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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Apr 12. 2021

누가 나 같은 것을 좋아하겠어요

누가 나 같은 것을 좋아하겠어요     

우연치 않게 당혹스러운 대화를 듣게 됐다. 그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말이었다.  

지하철에서 내 앞에 앉은 친구인듯한 두 여성들이 이야기 중이었다.     

전철은 옥수로 진입하며 한강을 건너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강물의 윤슬이 햇볕에 반짝였다. 햇빛을 받아 퍼지는 윤슬이 부드럽게 빛났다. 언제 하늘을 보고 강물을 봤던가 잠깐 상념에 잠겼다.

     

좌석에 앉아 있던 한 여성이 “누가 나 같은 것을 좋아하겠어. 나이도 많은 데다가 애들도 셋이나 되잖아”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얼른 내려다보았다. 말을 내뱉은 여성을 보니 그녀가 말한 것에 비해 그다지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귀염성 있는 얼굴이었다. 옆에 있던 상대 여성이 위로를 했다.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도 아니라고, 너무 늦은 때란  없다고 연신 다독이고 있었다   

   

대화를 엿들으며 엄밀히 말하면 엿들은 것도 아니었다. 저절로 들려왔다. 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최근에 읽었던 『사랑은 사치일까』의 벨 훅스의 어머니와 『연년세세』의 큰딸 한영진이 떠올랐다.    

   

페미니스트인 벨 훅스는 『사랑은 사치일까』에서 어머니께 아버지와 헤어지라고 말한다. 20년 가까이 결혼 생활을 지속하는 동안 아버지는 끊임없이 바람을 피웠으며 어머니께 무정하기 까지 했다. 벨 훅스는 엄마를 홀대하는 아버지 때문에 매번 상처 받고 있는 어머니께 이제 그만 종지부를 찍으라고 종용을 한다. 그녀의 말에 벨 훅스의 어머니는 슬프고 지친 표정으로 말을 한다.  

    

“누가 나를 원하겠니?” 한껏 자신 없는 목소리로 “자신은 이미 한물갔고 자식도 많은데 도대체 어떤 남자가 자기 같은 여자를 원하겠냐”라고 말을 한다.       

이 일은 벨 훅스의 머릿속에 아픔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녀는 가부장제의 중심에 살던 소녀 시절을 고통스럽게 회상한다. 사랑에 관해 배울 수 있었던 괴로운 교훈 중의 하나였다고 이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물론 지금은 지옥 같은 결혼 생활에 갇힌 사람조차도 적어도 자신에게 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제도 바깥에 자신을 원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인지하고 있다.

올해 나이 70인 52년생 벨 훅스의 소녀시절이면 50년 전이다. 그때나 했을 법한 얘기를 2021년도에 똑같은 이야기를 화창한 봄날 전철 안에서 들었다.  

    

가부장제에 철저히 세뇌된 것인지는 몰라도 지금도 일부 여성들은 누군가의 인정 속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다. 끊임없이 타인의 인정을 받으려 고군분투하거나 오히려 자신을 폄하하기도 한다. 자신을 바라보는 여성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지 않았음을 『연년세세』의 큰딸 한영진을 통해 볼 수 있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 때문에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생업전선에 뛰어든다.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며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토요일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외국인 남자에게 느닷없이 데이트 신청을 받는다.

그 외국인은 한국어로 한영진에게 말을 한다.

“당신은 매우 개성 있고 매력 있는 것” 같다고.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다고. 데이트 시간이 있냐고.  

   

“노우”라고 대답하며 한영진은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었다고 생각한다. 일터에 도착하자마자 남편 김원상에게 문자를 보냈다. “외국인이 내게 데이트하고 싶다고 말을 걸었다고”.   

  

“ㅋㅋㅋㅋㅋ

Where is the toilet?

이 말을 니가 잘못 들은 거 아니고?”  

   

김원상의 잽싸게 보내온 답신을 몇 번씩 읽은 후에야 한영진은 깨닫는다. 자신이 불신한 것은 외국인 남성의 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불쾌감을 느낄 정도로 자신을 믿지 못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을 인식한다.      


“네가 그 정도로 매력 있을 리가 없잖아.”     


“더러운 거짓말”이라고 한영진은 읊조린다. 김원상은 자신의 아내가 바깥에서 다른 남자의 관심을 받을 거라고 전혀 헤아리지 못한다. 그러하기에 한영진의 말을 가볍게 일축해버린다.


외국인 남자의 태도에 필요 이상으로 반응하는 자신을 보며 한영진은 깨닫는다. 자신이 매력 이 있을 리가 없다고 속단하는 것이 실은 자기 검열을 하는 자신일 수 있다고 짐작한다. 어쩌면 남편 김원상의 뜻일 수도 있다고 판단한다.      


전철에서 들었던 여성의 말이나 책에 나온 한영진의 말 모두 자신들의 가치를 폄하하고 있었다. 도대체 누가 그런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을까.     

  

“누가 날 좋아하겠냐”는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누가 나를 좋아하긴? 남이 나를 좋아해 주면 기분 좋은 일이긴 하지만, 설사 나를 귀하게 여겨 주지 않더라도 내가 나 자신을 좋아하고 귀하게 여기면 된다. 실학자 이덕무처럼 나 스스로에게 집중하며 내 그림자와 벗하며 놀아도 된다.      


내 자신에게 몰두해야 하는 이유는 벨 후크의 말처럼 “나를 떠나거나 배신하지 않을 유일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여성인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서 사랑의 탐색은 시작되어야 한다”고 벨 후크는  선언한다.    

  

사랑의 기술을 연마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는 우리 자신, 우리가 가장 잘 알고 변화 시킬 수 있는 스스로의 몸과 정신 그리고 마음이다. 이 여정은 친밀감과 진정한 사랑의 본질에 대한 기존의 사고와 믿음을 재검토하는 데서 출발한다. 여성이 천성적으로 사랑에 적합한 존재라는 편견을 버리고 사랑을 하겠다고 선택하는 것이다.  

ㅡ『사랑은 사치일까』, 138쪽    

 


사랑이 오기를, 사랑 받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먼저 사랑하고 다가가는 편을 선택하겠다.

“누가 나를 좋아하겠어” 보다는 내가 상대를 좋아하는 것으로 패러다임을 재정립하면 안 될까? 지금 있는 곳에서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으로 시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사랑의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불교 선승이 말하듯 ‘당신이 있는 바로 그곳’에서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사랑은 사치일까』139쪽    


포기가 많은 세상에 스스로 사랑하는 것에 몰두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먼저 상대를 사랑한다. 이렇게 하면 주체성은 물론 개인적 성장과 정서적으로 열린 마음을 얻게 될 것다. 페미니스트 벨 후크의 주장이 유의미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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