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속에 꽃을 피우다
나른한 오후, 수업을 하면서 한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난 여기 오면 자유를 느껴요. 나 자신에 대해 생각도 해보고 사회가 돌아가는 일을 알고 말할 수 있어서 시민이 된 느낌이에요."
중3 여자아이의 입에서 뜬금없이 '시민'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시민이라고? 시민 단체도 아닌데...
그럼 내가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고 시민을 양성하고 있단 말인가?
아이의 말을 듣고 나서 잠시 상념에 잠겼다.
지금처럼 아이들과 함께 하는 논술교사라는 아름다운 직업을 갖게 된 데는 늘 가까이 없었던 남편의 힘(?)이 컸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달라고 애원도 하고 협박도 해봤지만 남편은 야외 촬영을 핑계로 산으로 물가로 야생마처럼 내달렸다.
시든 배추처럼 던져진 나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토요일이면 집 가까이에 있는 도서관으로 아침 일찍부터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처음으로 가족 열람실이라는 것이 생겨서 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컴퓨터를 할 수 있었다. 아빠의 빈자리를 독서라는 다른 놀이로 채우면서 시간을 보냈다. 남편이 빠진 우리들만의 끈끈한 유대감을 확인하면서 우린 늦게까지 책을 보다가 별이 뜰 때에야 내려오곤 했다.
수년 동안 반복된 다양한 독서와 문화생활은 통합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논술교사라는 직업의 밑거름이 되어 일하는 데 불편하다거나 힘들지 않았다. 책 읽는 환경을 마련해주어서인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책 읽기에 빠져들었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내 아이들과 함께 팀을 짜서 수업을 한 것이 논술교사로서의 시작이었으며, 그때가 서른아홉의 가을이었다.
<<풀꽃과 친구가 되었어요>>를 읽고는 풀꽃을 찾아서 그려보고, 한강 둔치로 나가 사진을 찍으며, 백과사전을 찾아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했다. 신문 속 미담의 주인공에게 편지도 써보면서 나라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지 아이들과 함께 생각해 보게 하는 시간도 가졌다.
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수줍게 말한다. 주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다고. 나 역시 그랬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오히려 배우는 것이 더 많았다. 교재 연구를 위해 아트 슈피겔만의 <<쥐를 읽으면서 생존을 하기 위한 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고, <<나쁜 어린이표>>를 읽곤 주인공이 되어 눈물 흘리며 책 속의 교사처럼 아이들의 세심한 감정을 놓치는 부분은 없는지 반성도 했다.
신경림의 시집 <<뿔>>에 실린 <떠도는 자의 노래>를 읽고는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려왔다.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헤매고 다닐는지도 모른다'는 구절은 두고두고 뇌리에 남았다. 헐벗었던 시절의 무의식이 뇌에 새겨진 것도 아닐 진데, 그동안 허기와 그것을 채우려는 욕망에 갇혀 있었다. 그런 나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얼음에 손을 베인 듯 쓰라렸다.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내용도 날카로웠지만 서문을 읽는 것이 묘미였다.
"샘물이 높은 바위틈에서 흐느끼고, 햇빛이 푸른 손에 차갑기만 한" 한시 속 산수의 풍경을 관악산과 도봉산에 오르면서 찾아냈을 때 필자는 벅찬 감격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러시아에서는 샘물이 바위틈에서 흐르는 것을 볼 수 없는 자연환경이었기에 한시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라 믿었다고 한다. 나 역시 북한산에 오르면서 샘물이 흐느끼는 계곡을 발견하곤 한국의 자연에 탄성을 질렀다.
시민이 된 느낌이라던 아이의 말처럼 사고가 확장되려면 유익한 정보들을 선택하고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역사, 철학, 과학 등의 기초학문을 독서를 통해 다져야 한다.
다양한 분야를 가르치는 논술 수업은 가르치는 교사뿐 아니라 가르침을 받는 학생 모두가 옳은 길을 찾도록 하는데 역량을 발휘한다. 책읽기를 통해 영혼까지 정화시켜주는 나의 직업은 높고 눈부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갖지 않았다면 긴장 속에서 책을 읽어낼 수 있었을까?
고난이 은총이라고 서러움과 슬픔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은 나를 구원해 주는 촉매로 작용했다. 가르치는 것이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도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또래 친구들처럼 다이어트에나 신경 쓰면서, 아이들을 좋은 학원에 보내기 위한 정보 수집에 혈안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자신을 추스리기 위한 노력은 직업으로 연결되어 경제적인 윤택함을 주었고 손상된 자존심마저 회복시켜 주었다. 게다가 정신적인 자유까지 가져다주었다.
불안 속에 꽃을 피운 나는 나의 일을 사랑한다. 내가 지닌 직업에 긍지를 느낀다.
나의 직업을 고귀하게 함은 물론 열정이 있는 한 이 일을 계속하련다.
그러기 위해 난 오늘도 산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