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의 화자는 사흘 내리 전화를 하는 전화기 너머의 경상도 사내의 그 목소리에 차마 뿌리치지를 못하고 마음에 담아둔다. '춥고 가난한 이름 하나를' 오늘은 묻지 않는 그 사내의 전화를 끊어내지 못하고 다 받아준다.
"지독하게 추웠던 겨울이 다 지나간다고 해도/꽃이야 새로이 피어난다고 해도/한 번만 더 걸어보고 싶은 한밤중의 전화"에 가서는 그만 내 이야기 같아서 시에 풍덩 빠져들게 된다.
"누구에게나 오래도록 아물지 않는 이별"의 시행을 따라가다 서툴러서 비껴가 버린 첫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요즘 읽고 있는 황인숙 시인의 산문집 『목소리의 무늬』의 「당신 개의 그림자라도 되고 싶어」에
<늦은 밤에 거는 전화>와 비슷한 사례가 나온다. 책에는 황인숙 시인의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시인의 친구는 동생과 단둘이 여행을 갔던 어느 날 밤, 잠든 동생 휴대폰으로 계속 전화가 오고 메시지가 오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잠을 깬 동생은 모르는 전화라고 전화기를 밀어 놨지만 휴대폰은 계속 울려댔다.
친구의 동생은 "실연한 여잔가봐, 네가 나한테 그럴 수가 있느냐, 그 여자가 나보다 나은 게 뭐냐. 네가 나를 오해한 거다. 징징 울면서 욕도 하고 별소리 다해놨어"라며 내버려 두고 자자고 했단다.
딱하게 여긴 친구가 휴대폰에 남은 그 전화로 몇 번의 연락을 취했지만 받지를 않았다. 나중에 이런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아까 네가 전화했을 때 겁이 나서 받지 않았어. 내 혈액형, 소심함 A형이잖아. 네가 화낼 게 무서워서 못 받았어."
「당신 개의 그림자라도 되고 싶어」에는 프랑코 라 세클라가 쓴 『이별의 기술』도 안내하고 있는데, 세클라는 자크 브렐이 작사. 작곡한 <떠나지 마오>도 들려준다.
당신의 그림자의 그림자가 되게 해주오 당신 손의 그림자 당신 개의 그림자라도
아직도 아물지 못하는 이별에는 "당신 개의 그림자라도" 되고 싶은 비천한 마음이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