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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Sep 01. 2019

수행평가로 하는 생활시쓰기

내 가 경험한 것을 맛깔스럽게  시로 표현하기

   학생들이 제일 난감해할 때가 시집을 읽고 독서감상문을 쓸 때이다. 학교에서 시집을 갖고 수행평가를 할 때는 이것보다 더 힘들어한다. 보통 수행평가는 필독서로 정해진 시집을 선택해서 한다. 감상문을 쓰거나 아니면 실제로 시 한 편을 써보게 한다.


   수업시간 45분 내에 선생님이 나눠준  시를 읽고 "특정 '시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서술하라. 도치법이나 역설을 활용한 구절을 써보자" 등으로 평가를 한다. 이 정도는 수업 시간에 잘 듣기만 해도 대부분 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시 한 편을 써보는 것인데, 많은 학생들이 막막해한다. 


   '시'에 대해 떠오르는 단어를 말해보라고 하면 모두들 아무것도 안 떠오르는데요, 심지어 아무  생각이 없다고 한다. 그냥 어렵고 재미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시 쓰는 거 너무 싫어요. 안 했으면 좋겠어요. 학교에서 시험 볼 건데 여기서 왜 또 해요 모두들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심지어 "시 쓰기 너무 싫어 정말 싫어" 싫다고 떼창을 한다. 이렇게 하기 싫다는 아이들에게 에일리의

 <보여줄게> OST 영상을 준비했다. 


내가 사준 옷을 걸치고 / 내가 사준 향술 부리고
지금쯤 넌 그녈 만나 / 또 웃고 있겠지
그렇게 좋았던 거니 / 날 버리고 떠날 만큼
얼마나 더 어떻게 더 / 잘해야 한 거니
너를 아무리 지울래도 / 함께한 날이 얼마인데
지난 시간이 억울해서 / 자꾸 눈물이 흐르지만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 보여줄게 훨씬 더 예뻐진 나
바보처럼 사랑 때문에 떠난  / 너 때문에 울지 않을래
더 멋진 남잘 만나 꼭 보여줄게 / 너보다 행복한 나
너 없이도 슬프지 않아 / 무너지지 않아


   유튜브를 틀자마자 아이들이 우~ 하면서 손뼉을 치며 일어섰다. 반복되는 리듬에 몸을 흔들며 노래를  했다. 한 아이가 앞으로 나와서 에일리처럼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함께 있던 아이들도 나와 책상을 치면서 몸을 흔들었다. 영화 <위험한 아이들>과 같은 수업이 연출됐다.


https://www.youtube.com/watch?v=_UAkSmuksr0



   <보여줄게>가 끝나자 <도깨비>도 들려달라고 했다. 도깨비 OST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를 다시 틀어줬다. 


널 품기 전 알지 못했다. / 내 머문 세상 이토록
찬란한 것을 / 작은 숨결로 닿은 사람
겁 없이 나를 불러준 사랑 / 몹시도 좋았다
너를 지켜보고 설레고 / 우습게 질투도 했던
평범한 모든 순간들이 / 캄캄한 영원
 그 오랜 기다림 속으로 햇살처럼 니가 내렸다
-- 
언젠가 만날 / 우리 가장 행복한 그날
첫눈처럼 내가 가겠다 / 너에게 내가 가겠다


   반복되는 리듬에 모두들 따라 하며 흥겨워했다. 시랑 노래랑 무슨 관련이 있냐고 하는 아이들에게 <보여줄게>의 노랫말이 바로 시라고 알려줬다. 시를 어렵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체험과 느낌을 노래하듯이 쉽게 표현하면 된다고. 너희들이 춤추고 따라 했던 그것이 바로 시에서 말하는 운율이라고 간략하게 설명을 했다. 멋지게 치장한 글이 아니라 나만의 생각으로 나만이 볼 수 있는 눈으로 표현해 보라고 했더니 그래도 못쓰겠다고 아우성이었다.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신이 겪었던 일을 줄글로 먼저 쓰게 한 것이다. 그런 다음 시로 고쳐 쓰게 했다.


   줄글을 운문인 시로 표현할 때는 다음과 같다.

수필처럼 쓴 글에 설명하는 부분은 모두 빼고, 짧고 간단하게 쓴다. 겪은 일을 시로 쓸 때는 겪은 일을 줄여서 최대한 짧게 쓰는 것이 관건이다. 또한 겪은 일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을 간결하고 깔끔하게 쓴 것 또한 중요하다. 제일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소리 내어 읽을 때 노래하듯이 읽히도록 써야 하는 것이다. 반복되는 말이나 소리, 모습 등을 흉내 내는 단어를 사용해서 쓰면 리듬감은 자연스럽게 생긴다.


   방금 본 영상에서 반복되는 노랫말을 찾아보게 했다. 

<보여줄게>의

 "내가 사준 옷을 걸치고 / 내가 사준 향술 뿌리고,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 보여줄게 훨씬 더 예뻐진 나

너 없이도 슬프지 않아 / 무너지지 않아"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의 

"첫눈처럼 내가 가겠다 / 너에게 내가 가겠다"


   이렇게 반복되는 말을 찾아본 후에는 어떤 느낌이 들었냐고 물어봤다. 노랫말  속의 상황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데다 리듬감 까지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단다. 

수업 분위기가 좋아서 내친김에 시의 이론을 지루하지 않게 살짝 알려줬다.


   시에서의 리듬은 시인이 흥얼거리는 노래로써 음악적인 효과를 나타낸다. 시는 마음속에 떠오르는 모습이나 느낌을 도화지 위에 그려 보는 회화적 요소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것들을 활용해 시인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한다. 


스마트폰에 빠진 당신, ‘거북목’은 아닌가요?                                               © 제공: MCircle  거북목

   


   아이들이 수행평가로 쓰는 시는 주로 생활시인 경우가 많다. 생활시를 쓸 때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진실되게 써야 한다. 자신이 체험했던 일을 진솔하게 표현해야 울림이 있다. 


   좋은 시를 쓰려면 일단 좋은 시를 많이 읽는 게 우선이다. 물론 이때도 감동적인 시는 베껴쓰기를 하는 것이 좋다. 단지 감상에 머무르는 수준이 아닌 시를 잘 쓰고 싶다면 말이다. 

쓸 것이 없다며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는 아이에게 스마트 폰 많이 해서 거북목이 됐다고 했더니 울상을 지었다. 수학 학원에서 핸드폰 하다 걸렸는데 거기서도 선생님이 그랬단다. 

"아예 거북목이 되어 버렸네. 그러다 너 진짜 거북이 되겠다"라고. 선생님들은 왜 나만 갖고 그러냐고 하기에 시쓰기 좋은 소재네, 그걸로 시 쓰면 되겠다. 실제로 네가 겪은 일이니까 현실감 있게 쓰겠다고, 그런 시가 진짜 좋은 시라고 부추겼다.  


   수학 학원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줄글로 쓰게 한 다음 짧고 간결하게 정리를 했다. 수행평가의 평가항목이 수사법을 2가지 이상 활용해서 쓰되 형식이나 분량의 제한 없이 쓰는 것이었다.   


거북목

- 이00   

도처에 도사린 밀림 속 위험들
작지만 큰 담력을 지닌 인간의 생존 비법   (역설)
소박하게도 걷기였다네
걸음으로 몸에 중심추 내리고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갔다네

걷기로 안정된 상체
무게 중심 잡혀 꼿꼿하게
멀리 걸을 수 있었다네

지금은 스마트폰에 고개 숙이고
컴퓨터에 슬그머니 밀어 넣은 목
기계와 한 몸 되어 섬기다 보니
아름다운 거북목 되어    (반어)
옛날로 돌아가려 하네                                                                                                                                        



   학생들은 실제로 시를 써본 경험이 전무하다. 이러다 보니 독서 꽤나 했다는 학생들조차 힘들어한다. 생활 속에 일어나는 일이 전부 시의 소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문 기사나 뉴스나 친구들 사이에 일어났던 일도 좋은 아무튼 써보자고 구슬렸다. 글을 잘 쓰기 위한 방법은 잘 쓰려고 하지 말고 무조건 써야 되는 거라며 설득을 했다. 



https://pixabay.com/ko/photos/%EC%86%8C%EB%85%80%EC%83%81-%EC%86%8C%EB%85%80-%EC%9C%84%EC%95%88%EB%B


   위안부 소녀상 철거 문제가 때마침 신문에 이슈화 되고 있을 즈음이었다. 

위안부 소녀상의 시초는 2011년 수요 집회가 1000회를 맞으면서 국민의 성금으로 건립된 것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배상금을 지불하면서 소녀상 철거 요구가 잇달았다. 

   

   다음은 '화해. 치유 재단'의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상금을 강제적으로 수령하게 하려는 영상자료를 보고 쓴 시이다.


수요일의 소녀
-조 00
 
고향에 돌아와서 편히 발 못 붙인 아픔
긴 세월 할머니가 된 소녀의 그림자
한 맺힌 세월
절대 잊을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

오려 걸려 여명은 밝았으나 아직도 어둡기만 하네 
고생하시는 군인들
위로해드리느라
평생 안고 살아온 아픔은
그 가벼운 몇 번의 흥정에 
없던 일이 되고

그럼에도 바란다
너희들은 아프지 않기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그래서 나는 오늘로 이 자리에 선다. 


   처음의 쓴 시는 구체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도 않았다. 조금 더 구체성을 띠어 글을 쓰도록 했다. 


수요일의 소녀들
- 조 00


그리던 고국에 돌아와서도 편히 발 못 붙인 채
긴 세월 노령의 소녀 오늘도 길을 나선다 (역설)
백발의 머리에 눈발 얹어도
빗방울 저고리에 스며도
한 맺힌 세월 말하려 종로 나들이하는
할머니 소녀들
절대 잊을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


누구를 향한 위안인가
평생 안고 살아온 아픔은
깃털처럼 가벼운 몇 번의 흥정에 (직유법)
없던 일이 되고

그럼에도 소망한다
우리와 같은 아픔을 겪지 않기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도치법)


오늘도 어제처럼 이 자리에 선다




<<명문대 합격 글쓰기>>의 저자 진순희, 인사드립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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