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적 괴롭힘에 대한 다짐
공원 벤치에 앉아 있던 그를 보았다.
목을 뻣뻣하게 치켜들고 직원들을 향해 고함치던 거만한 사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깊게 파인 주름들 사이로 회한이 묻어나는 초라한 행색의 아저씨만 남아 있었다.
세상의 때가 미처 묻지 않았던 시절,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던 그가 공금 횡령으로 한순간에 추락하는 것을 목격했다. 선망의 대상이자 두려운 존재였던 고위 임원이 한순간에 범죄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은 사회초년생이었던 내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비슷한 상황을 여러 차례 마주해야 했다.
근무지가 바뀌고 함께 일하는 사람도 바뀌었지만, 법까지 넘으며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는 자들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주변 지인들도 유사한 고민을 털어놓는 것을 보며, 직장이란 생각보다 은밀하고 위태로운 곳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된 기사를 검색하거나 교육을 수강해 보면 불법적 괴롭힘에 대한 내용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관련 사례가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인 기록에서는 그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아마도 조직 입장에서는 그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 자체가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축소하고 은폐하며 증거를 지우는데 몰두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심각한 피해를 입은 이들은 대개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떠나가곤 했으니, 불법적 괴롭힘은 목격자는 있지만 단서는 없는 미제 사건처럼 흩어졌을 것이다.
법은 누구도 예외 없이 엄수해야 하는 기본적이고 절대적인 원칙이다. 그러나 직장은 때로 그 원칙이 가장 쉽게 흔들리는 곳이기도 하다.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는 곳.
강자와 약자가 명확하게 갈리는 곳.
더 가지기 위한 싸움이 끊이지 않는 곳.
직장은 어찌 보면 현대적인 조직이라기보다 원시적인 정글에 가깝다. 계열사만 수십 개에 이르는 대기업이나 전 직원이 열 명도 안 되는 영세업체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본질은 닮아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법을 넘는 괴롭힘은 제대로 규명되기 어렵다. 가해자가 높은 위치에 있을수록 조직은 침묵하고 피해자는 떠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국 책임져야 할 사람은 남고 상처 입은 사람만 내몰리는 기묘한 질서가 반복되는 것이다.
불법을 밝히고자 감사실을 찾았던 이 대리나 씻기 힘든 고통을 받고도 살아남으려 애썼던 민혜 씨에게는, 그것이 최선이자 유일한 자구책이었을 것이다.
주변에서는 말한다.
정식으로 신고하라고, 공공기관의 도움을 받으라고, 변호사나 노무사를 찾으라고.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길을 택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고되고 외롭다. 불법적 괴롭힘은 모두가 그 심각성을 인정하지만 정작 증거를 모으는 과정부터 벽에 부딪히기 쉽다.
때로 직장은 지원군이 아니라 또 다른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지난한 대립 과정은 시작부터 피해자의 피를 말린다. 특히 이 대리나 민혜 씨처럼 피해자가 사회 경험이 부족하고 취약할수록 과정의 험난함은 더해진다.
더 이상 이 대리나 민혜 씨와 같은 피해자가 없기를 바란다.
우리를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으로서 법이 굳건히 지켜지기를 바란다.
모든 직장 내 괴롭힘이 근절되어야겠지만 최소한 법을 넘는 행위만큼은 용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누군가의 마음이나 경력에 상처를 입히는 것을 넘어 사회 전체의 안전망을 위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조직과 권력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생계를 책임지고 사회 발전에 공헌하는 조직.
오랜 경륜과 지혜를 바탕으로 올바르게 행사되는 권력.
그것은 더없이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조직과 권력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 그것은 한 사람이 겪는 아픔을 넘어 공동체 전부를 병들게 한다.
우리의 직장이 최소한의 법이 지켜지고, 최소한의 존엄이 보호되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그 작은 원칙들이 고수됨으로써 우리는 지치지 않고 직장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직장을 만드는 출발점으로서, 나부터 법을 넘지 않고 불법적 괴롭힘에 눈 감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