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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May 01. 2022

시인이 된다는 것은 갈 수 있는데 까지 가보는 것이지


가끔 생각한다. ‘시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치열하게 시를 쓰고 있는지. 시는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문득문득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앞만 보고 빠르게 달려가는 일상에 시를 읽고 쓰는 일은 내게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가져다준다. 오로지 시를 읽고 쓰는 동안만 경제활동과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한다. 시는 수익창출과 무관한 쓸모없음으로 오히려 삶 자체를 쓸모 있게 해주고 있다. 잔잔한 의미의 시의 효용성을 넘어선 글을 발견했다.   

   

시가 멈춤의 시간을 고요의 시간을 넘어서 인간으로 남을 수 있게 한 힘이 됐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마음챙김의 인문학』에 소개된 프리모 레비 Primo Levi의 『이것이 인간인가』이다.       



이탈리아의 화학자이면서 아우슈비츠의 생존 작가인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에서 10개월 동안 겪은 일을 책에 담아냈다. 죽음뿐인 그곳에는 생존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레비는 암송한 단테의 『신곡』으로 수용소에서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

어린 동료 피콜로와 죽을 받으러 가며 레비는 『신곡』을 들려준다. 피콜로는 홀린 듯 간청을 한다. 조금만 더 들려달라고.    

 

그대들이 타고난 본성을 가늠하시오
짐승으로 살고자 태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덕德 과 지知를 따르기 위함이라오  


   

어린 동료에게 들려주는 그 구절을 낭송하는 순간 레비 스스로 깨닫는다. 레비는 책에 이렇게 썼다.

     

  “마치 나 역시 생전 처음으로 이 구절을 듣는 것 같았다. 날카로운 트럼펫 소리, 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잠시 나는 내가 누구인지, 어디 있는지 잊을 수 있었다. 피콜로가 다시 들려달라고 간청한다. 피콜로는 얼마나 착한 사람인지 그는 지금 이렇게 하는 게 나를 위한 일임을 알고 있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보잘것없는 번역과 진부하고 성급한 해석에도 불구하고 그가 메시지를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게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라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고된 노동을 하는 인간, 특히 수용소의 우리들과, 죽통을 걸 장대를 어깨에 지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 두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라고 느꼈을지 모른다.”   

-  『이것이 인간인가』의 내용을 『마음챙김의 인문학』, 42쪽에 실린 것 재인용      


이러한 순간이 끝나고 얼마 안 있어 아우슈비츠는 습격을 받는다. 포화로 엉망이 된 곳에 있던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러시아군이 도착한다. 그들이 도착해 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을 구출하기까지 열흘의 공포스러운 시간이 있었다. 성홍열에 걸려 병동에 있던 레비는 자신보다 더 심한 환자들을 돌봐 그들을 지켜낸다. 단 한 명의 사망자만 빼고 군더더기 없이 해야 할 일을 다하면서 버텨낸다.     


  

 『마음챙김의 인문학』의 임자헌 작가는 프리모 레비가 인간으로 남을 수 있게 한 ‘힘’을 그가 외운 시에서 찾는다. 조심스레 운문에 있지 않았을까 예단하며 그가 암기하고 있던 시는 인간학이자 신학으로 프리모 레비의 존엄을 지켜주었다고 강조한다.

프리모 레비의 체험을 읽으며 마인드풀니스(마음 챙김) 하는데 詩만 한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를 읽고 음미하며, 시를 쓰는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해야겠다고 불끈 주먹을 쥐어본다.    


  

밀란 쿤테라의 시에 관한 글도 내게 통찰력을 가져다주었다.  

    

시의 천분은
어떤 놀라운 관념으로 우리를 현혹시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존재의 한 순간을 잊을 수 없는 것이 되게 하고 견딜 수 없는
향수에 젖게 하는 데 있다.

 -밀란 쿤데라의 『불멸』, 40쪽   

  

시는 존재의 한 순간을, 아주 짧은 찰나의 시간을 잊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그 순간에 머물게 함으로써 향수에 젖게 해 잊힐 수 없는 불멸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시다.  

          


자신의 삶이 담보되지 않은 시는 잔고가 없이 남발하는 수표와 같다. 그에 반해 가장 아름다운 시는 전 재산을 걸고 떼어주는 백지수표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누가 감히 그렇게 무모할 것인가. 분명한 것은 아무도 발 디디려 하지 않는 조악하고 추잡한 현실의 늪이야말로 시가 자라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 이성복, 『고백의 형식들』, 「시에 대한 각서」, 166쪽     


이성복 시인의 「시에 대한 각서」는 나를 더욱 다잡게 한다. 시와 시인의 삶이 같아야 함을, 자신의 삶을 담보로 잡히지 않은 시는 부도 수표나 공 수표가 될 확률이 크다고 내게 경종을 울린다. 백지 수표와 같은 시를 쓰려면 니체가 말한 것처럼 피로써 써야만 됨을 오월 첫날 다짐해본다.


「시인이 된다는 것」을 읽으며 다시 한번 각성하게 된다. 이 시는 소설가로 더 유명한 밀란 쿤데라가 소설 쓰기 전에 시작 활동을 했던  첫 시집에 실려 있다. “시인이 된다는 것은 끝까지 가보는 것을 의미”한다. 빠른 셈으로 너무 일찍 포기해 실족되지 않도록, 마음으로 지치지 않도록 결심을 해본다.

 “행동의 끝까지 희망의 끝까지 열정의 끝까지 절망의 끝까지” 가보려 한다.      




시인이 된다는 것     

                                      밀란 쿤데라          

시인이 된다는 것은

끝까지 가보는 것을 의미하지  

   

행동의 끝까지

희망의 끝까지

열정의 끝까지

절망의 끝까지  

   

그다음 처음으로 셈을 해보는 것,

그 전엔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

왜냐하면 삶이라는 셈이 그대에게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낮게 계산될 수 있기 때문이지   

  

그렇게 어린애처럼 작은 구구단곱셈 속에서

영원히 머뭇거리게 될지도 모르게 때문이지  

   

시인이 된다는 것은

항상 끝까지 가보는 것을 의미하지.   

  

- 밀란 쿤데라 시집, 『시인이 된다는 것』 (세시,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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