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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Apr 26. 2021

단숨에 못 읽는 책은, 어떤 책일까

어떤 책은 단숨에 못 읽는 책도 있다.

호흡이 길어서가 아니라 고통스러워서이다. 『소년이 온다』가 그랬다.

한강 작가의 이 소설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들이 자신이 겪었던 것을 기록으로, 목소리로 남기고 있는 작품이다. 그들이 겪어낸 것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소년이 온다』는 1장 ~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데 책 전체를 흐르고 있는 키워드는 ‘트라우마’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계엄군이 들어오기 전 광주에 있었던 것과 집단 학살로 인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죽은 자의 혼령을 축으로 서사가 진행된다.      


『소년이 온다』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이야기를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은 중3 소년들이다.

2장 「검은 숨」의 정대는 중3인 동호의 친구로 동호네 집에서 누나와 함께 세 들어 사는 아이다. 정대는 자신의 목소리로 모든 것을 보고 말하는 존재로 표현된다. 시신에서 빠져 나온 정대의 혼령은 자신이 본 것을 서술함으로써 당시의 지옥 같은 상황을 증언한다.      




  우리들의 몸은 열십자로 겹겹이 포개져 있었어. 내 배 위에 모르는 아저씨의 몸이 구십도로 가로질러 놓였고, 아저씨의 배 위에 모르는 형의 몸이 다시 구십도로 가로질러 놓였어. 내 얼굴에 그 형의 머리카락이 닿았어. 그 형의 오금이 내 맨발에 걸쳐졌어. 그 모든 걸 내가 볼 수 있었던 건, 내 몸 곁에 바싹 붙어 어른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다가왔어. 얼룰덜룩한 군복에 철모를 쓰고, 팔에 적십자 완장을 차고서 바르게. 그들은 2인 1조로 우리들의 몸을 들어올려 군용 트럭에 던져넣기 시작했어. 그러니까 혼들은 만날 수 없는 거였어.

-『소년이 온다』, 46~47쪽


죽은 정대의 혼은 자신과 함께 시신들이 켜켜이 포개져 있는 “사체들의 탑”을 본다. 시신들은 군인들에게 짐짝처럼 함부로 다루진다. 누나 역시 죽었음을 알게 된다. “묻고 싶었어. 왜 나를 죽였지. 왜 누나를 죽였지. 어떻게 죽였지”라며 자신과 누나의 죽음에 질문을 한다.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한 대안으로 “더 많은 기억이 필요했어. 더 빨리, 끊어지지 않게 기억을 이어가야 했어”라며 말한다.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듯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 『소년이 온다』. -57쪽


그 어떤 기억도 현재의 맥락 속에서 조작되고 왜곡 될 수 있기에 정대의 영혼은 우리에게 요구한다. “더 많은 기억이 필요했어. 더 빨리, 끊어지지 않게 기억을 이어가야 했어”라며 광주에서 일어난 그날을 잊지 말고 증언하고 기록하라고 주문한다.

     

1장의 「어린 새」는 유일하게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된다. 정대가 자신의 목소리로 스스로 발언을 했다면 「어린 새」의 동호는 “살아남은 인물들로 하여금 동호와 진수를 대신해서 증언하게 함으로써 증언의 공백을 메우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동호는 도청에 들어오는 시신이 많아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정리해 장부에 적는 일을 돕는다.

영문도 모른 채 정대와 동호는 시위대에 앞장섰다가 정대가 총을 맞는다. 피하는 도중에 정대를 두고 혼자만이 도망쳤다. 이 기억은 동호에게 트라우마로 작용해 상무관에서 끝까지 남아있다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마지막으로 정대를 본 건 동네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너였다. 모습만 본 게 아니라, 옆구리에 총을 맞는 것까지 봤다. 아니, 정대와 너는 처음부터 손을 맞잡고 선두로, 선두의 열기 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귀를 짖는 총소리에 모두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공포다! 괜찮다!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앞 대열로 돌아가려는 아수라장 속에서 정대의 손을 놓쳤다. 다시 총소리가 귀를 찢었을 때, 모로 넘어진 정대를 뒤로 하고 너는 달렸다.

『소년이 온다』, 31쪽     


동호는 “총에 맞은 친구를 두고 갔었노라” 그 사실을 차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다. 혼자 도망친 것에 대한 용서를 빌고 싶은 마음에 정대를 찾아다닌다. 평범한 중학생이 겪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광주의 어느 한 날은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라고 결심하게 만든다. 동호가 어린 시신들 사이를 방황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3장 「일곱 개의 뺨」 은 상무관에서 동호와 함께 했던 김은숙의 이야기이다.

「어린 새」에서 동호가 며칠 사이에 야위어진 은숙 누나를 보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빠져나가는 어린 새는, 살았을 땐 몸 어디에 있을까. 찌푸릴 저 미간에, 후광처럼 정수리 뒤에, 아니면 심장 어디께에 있을까."

 - 27쪽


 


광주에서 살아남은  은숙은 출판사에서 원고 편집 일을 하고 있다.  보름 전 청계천변 제과점에서 마지막 교정을 하기 위해 번역자를 만났다. 수배자라고 하기에는 ‘벌레 한 마리 못 죽일 듯 소심해 보이는 눈매’를 가진 그 남자를 만났을 뿐이었다.    

  

청계천 제과점에서 만났던 그 번역자의 서문에 실린 글은 다음과 같다.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지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정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소년이 온다』, 95쪽     


이 책으로 인해 은숙은 느닷없이 끌려간다. 경찰서 조사실에서 그녀는 일곱 대의 따귀를 맞는다.  

뺨 한대 마다의 이야기가 실려있는 독특한 구성으로 몰입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은숙은 과거 스무살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무관에 남겠다는 동호에게 지금 같이 나가야 된다고 같이 가야된다고 설득해보지만 동호는 계단으로 날쌔게 달아나버린다. 마지막으로 마주친 눈빛에서 죽음의 공포를 엿본다.


 은숙은 죽음을 피하지 않았던 동호의 모습과 대비되어 그녀를 괴롭힌다. 광주에서 살아남은 죄책감은 트라우마가 되어  장례식과도 같은 삶은 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때문에 작가는 “그녀에게 영혼이 있었다면 그때 부서졌다”고 기록한다.      


수정된 서선생의 대본으로 올린 연극은 대사를 말로 하지 않고 입모양으로만 전달되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서선생이 원고지에 펜으로 쓴 희곡을 직접 입력하고 삼교까지 봤던 은숙이기에 배우들의 입모양만 보고도 또렷하게 읽어낼 수 있었다. 죽은 이들의 혼령을 제대로 위로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은숙의 삶은 살고 있지만 사는 게 아닌 삶인 것이다.    

   

은숙은 무대 위의 소년을 ‘동호야’라고 부른다. 무대 위의 소년은 노파의 등허리에 몸을 바짝 붙이고 “업힌 아이처럼, 혼령처럼 살금살금 뒤를” 따른다. 연극 하는 소년을 보며 은숙은 계속해서 동호라고 부른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꽂들이.

- 『소년이 온다』, 102~103쪽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이는 소년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은숙은 자신의 기억과 직면하기로 결정한다. 이러한 행위는 『소년이 온다』 에서 기록으로 남게 한다. 뿐만 아니라 그날을 기억하고 증언하는 기능을 한다.      



4장 「쇠와 피」는 계엄군이 들어오던 날 상무관에 함께 있었던 동호와 김진수와 주인공 ‘나’의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스물 세살 교대 복학생이 었던 ‘나’는 김진수와 함께 체포되어 같은 감옥에서 같이 고문을 당했다. ‘나’에게 어떤 선생이 전화를 해 “김진수의 죽음을 심리적으로 부검”하려 한다며 ‘나’가 기억하는 것을 말해달라고 요청한다. 살아남은 사람으로서의 기록을 요구받지만 김진수와 함께 죽음을 코 앞에 둔 사람에 머무를 뿐이다.      


김진수와 함께 뼈가 보일 정도의 잔혹한 고문을 당했으며, 아주 적은 양의 밥 한줌과 국 반 그릇, 김치를 두고 진수와 짐승처럼 싸웠다. 특히 여성적인 외모의 진수는 변칙적인 고문을 더 당했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고민도 했으며 감옥에 함께 있었던 소년 영재가 고문을 견뎌내는 것을 보며 부끄러워했음을 고백한다.

     

‘나’가 언술하는 기억은 광주의 그날을 겪은 수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임을 무명의 ‘나’를 통해 보여준다.

‘나’는 선생에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더 기억하라고 나에게 말할 권한은 이제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선생도 마찬가집니다”라고 증언하기를 거부해도 결국 작가에 의해 기록되고 증명된다

.      

더 이상 누구도 우리를 위해 염려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신조차 우리를 경멸했습니다. 우리들의 몸속에 그 여름의 조사실이 있었습니다. 검정생 모나미 볼펜이 있었습니다. 하얗게 드러난 손가락뼈가 있었습니다. 흐느끼며 애원하고 구걸하는 낮익은 음성이 있었습니다.  

-『소년이 온다』, 126쪽   


 ‘나’와 진수는 광주의, 계엄군이 내려왔던 그날의 기억과 고문의 상흔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제 ‘지쳤어’라고 말하는 진수는 그의 삶을 오래도록 붙잡고 있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 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하지.

 -『소년이 온다』, 126쪽      


“깨지지 않는 유리”같은 영혼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것이었다. 하지만 영혼은 부서져버려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 살아남았지만 영혼이 없는 “죽은 자의 혼령” 같은 존재들이다.


동호를 비롯한 아이들의 죽음은 '나'에게도 김진수에게도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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