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칠환 시집『웃음의 힘』(지혜, 2012) 중에서
황새와 말과 거북이와 달팽이와 굼벵이는 날아서 뛰어서 걸어서 기어서 굴러서 도착했는데,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속도가 점점 느려지는 점강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시의 압권은 ‘도착했다’는 서술어에 있다.
있는 공간이나 움직이는 보폭도 다른데 새로 시작되는 첫 시간은 똑같이 주어진다. 날다가 뛰다가 걷다가 기다가 구르다가 아예 앉은 채로 있었지만 기적 같은 새해에 도착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높고 낮음이 없이 공평하게 주어졌음을 알 수 있다.
새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존재 자체만으로도 기적이 되는 새해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라고 노래한 시인의 말이 더욱 살갑게 다가온다.
이 문장 하나만으로도 희망을 갖게 되는 새해이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나짐 히크메트의 시가 생각나는 날이다.
리셋하고
자기에게 알맞은 걸음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한다며 결국 똑같이 도착한다는 우주의 원리가 숨어 있다. 신비로운 세계이다.
살아 있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기적이 되고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 최고의 날"이 되는
새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