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주의 라면단상

환오 작가님, 면발은 제가 이어받겠습니다.

by 난주

브런치에서 제안을 받는다면, 강연이나 집필 의뢰가 대부분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경우, 일단 제안하기는 거의 오지 않는다. 그 사이를 뚫고 이따금씩 등장하는 소수의 메일 중 80%는 동료 작가분들의 반가운 인사. 그리고 10%는 광고성 의뢰. 나머지 10%는 나의 업력에 대한 요청을 가장한 물음이다.


그런데 며칠 전, 아직 얼굴을 대면하진 못했지만 이상하게 내적 친밀감은 높은 '환오' 작가님으로부터 반가운 제안이 도착했다. <라면단상>이라는 릴레이 글쓰기에 참여해 달라는 메일이었다.


일단, 기분이 좋았다.

팔로워가 1,000명이 넘는 환오 작가님이 나를 친히 선정하여 주신 것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라면이라는 주제에 대한 애정이 봄 벚꽃마냥 마구 피어났다.


단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면 릴레이 글쓰기의 제목이 <OO의 라면단상>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내 이름을 스스로 부르거나 기재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자기소개에서 '저는 OOO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제외하고, 젊은 시절 연애할 때도 "OO는 라면이 좋아, 오빠는?"과 같은 애교를 단 한 번도 행해보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은 용기를 내어 내 이름을 애정하는 라면 앞에 붙여본다. 난주의 라면단상... 역시 안 되겠다. 빨리 넘어가자.


나는 컵라면과 한강라면을 사랑한다.

환경보호에 관심이 적지 않고 건강에도 신경을 쓰는 편이지만 라면을 먹을 때만큼은 일회용 용기에 물을 바로 붓는 것을 선호한다. 펄펄 김이 나는 용기 뚜껑을 나무젓가락으로 눌러놓고 2분 50초쯤 기다린다. 3분을 기다리라고 하지만 나는 꼬들면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반찬으로는 주로 잘 익은 김치를 곁들여 먹는다.

아기새는 김치 사발면에 또 김치를 얹어먹냐고 하지만 나는 확실한 것을 좋아한다. 김치 사발면에는 반드시 김치를 얹어줘야 맛이 배가된다.


국물은 무조건 드링킹이다.

숟가락을 사용하는 것은 컵라면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라면은 건더기만 건져 먹어요. 그래야 붓지 않거든요." _ 눈부신 미모를 자랑하는 여배우가 라면 먹고도 붓지 않는 방법을 친히 알려주었지만 나는 국물을 포기할 수 없다.


장소 중에서는 한강편의점 앞 플라스틱 테이블과 수영장 간이테이블을 가장 좋아한다. 강바람을 맞으며 걷다 먹는 라면, 물에 들어갔다 나와 먹는 라면은 그야말로 꿀맛이라는 진부한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그래서 나는 맥주병이지만 물을 보면 일단 몸을 적시고 나오곤 한다.


누군가가 소고기와 라면 중 오늘 저녁 메뉴를 고르라고 하면 당연히 소고기를 고르겠다. 소고기는 소고기니까.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 나 자신을 혼자 돌아보는 시간을 더욱 따뜻하게 데펴 주는 것은 소고기가 아니라 컵라면이다. 적적한 마음을 달래주는 뜨끈한 국물. 입 안을 가득 채워주는 탄력 있는 면발. 언제 먹어도 예측 가능하고 요리에 실패할 염려도 없는 컵라면은 내가 생각하는 지구 최고의 발명품이자 K푸드의 최강자다.


매주 일요일 오후.

나는 가족들과 함께 컵라면을 먹는다. 그것은 매일 요리하느라 지친 나를 위한 소소한 보상이자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즐기는 우리 집의 작은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두서없는 나의 글이 '단상'이라는 단어의 힘을 빌어 따스하게 전달되기를 바라보며, 나는 오늘도 김치 사발면 뚜껑을 뜯는다.




특별한 릴레이 글쓰기를 시작해 주신 미스블루 작가님과 꼭 한 번 뵙고 싶은 정다운 환오 작가님께 감사를 드리며, 두 분이 써주신 격조 있는 라면 단상을 함께 붙여봅니다.


그리고 다음 주자는...!

잠시 후 브런치 제안하기로 공격 들어가겠습니다.

생각나는 대로의 단편적인 생각

https://brunch.co.kr/@jooyoung26/153

https://brunch.co.kr/@yjchoichoi/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