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을 치료받는 동안 많은 날을 울었지만, 가장 크게 무너졌던 날은 첫 번째 암 진단도, 두 번째 암의 재발 통보도 아니었다. 그날은 자궁경부암 수술 실밥을 뽑으러 병원에 갔던 평범한 오후였다. 나는 처음으로 내 몸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을 맛봤다. 커다란 드레싱 밴드로 꽁꽁 싸매져 있던 커다란 흉터를 처음 마주한 날, 종일 나의 눈물로 온 우주가 홍수가 날 것만 같던 바로 그날이었다.
다섯 시간이 넘는 큰 수술을 했고, 수술을 한 지 고작 2주가 되었을 뿐이다. 누구라도 실처럼 가느다랗고 깨끗한 상처를 상상할 수는 없었을 텐데, 나는 바보같이 작고 귀여운 상처 하나를 기대했다. 하지만 직접 마주한 나의 흉터는 크기와 비주얼 모두 상상을 초월했다. 배꼽 위부터 시작된 흉터는 배꼽을 뺑 둘러 물음표 모양을 그리며 몸통 끝까지 내려왔다. 후크선장의 갈고리 손이 이렇게 생겼던가? 한 뼘으로는 가려지지도 않을, 20cm는 족히 될 것 같은 커다란 수술 자국은 생각보다 징그러웠다. 피부를 따라 박음질하듯 찍힌 수십 개의 스테이플 자국은 도대체 누가 이렇게나 꼼꼼하게 봉합했냐고 따져 묻고 싶을 정도였다. 전혀 아물지 않은 채 빨갛게 부풀어 오른 이 흉터는 시간이 지난다고 조금이라도 희미해질 수 있으려나 하는 마음조차 들지 않게 했다. 이 물음표 모양의 흉터와 함께 살아내야 하는 내 인생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과연 전재할 수 있기는 한 건지, 평생을 함께해야 할 흉터를 확인하고 나는 탈의실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병원 잘 다녀왔어? 실밥도 잘 뽑았고?”
저녁이 되어 만난 나의 연인이 다정하게 물었다. 그의 눈을 마주치자마자 몇 시간이 걸려 겨우 진정시킨 눈물은 또다시 속절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난 자기에게 다신 내 몸을 보여 줄 수 없어. 흉터가 너무 끔찍하고 징그러워. 눈을 뜨고 봐줄 수가 없어.”
8년을 만난 인연이었다. 내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그이지만, 나의 상처를 보여줄 자신이 없었다. 나조차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이 상처를 그가 기꺼이 받아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암 환자가 된 것보다도, 그에게 사랑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더 무서웠다. 이 끔찍한 상처를 보면 그가 어쩌면 나를 떠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에 온 우주에 나만 혼자 버려진 것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죽어도 보일 수 없을 것 같은 끔찍한 이 상처를 과연 그가 보듬을 수 있을까?
“이리 와봐. 나한테 보여줘. 내가 한 번 볼게.”
“싫어. 절대 못 보여줘. 자기가 이 흉터를 보면 나한테 헤어지자고 할 거야.”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이리 와. 나한테 못 보여 줄 게 어디 있어. 이리 와봐.”
그에게 안겼다. 내가 속이 상해 울 때면 그는 언제나 자신 무릎에 나를 앉혔다.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매달려 안긴 듯, 그에게 안겨 울다 보면 어느새 진정되곤 했다. 언제나처럼 온몸을 떨며 흐느끼는 나를 그는 천천히 안았다. 혹시라도 수술 부위에 가까워질까 조심스럽게 나를 다독이는 그가 느껴졌다. 그가 내 몸을 볼 수 없도록 티셔츠 끝을 꼭 잡고 버텼다. 슬며시 티셔츠를 올려보려는 그의 손을 밀쳐냈다. 안된다고 울며 버티는 나를 그는 한참이나 안고 어르고 달랬다.
나의 울음이 조금씩 잦아들던 그때, 그는 조심스럽게 나의 티셔츠를 걷어 올렸다. 그의 눈을 쳐다볼 수도 없었다. 나의 상처에 끔찍함을 느끼는 그의 표정을 정면으로 마주할 자신 또한 없었다. 그때 그가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도 찍어 놓은 스테이플 자국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그가 말했다.
“얼마나 아팠을까. 우리 자기.”
가만히 하나씩 상처를 어루만져주던 그는 입술을 나의 상처 가까이 가져갔다.
“하지 마. 징그러워. 그러지 마.”
그를 애써 말렸지만, 그는 나의 만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나의 상처 모든 곳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나를 끌어안고 말했다.
“여전히 예뻐. 아름다워. 내가 사랑하는 당신 모습 그대로야. 흉터는 금방 없어져. 그러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당신을 사랑해.”
그날 그는 내 몸에 난 상처뿐 아니라 내 마음에 낸 커다란 상처마저 어루만졌다. 나는 그 사실이 정말 고마워 한참을 더 울었다. 그의 손끝에서 처음으로, 나는 이 흉터와 함께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상처는 기대했던 것만큼 빠르게 아물지도 않았고 옅어지지도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방암 수술을 하게 됐고, 양쪽 가슴 모두에 또 손가락만 한 수술 자국이 가로세로 생겨났다.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하는 흉터들에 여전히 매일 마음이 상한다. 흉터는 여전히 내 몸에 짙게 남아 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희미해지는 것인지 알 방법이 없다. 하지만 내 상처를 기꺼이 받아주고 어루만져준 나의 연인 덕분에 흉터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천천히 배워가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 롬복에 있는 길리섬에 다녀왔다.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다. 윤식당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거북이랑 유유자적 수영하던 배우 이서진을 기억해 냈다. 수영할 줄도 모르며 나도 거북이와 수영을 한 번 해보겠어, 하며 호기롭게 혼자 떠난 여행이었다. 빨간색 원피스 수영복을 챙겼다. 조금 더 빨리 러닝을 시작했었더라면 이번 여행에서 비키니를 입어볼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웠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늦어 버린 것을. 내년 여행에서 내 모습을 상상하며 떠났다.
길리에 도착해 마차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고 있는데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도착했어? 길리는 어때?”
“자기야, 큰일 났어.”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여기 사람들이 다 벗고 다녀.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없어.”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다 수영복을 입고 다닌다는 말이야?”
“응, 다 수영복인데 다 비키니야. 나 지금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있는데 나 무슨 히잡 쓴 사람 같아. 나만 꽁꽁 싸매서 이상해 보여.”
“큭. 자기도 벗고 다녀 그럼.”
“나도 비키니 하나 살까? 하. 그러기엔 아직 살이 다 안 빠졌는데.”
“사람들 다 날씬해? 서양 사람들은 몸매에 상관없이 막 벗고 다니지 않아?”
“그렇긴 해. 다들 참 자유롭기도 하다. 남의 눈 의식 안 하고 예쁜 몸매가 아닌데도 다 벗고 다녀. 아 진짜 하나 살까? 그깟 흉터 뭐 어때. 여기 아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당연하지. 비키니 하나 사서 자기도 다 벗고 다녀.”
“진짜 살까? 나 벗고 다녀?”
“이쁜 것으로 사고 사진 찍어 보내봐. 기다리고 있을게.”
나의 연인을 제외하고 누구에게도 나의 흉터를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비키니를 입어 보겠다고 러닝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비키니를 입는다는 것은 어쩐지 만질 수 없는 유니콘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름다운 몸이든 뚱뚱한 몸이든 상관없이 당당하게 자신감을 뽐내며 손바닥만 한 비키니를 입고 길리 거리를 자유롭게 걷는 사람들을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도대체 누가 나에게 비키니를 더 이상 입으면 안 된다고 했지?’
아무도 나에게 나의 흉터를 가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나를 꽁꽁 묶어 가둬둔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어두고 오던 길에 봐 두었던 수영복을 파는 가게로 향했다. 완전한 휴양지여서일까? 그곳에서 파는 수영복은 딱히 취향을 고려할 선택권조차 없는 듯했다. 내가 골라야 하는 비키니 수영복은 모두 손바닥만 하게 작았다. 20대 청춘의 나였어도 시도해 보지 못할 만큼 작고 과감했다. 내가 정말 이런 것을 입고 이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을까? 잠시 망설여졌지만,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빨간색 비키니가 있었다면 고민 없이 골랐을 테다. 기왕 큰 용기를 냈으니 세상 과감한 디자인의 비키니도 입어봤다. 역시나 무리였다. 그나마 가장 면적이 커 보이는 비키니 중에 길리 깊은 바다를 닮은 것 같은 푸른빛 비키니를 하나 골랐다. 고르고 골랐지만, 손바닥만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비키니로 갈아입고 바다로 나갈 채비를 했다. 바다까지 걸어 나가는 동안은 이집트 여행을 갔다가 사 온 휴양지용 최애 푸른색 원피스로 입어 새로 산 비키니를 애써 가렸다. 해변까지 걸어가는 잠깐의 시간에도, 몸을 꽁꽁 싸맨 것은 역시 나뿐이었다. 해변의 한적한 바에 자리를 잡고 맥주를 하나 시켰다. 맨정신으로는 원피스를 벗고 비키니 수영복 차림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것은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절반쯤 맥주를 들이켜고 나니 어쩐지 용기가 생겼다. 꽁꽁 싸맸던 원피스를 벗어 던지고 자그마한 비키니만 걸치고 일어섰다. 가만히 내려다보니 배에 난 흉터는 조금도 가려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안녕 후크선장님! 이제 전혀 상관없었다. 나는 그렇게 바다로 뛰어들었다.
5일 동안 비키니 한 벌로 길리를 누비고 다녔더니, 내 몸에는 수술 자국보다 더 선명한 자국이 남았다. 비키니가 겨우 가려주던 엉덩이만 하얗게 살아 있고, 나머지 피부는 죄다 초콜릿색으로 바싹하게 구워져 있었다. 등에는 비키니 끈 한 줄이 겨우 가려준 하얀 살이 고속도로 마냥 가로로 길게 남아 있었다. 계속 웃음이 나서 그 모습을 찍어 그에게 보냈다.
“와, 자기 진짜 벗고 다녔네! 한국 돌아오면 나에게도 보여줘! 나도 직접 보고 싶어!”
크리미널 마인드라는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있다.
“흉터는 우리가 지나온 길을 보여줄 뿐, 앞으로의 길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나는 한동안 감추기 힘든 흉터들이 내 인생을 결정지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흉터는 숨겨야 하는 과거가 아니라, 내가 살아낸 시간의 가장 선명한 기록이라는 것을. 한국에 돌아가면 새빨간 비키니를 하나 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