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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May 13. 2023

오늘, 선포를 했다.



토요일 아침 9시 30분부터 중3 수업이 시작된다. 문학, 비문학 독서, 문법이랑 칼럼 한 편 분석하고 필독서 한 권을 나가고 있다. 두꺼운 책일 경우에는 두 번에 나가고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는 4회에 걸쳐서 진행하고 있다. 



아침 일찍 시작하는 거라서 학원 오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이해는 하지만 30분 늦는 것은 기본이고, 숙제를 안 해온다. 요기까지는 양반이다. 심지어 교재도 안 갖고 온다. 



교재 안 갖고 온 미현이에게 물었다. 


교재가 없으면 수업을 어떻게 받지?
아시잖아요. 지난번에 저 빠졌잖아요. 
무슨 소리야. 단톡방에 숙제 안내 다 했잖아. 학부모님 방에도 올리고 학생팀방에도 다 올렸는데.
저, 안 봤어요.




이쯤 되면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다. 꼰대짓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코로나 이후 아이들이 달라졌다. 아니 수준이 많이 떨어졌다.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사회 생활하는 민감도마저도 낮아졌다.  



아침 일찍 일어나기 힘들지. 근데 나도 힘이 드네. 수업하고 나서의 만족도가 없어. 밀도 높은 수업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칼럼 <애원하는 여인>을 준비했어. 카미유 클로델의 '성숙'과 '애원'도 다 찾고 아르테미시아 젠텔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와 유디트>까지 마련했잖아. 근데 매번 늦고 과제도 안 해오니 헛 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달까지만 하고 이번 팀을 해체해야겠어. 동안 상황을 보고 결정을 내릴게.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카미유 클로델-<성숙>


카미유 클로델, <애원>




아이들이 갑자기 웅성거렸다. 다음번부터는 잘해오겠다고, 지각 안 해야겠다고 말하는 줄 알았다.



아, ○○학원은 너무 빡센데. 게다가 사람이 할 수 없는 분량의 숙제를 내주잖아. 
△△학원은 숙제를 애들끼리 베껴서 내도 몰라. 그리고 시험이 너무 쉬어.
아, 다른 데 어디를 다니지?






아이들이 살아가는 데 뭐 대단한 능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요즘 들어 부쩍 드는 것이 기본만 해도 상위 3% 안에는 들겠다는 생각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숙제를 안 해온다. 아니 97% 이상의 아이들이 최소한의 것도 안 해온다. 그런데 그 숙제 못해오는 변명이 아주 합리적(?)이기까지 하다.


선생님도 우리 입장이라면 숙제를 해올 수 있겠어요?
학원마다 숙제가 얼마나 많은데요?

일주일에 지문 세 개가 많다고 생각해?
무슨 소리예요? 이번 주 숙제는 네 개였어요. 그리고 대치동의 □□ 학원 선생님도 그러셨어요.

"얘들아 제발 숙제 좀 해와라"라고요. 저는 쪼끔이라도 했잖아요.



수업이 끝나고 나가면서 살짝 미안한 듯이 성재가 말했다.



쌤, 다음에는 숙제 잘해올게요.


반신반의하면서도 도리가 있나. 믿어보는 수밖에. 




#지각 #숙제 #교재 #카미유클로델 #중년 #성숙 #애원 #로뎅 

#아르테미시아 젤텔리스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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