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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의 쉼, 두 번째 이야기

by 난주

페르시아의 왕자를 아시나요?

이렇다 할 무기도 없이 족저근막염이 올 만큼 뛰어다니던 왕자를 공주에게 데려다 주기 위해, 키보드를 현란하게 두들겼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너구리는 기억하세요?

앙증맞은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식탐이 넘치던 녀석에게 과일을 먹이겠다고, 사다리를 백 번은 넘게 오르내렸던 것 같습니다.


스트리트 파이터는 또 어떻고요.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 상대방이 공중제비를 넘으며 쓰러질 때마다 화면을 선명하게 채우던 YOU WIN이라는 자막은 아직도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게임 잘 안하실 것 같아요.

게임을 좋아하는 관상은 따로 있는 것인지 저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자주 그런 말을 건네지만 저는 게임을 무척 좋아합니다. 아이가 생긴 후로는 모바일 퍼즐 게임 정도만 가끔 하지만, 사실은 RPG와 대전격투가 최애 장르인 오래된 유저입니다.



그러나 이번 휴직 기간에는 게임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게임과 거리가 필요했기 때문이죠.

그러다 우연히 오락실에 가게 되었습니다.

동네 골목마다 있던 작은 가게들은 많이 자취를 감췄지만 대학가에는 아직 오락실이 남아 있었습니다. 정겨운 아케이드 게임기와 빨간색 가죽이 덧대어진 철제 의자도 그대로였습니다.


아이와 친구들, 그들의 어머니들과 동행한 터라 처음에는 구경만 했지만 점점 손발이 근질거렸습니다. 우아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고수해야 한다는 생각도 잠시,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펀치 게임기에 동전을 넣고 있었습니다. 우연히라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퇴사유발자를 떠올리며 샌드백을 향해 힘차게 주먹을 날렸습니다.


그때부터는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어 게임을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격투 게임이 없어 아쉬웠지만 대신 사격으로 몸을 푼 후 운전 게임을 통해 죽음의 코너링을 만끽했습니다. 대학생 때는 민망한 마음에 피했던 댄스 게임에도 몸을 실었습니다. 저의 허술한 발재간에 경악할까 걱정했던 어머니들도 다행히 동참해 주셨습니다.


인형 뽑기에 피 같은 현금 4천 원을 갈취당한 후 격동의 오락실 탐방은 막을 내렸습니다.



사실 어린 시절 저는 맘 놓고 게임을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많은 부모님들은 오락실을 불량한 곳으로 여기셨고, 저희 부모님도 딸을 염려해 오락실 출입을 금하곤 하셨죠. 문방구 앞에 있던 조그마한 오락기에 매달려 한두 판씩 몰래 하긴 했지만 게임을 실컷 할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이와 함께 곧잘 게임을 합니다.


한밤중에 PC로 혼자 게임을 즐기던 시절은 지났지만, 아이의 연령대에 맞는 게임을 골라 함께 즐기며 공동의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 아이가 유년 시절을 회상할 때 엄마와 함께 즐겼던 게임들이 즐거운 추억으로 떠오르기를 기대합니다.


여러분도 자신만의 페르시아 왕자와 너구리를 찾아 과거의 즐거운 기억을 소환하고, 현재의 스트레스도 날려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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