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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드와 프로이트의 사이

고독처럼 글쓰기도 나를 만나는 행위이다

by 진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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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때 어원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개념이나 저자에 대해 관심을 기울임은 물론이다. 여태까지 프로이드라고 알고 있었던 것을 프로이트로 읽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아니 프로이드가 프로이트가 된 지는 꽤 오래됐다. 나만 몰라왔던 거였다.


포털 사이트를 검색해보니까 발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중세 독일어 d를 현대 독일어로 변환하면서 t로 됐단다. 그러고 보니까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책도 <<아하, 프로이트>>였다. 그런데도 계속 프로이드로 읽고, 말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익숙지 않아서 '프로이트'라고는 쓰지만 여전히 '프로이드'라고 읽는다. 프로이드와 프로이트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고나 할까.


그 동안 해왔던 공부를 더 확장하기 위해 심리학을 공부하는 모임에 들어갔다. 첫 달에 읽을 기본서로 <<프로이트의 의자>> 가 채택됐다. 이 책은 1. 숨겨진 나를 들여다보기, 2. 무의식의 상처 이해하기, 3. 타인을 찾아 끝없이 방황하는 무의식, 4. 무의식을 대하는 다섯 가지 기본 치유법 등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책을 읽으며 눈길은 끈 것은 방어기제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었다. 방어기제를 친절하게도 쉬운 언어로 '마음의 경호실'이라고 표현해 정신분석학에 쉽게 다가가도록 했다.


"두렵거나 불쾌한 정황이나 욕구불만에 직면하였을 때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하여 자동적으로 취하는 적응 행위"인 방어기제를 '마음의 경호실'이란 비유를 보면서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잘 숙성된 와인 같은 성숙한 방어기제가 있는 반면에 신선하지만 깊은 맛이 없는 보졸레 누보로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설명하고 있다.


책에 의하면 나를 방어하는 행위에는 "용기 없는 자의 알리바이와 같은 합리화"와 합리화와 친척 격인 "아는 것으로 풀기"도 있다. 이것은 자신의 내부를 향하기보다는 외부로 눈을 돌린다. 이를테면 자신을 들여다보기보다는 지적인 행위를 통해 되도록 불안하고 불편한 느낌을 피하고자 한다.


남들보다 호기심이 많고 지식에 목말라하고 그저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콜필드처럼 "추운 겨울이 되면 센트럴 파크 연못에 있는 오리들은 다 어디로" 가는지 궁금할 뿐이다. 단지 호기심이 많아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문화생활을 많이 하고 있는 정도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행동들이 사실은 불안하고 불편한 느낌을 회피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하니 조금은 색다르게 다가왔다.


<공부, 너는 나를 자유케 하는 열정이다https://brunch.co.kr/@nangrang77/19>에 썼듯이 책 읽고 공부하기를 즐겨한다. 공부할 때면 고요해지고 평온해짐을 느낀다. 종종 자유 속에 유영하고 있다는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보니 활자 중독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글을 읽는다. 그건데 이것이 "아는 것으로 풀기"와 같이 나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의 한 방편이란다.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로서의 공부를 한 거에 불과했다니 새삼 놀라웠다. 어떤 것에 그렇게 불안하고 불편한 느낌을 갖고 있어 나를 채찍질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중이다.

카우치에 누워서 나의 무의식 어딘가에 있을 결핍에 대해 촉수를 세워본다.


또 남에 대한 배려가 지나친 사람에게는 남에게 잔인하게 대하고 싶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편치 않은 감정이 드는 건 사실이다. 친절을 베풀고 배려를 하는 것의 무의식에는 타인에게 모질게 대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단다.


천성적으로 누군가를 만나면 상대에게 마음을 쓰게 된다. 다단계 사업을 하는 분을 만나도 집중해서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다. 여러 명이 있는 곳에서 겉도는 사람이 있으면 얼른 가서 말을 붙이고 대화에 끼도록 독려한다. 도움을 주거나 보살펴주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그것이 남에게 모질게 대하고 싶을까 봐 생기는 두려움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니 그때마다 내 마음을 좀 들여다보려고 한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방어기제도 있지만 내게는 대부분 미성숙한 방어기제에 해당하는 것이 많았다. 어찌 되었든 간에 정신분석학을 접함으로써 원하지 않는 상황에 부닥쳤을 때 어떻게 행동하고 내 마음을 다스릴지 적용하고 응용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고난도의 문제를 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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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그말인듯해 경계가 불분명한 고독과 외로움을 어쩌면 이렇게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 읽는 내내 감탄했다. 고독과 외로움의 사이는 얼마만큼의 거리일까.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이고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이라는 말처럼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자유롭기 위해서는 고독한 상태를 즐겨야 한다. 어딘가에 매임이 없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생각이 있어야 한다. 생각 없이 살면 되는대로 살게 된다고 하지 않던가. 생각하는 대로 살기 위해서라도 고독한 상태로 들어가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하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인가를 꾸준히 생각하다 보면 인간은 성장할 수밖에 없다. 서랍 정리하듯이 "마음의 책상 서랍"도 가지런히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고독은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는 바쁜 일상에 속도를 늦추게 한다. 내면을 들여다보게 해 성장하게 만든다.


내면을 성찰해 결국 참자아를 만나게 하는 것이 고독이듯이 글쓰기도 나를 만나는 행위이다. 현실 원칙에 의해서 움직이는 의식의 세계와 쾌락 원칙에 의해서 작동하는 무의식의 세계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 한다. 내면을 응시하는 나만의 고유한 글쓰기에서 무의식에 숨겨진 나를 똑바로 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 프로이트의 의자>> 의자>>는 나를 만나러 가는 긴 여정의 주춧돌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나는 항상 강해지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길을 내 밖에서 찾아왔다. 그러나 그 길은 내 안에 있다. 항상 거기에 있다"라는 안나 프로이트의 말처럼 내 안에서 찾는 것이다. 내 안에서 찾을 때 우리가 꿈꾸던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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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인상 깊은 구절


'행복 추구 문화'는 슬픔이라는 정상적 감정을 제대로 체험하지 못하게 우리를 억압합니다. 슬픔과 고통을 느낄 줄 알아야 행복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와 헤어진 후 슬프고 울적한 기분은 자연스럽게 풀어야 합니다. 슬프고 울적한 기분을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술이나 다른 무엇인가에 무리하게 기대어 그 기분을 없애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늘 행복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86쪽

성공과 행복 모두를 가지려면 평소 성공으로 가는 길을 걸어가면서 늘 내가 맺는 '관계'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관계란 사람 하고만 맺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나의 과거, 현재, 미래와 맺는 정신적 관계도 중요합니다. -116쪽

시기심은 시기하는 사람과 시기의 대상인 사람, 그 두삼이 출연하는 2인극입니다. 질투는 질투하는 삶, 질투의 대상이 된 사람, 그 사람이 서로 빼앗기지 않고 지키려는 사람이 등장하는 3인극입니다.
-162~163쪽

다른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얼마나 잘하는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내가 내 문제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그들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온통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179쪽

내면세계를 통합하고 정리하기 위해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프로이트도 화려한 사회생활보다는 소수의 친구나 동료들과 담소, 토론하거나 혼자서 생각하고 읽고 쓰는 시간을 훨씬 더 즐긴 '고독한 사람'이었습니다. -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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