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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안식처

정제의 쉼, 첫 번째 이야기

by 난주

아기가 목을 가누는 모습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엄마 아빠 품에 안겨 있던 아기는, 제 목에 힘이 들어가자마자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합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을 작은 눈동자 속에 가득 담겠다는 의지로 부지런히 고개를 움직이죠.


진정한 쉼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도 아기처럼 곁을 보아야 합니다.

시간을 들여 몸과 마음을 다독였으니 이제 정성을 들여 삶을 돌아보고 정비해야 합니다.


저는 이 과정을 정제의 쉼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단순히 주변을 정리하는 것을 넘어 우리 삶의 불순물을 솎아내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겨 여백을 되찾는 것, 그것이 제가 바라는 두 번째 쉼의 모습입니다.



요즘 저는 집을 정제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쉬려면 마음 놓고 몸을 누일 수 있는 편안하고 따뜻한 공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집은 제법 깔끔하고 안락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마치 인적이 드문 대합실처럼 황량함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럴 만도 죠. 벌써 수년째 저에게 집은 잠깐 들러 밥만 먹고 잠만 자는 간이역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여유 시간이 생기고 몸과 마음도 조금씩 회복되면서 집이 다시 보였습니다. 곳곳에 숨어있는 알 수 없는 물건들, 자질자질한 때가 끼어있는 모서리와 구석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5년 전 마지막으로 활약한 유아용 자전거.

누런 날개를 더 이상 돌리지 못하는 선풍기.

유행이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스팽글 원피스.

코팅이 벗겨져 소생이 불가능한 프라이팬.

뽑기 기계를 능가할 만큼 쌓여있는 인형들.


쓰지 않는 물건들을 잔뜩 찾아냈습니다. 가족들 사이에서 '버리기 여왕'으로 불릴 만큼 필요 없는 물건은 바로 처분하는 저인데 어찌 된 일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재활용 쓰레기장을 세 차례 왕복하며 78kcal를 태우고, 당근**에 판매글과 나눔글을 도배하여 매너온도를 0.3도쯤 올린 끝에 집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햇빛이 유난히 화창하던 날에는 청소솔과 극세사걸레를 꺼내 들고 대청소에 나섰습니다. 까맣게 변한 창틀과 방충망을 빡빡 문질러 닦고 기름때로 끈적끈적해진 주방 레인지후드를 말끔히 씻어냈습니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어여쁜 모양새를 보니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체증이 쑤욱 내려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불순물들을 비우고 그 자리에 잃었던 온기와 생기를 채워 넣고 싶었습니다.


초록빛 나무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널따란 거실창 앞으로 식탁을 옮겼습니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나면 그곳에 앉아 계절의 변화를 관찰하며 글을 쓰고 차를 마셨습니다.


바닥에는 폭신한 러그를 깔고 구석에 밀어 뒀던 작은 소파를 당겨 앉았습니다. 딱 한 사람만 수용할 수 있는 조그마한 쿠션에 엉덩이를 붙이고 발바닥으로 러그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며 저만의 독서를 즐기는 시간이 참 행복했습니다.


아이와 제가 그린 그림들을 빈 벽에 전시하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 냉장고에 붙여 놓았습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들로 마음이 심란해질 때면 가만히 벽을 바라보고 냉장고를 응시했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이 쓴 <풀꽃>의 한 구절처럼 저의 집도 그러했습니다. 세상을 처음 보는 아기처럼 애정과 관심을 담아 찬찬히 바라보고 돌봐주니 살가움과 따스함이 돌아왔습니다.


언젠가 다시 일을 시작하면, 집은 또다시 간이역이 될지도 모릅니다.

냉장고 천장에는 먼지가 쌓이고, 쓰지 않는 물건들은 늘어나겠죠.


하지만 장시간 동안 정리정돈을 하고 마음을 써서 단장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집에 대한 진정 어린 관심과 애정만 있다면 그는 기꺼이 우리를 기다려 줄 것입니다.


눈과 비를 온몸으로 막아주고

어떤 모습이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삶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함께 해주는

집은 우리에게 작은 안식처니까요.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맞으며, 저는 오늘도 집에서 쉼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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