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수상자 작가인 가즈오 이시구로는 한국의 언론들과의 합동 서면 인터뷰에서 『클라라와 태양』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클라라와 태양』은 희망, 그리고 세상에는 선함이 존재한다는 믿음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가즈오 이시구로는 『클라라와 태양』을 집필하기 전에 동화 형식의 글을 써서 딸에게 보여주었는데, 딸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결말이 부정적이어서 아이들이 읽고 나서 트라우마가 생길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난 후에 작가는 『클라라와 태양』이라는 어른들을 위한 SF 우화 형식의 소설로 각색했단다.
‘클라라’는 AI인데, AI에 관한 글은 이미 익숙하다. AI의 시대가 올 거라고 사람들의 인식에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클라라는 평범한 AI가 아니다. 아이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가 되어주고(AF), 언제든 그 아이의 대체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클라라와 태양』은 AI와 조시라는 아픈 소녀와의 우정을 넘어선 AI의 선한 영향력을 다루고 있다. 제목에 언급한 클라라는 AF(Aftificial Friend)다. 전시된 물건을 고르듯이 자신의 자녀에게 줄 AF를 선택한다. AF는 스마트폰 스타트 TV 스마트 패드처럼 계속 업그레이드되면서 기존의 기기는 인기가 없어지거나 단종된다.
상점 쇼윈도에 전시된 AF들을 사 가지고 아이들에서 선물하는 것을 보며 최근의 읽은 『고립의 시대』가 떠올랐다. 『고립의 시대』 속 ‘나’는 휴대전화 화면을 몇 번 클릭하면 치즈버거 주문하듯 우정을 주문할 수가 있다. 스타트업의 소셜 미디어에 글을 게시하는 일을 하거나 임원의 비서 일을 하는 ‘나’는 외롭지 않기 위해 일주일에 두서너 번 정도 렌트어프렌드Rent-a-Friend라는 회사를 애용한다. 시간당 40달러만 지불하면 고학력 여성들과 친밀하게 지낼 수 있다. 환경과학을 전공했다 하더라도 코로나로 전공 분야의 직업을 구하지 못한 브리트니와 같은 여성들과 일시적으로 친구를 빌릴 수가 있다. 돈 주고 우정을 사는 셈이다.
조시의 엄마 크리스가 클라라보다 업그레이드된 B3를 원하지만 조시의 설득으로 클라라는 조시와 함께 살게 된다. 소설 속 배경은 우월한 유전자를 갖기 위해 ‘향상’ 기술을 거친 아이와 ‘릭’처럼 향상되지 못한 아이를 구분한다. ‘향상’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기술 착오로 조시처럼 병약한 아이가 나타나기도 한다.
크리스의 저의는 조시의 존재를 대체할 대체물이 필요했다. 조시의 말투나 걷는 것 등을 클라라에게 배우게 해 조시가 없을 때를 미리 대비하려고 한 것이다. ‘조시’라는 “특별하고 개별적인 존재” 보다는 어쩌면 ‘조시’가 떠난 뒤의 허전함을 메우기 위해 조시의 복제품을 준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클라라는 여느 AF와 다르게 관찰력이 뛰어나다. 기술력이 뛰어난 B3 보다도 공감력이 월등했다.
“새로 나온 B3가 인지 기억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공감력이 좀 부족한 경우가 있다고 하던데요.”
클라라의 공감력은 조시의 아픔에 깊이 공감해 자신을 희생하기까지 한다.
얼핏 보기에 희생은 생물만이 할 수 있는 고귀하고 고유한 덕목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AI인 클라라가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장면을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조시의 건강을 그 누구보다도 염려한 클라라는 조시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오염물질을 없애기보다는 다른 결정을 한다. 자신의 머리와 목을 연결하는 P-E-G 라인 용액을 빼내 조시가 건강하게 살도록 돕는다.
그런데 공감력이 뛰어난 클라라의 결정도 조시와 같은 개별 존재의 마음을 그대로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조시처럼 흉내 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니 조시의 마음을 배워야 한다고 조시의 아빠 폴은 클라라에게 조언을 한다. 조시를 면밀하게 관찰하면 자신의 능력으로 가능할 거라는 클라라의 말에 조시 아빠는 이렇게 대응을 한다.
“너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걸 믿니? 신체 기관을 말하는 건 아냐. 시적인 의미에서 하는 말이야. 인간의 마음. 그런 게 존재한다고 생각해? 사람을 특별하고 개별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 만약에 정말 그런 게 있다면 말이야. 그렇다면 조시를 제대로 배우려면 조시의 습관이나 특징만 안다고 되는 게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 있는 걸 알아야 하지 않겠어? 조시의 마음을 배워야 하지 않아?”
-『클라라와 태양』, 320쪽
가장 배우기 어려운 부분이 “마음‘이라는 것은 알지만 에이에프가 열심히 노력하면서 그 방들을 전부 돌아다니면서 연구한다면 자기 집처럼 익숙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클라라는 호언장담을 한다.
“하지만 네가 그 방 중 하나에 들어갔는데, 그 안에 또 다른 방이 있다고 해 봐. 그리고 그 방 안에는 또 다른 방이 있고. 방 안에 방이 있고 그 안에 또 있고 또 있고. 조시의 마음을 안다는 게 그런 식 아닐까? 아무리 오래 돌아다녀도 아직 들어가 보지 않은 방이 또 있지 않겠어?”
『클라라와 태양』, 321쪽
인간의 마음을 복제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음을, 조시라는 존재의 특별함은 그를 둘러싼 관계가 이뤄내는 사랑에 있음을 클라라의 입을 통해 소설은 마무리를 한다.
"저는 조시를 배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그래야만 했다면 최선을 다해서 그렇게 했을 거예요. 하지만 잘되었을 것 같지는 않아요. 제가 정확하게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카팔디(조시의 복제 로봇을 만들던 과학자)씨는 조시 안에 제가 계속 이어갈 수 없는 특별한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는 카팔디 씨가 잘못된 곳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
- 『클라라와 태양』, 4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