 주기 때문이다. 센델은 엘리트 계층의 사람들은 인종주의나 성차별주의에 반대하지만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상당한 편견을 갖고 있고 지적했다. 게다가 이들 엘리트 계층은 자신들이 못 배운 사람들에게 갖는 부정적인 태도를 인지했어도 변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교육 받지 못해 무시당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업신여김을 당해도 된다는 그릇된 편견 또한 갖고 있었다.      


대졸 엘리트가 교육 수준이 낮은 계층의 사람들을 어떻게 낮춰보는가를 미국에서 실시한 조사가 있다.  

    

그들은 교육 받은 엘리트가 교육 수준이 낮은 대중보다 깨어 있어서 더 관용적이라는 익숙한 생각이 어긋남을 포착했다. 교육 수준이 높은 엘리트는 보다 못한 교육 수준의 대중에 비해 편견이 결코 적지 않다. 다만 편견의 대상이 다를 뿐이다. 더욱이 엘리트는 그런 편견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들 대부분은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에는 반대할지 모르나, 저학력자에 대한 편견에 대해서는 ‘그러면 어때?’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공정하다는 착각』, 160쪽     


저자 마이클 센델은 대졸 엘리트들이 편견에 아무 거리낌 없이, 거침없는 까닭은 개인 책임을 중시하는 능력주의와 관련이 있다고 지목한다.     

 

『사랑은 사치일까』의 벨 후크와 같은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평등을 확장하고 재편성할 때 남성들은 브레이크를 걸었다. 남성들은 가부장제에서 누리는 특권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에 성차별적 사회화를 대면하는 데 도외시했다. 마찬가지로 『공정하다는 착각』에 나타난 능력주의의 남성 또한 배우지 못한 사람에 대한 모욕이 정당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것은 나의 능력은 온전히 내 몫이란 교만함이 전제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능력주의는 승자나 패자에게 모두 위험하다. 승자는 자신의 노력으로 이룬 것이기에 보상은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패자 또한 자신이 못난 탓이라고 화살을 자기 자신에게 돌린다.


 "승자에겐 오만함을. 패자에겐 굴욕감을 주기"에 바람직하지 않다.  

         

별것도 아닌, 오늘 하루의 소확행을 호들갑스럽게 표현했다. 실은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 발견한 문장이 1월에 읽은 책에서의 비슷한 문장이기에 더욱 반가웠다. 그 반가움을 이렇게 넋두리하듯 풀어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 다른 책에서 읽었던 문장을 만났을 때,

나는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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