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이 타고난 본성을 가늠하시오
짐승으로 살고자 태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덕德 과 지知를 따르기 위함이라오
“마치 나 역시 생전 처음으로 이 구절을 듣는 것 같았다. 날카로운 트럼펫 소리, 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잠시 나는 내가 누구인지, 어디 있는지 잊을 수 있었다. 피콜로가 다시 들려달라고 간청한다. 피콜로는 얼마나 착한 사람인지 그는 지금 이렇게 하는 게 나를 위한 일임을 알고 있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보잘것없는 번역과 진부하고 성급한 해석에도 불구하고 그가 메시지를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게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라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고된 노동을 하는 인간, 특히 수용소의 우리들과, 죽통을 걸 장대를 어깨에 지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 두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라고 느꼈을지 모른다.”
- 『이것이 인간인가』의 내용을 『마음챙김의 인문학』, 42쪽에 실린 것 재인용
시의 천분은
어떤 놀라운 관념으로 우리를 현혹시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존재의 한 순간을 잊을 수 없는 것이 되게 하고 견딜 수 없는
향수에 젖게 하는 데 있다.
-밀란 쿤데라의 『불멸』, 40쪽
자신의 삶이 담보되지 않은 시는 잔고가 없이 남발하는 수표와 같다. 그에 반해 가장 아름다운 시는 전 재산을 걸고 떼어주는 백지수표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누가 감히 그렇게 무모할 것인가. 분명한 것은 아무도 발 디디려 하지 않는 조악하고 추잡한 현실의 늪이야말로 시가 자라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 이성복, 『고백의 형식들』, 「시에 대한 각서」, 1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