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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에게 막말하기

by 진순희
캡처.PNG 출처: Pixabay



사자에게 막말하기


이영식



사자 한 마리 다가왔다.


미사일처럼 날렵한 몸, 뼈를 감싼 근육 실룩거리며 성큼성큼 걸어온 사자는 내 귓속에 비밀 한 조각을 밀어 넣어 주었다


나도 시를 써요 ㅡ 매일 식솔들이나 챙기다 보니 너무 무료하고 심심해서 몇 해 전부터 시를 쓴다고 했다.


살점은 몽땅 달아나고 핏물 말라붙은 양피지에 쓴 글을 꺼내 보이며 화평話評을 부탁했다.


바오밥나무 아래 어린왕자라면 몰라도 밀림의 왕자시인이라니! 그의 핏빛 입술이 몹시 두려웠다.


내가 말 한마디 못하고 머뭇거리자 채근하듯 무릎에 갈기진 머리털을 문지르는 사자, 힐끗 올려다보는 눈빛이 뜨겁다. 나를 먹어치우려는 것일까?


사자가 의미 모를 웃음을 흘리는 순간 얼핏 보았다. 그의 입속에 이빨이 없다. 무시무시한 송곳니가 없다. 그러고 보니 발톱도 뭉개지고 모두 빠졌다.


이런 젠장, 개나 소나 모두 시인이 되는 줄 알아? 문장 하나도 제대로 심어놓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꽃이 피고 열매가 맺기를 바라는 거야!


막말이 튀어나오려는데 내 손등 위의 뚝 떨어지는 눈물 한 점, 사자의 눈물이다. 왕자를 잃고 무리에서 떠밀려나 궁벽한 처지란다.


나는 풀죽은 그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나직이 말했다.


문장을 갖는다는 것은 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지요. 당신의 꿈을 포기하지 마세요. 꽃이 될 수 있어요.





이영식 선생님.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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