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부터 임원까지, 공공기관부터 사기업까지 모든 면접에서 동일하게 등장하는 질문은 스트레스 관리에 관한 것이다. 지원 동기나 업무 경험, 장점과 단점을 주제로 한 다른 단골 질문들도 있지만 스트레스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은 내가면접관 혹은 지원자로 참여한 수십 차례의 면접에서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현대 사회의 직장은 스트레스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과업은세분화되어 있고 고용 형태는 다양하며 몹시 다양한 사람들과 복잡다단한 구조를 형성하며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새로운 지식과 기술의 흐름에도 유연하게 적응해야 하며 사내 정치를 중심으로 한 모함과 간계, 견제에도 효과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한낱 인간일 뿐인 우리가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스트레스는 필연적으로 생길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이 스트레스가 개인적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것은 물론 직장 생활의 근간까지 훼손한다는 것이다. 차곡차곡 누적된 스트레스는 임계점을 넘으면 미친듯이 끓기 시작하며 한 사람의 육체적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 업무 역량을 떨어뜨리고 판단 능력과 대인관계 능력에도 문제를 야기시킨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직장 내 스트레스는 강한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제한된 공간에서 동고동락하는 직장 생활의 특이성으로 인해, 거미줄처럼 긴밀하고 세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업무적 특성으로 인해 우리는 동료의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바로 옆에서 과다한 스트레스로 고통 받으며 망가져 가는 동료를 보고 있자면 우리 역시 불안감, 죄책감, 무력감 등 부정적인 감정을 동반한 또 다른 스트레스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이는 장기적으로는 조직 문화를 와해하는 요인으로번지기도 하며 때로는 언론을 떠들썩하게 장식할만큼 끔찍한 사건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결국 스트레스는 직장 생활에서 가장 위험한 요소이며 이를 잘 해소하고 극복하는 인재야말로 조직 문화에 꼭 필요한 요소이기에 모든 면접관들은 오늘도 이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과연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모두 감당하고 긍정적인 조직 문화 형성에까지 기여하는 게 영속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아니 그보다 현실적인 시각에서 우리는 자신이 받는 스트레스의 정체를 바로 알고 제대로 대응하고 있을까?
면접장에서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자신이 스트레스를 좀처럼 받지 않는 성격이며 혹시 받더라도 빨리 털어버린다고 대답한다. 스트레스 해소 방법으로는 예전에는 독서나 술자리가, 최근에는 명상이나 운동이 자주 언급되는 듯 하다.
그러나 나의 경험상 스트레스를 좀처럼 받지 않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직무 특성상 한 달에도 수십 명의 사람을 만나고 지켜보지만 스트레스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공정하게 영향을 미친다. 다만 똑같이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유난히 빨리 털고 일어나는 사람들은 있다. 이것은 천성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노력과 경험에 기인하기도 한다.
나는 천성적으로 스트레스에 민감한 사람이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안정되고 차분해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사회초년생 때만 하더라도 이런 기질 때문에 밤마다 이불킥을 하곤 했다.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는 선배들을 따라 명상을 해보고 여행도 가보고 매운 음식까지 먹어봤지만 나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명상을 하려고 눈을 감으면 스트레스를 준 상사의 얼굴만 떠올랐고 탈출구가 되어야 할 여행은 준비 과정부터 과업으로 여겨졌으며 오랜만에 섭취한 매운 음식은 장염을 유발해 진을 빼놓았다.
결국 나는 수차례의 모방이 허사로 돌아가고 나서야 스트레스를 받는 요인과 정도가 저마다 다르듯 푸는 방법도 저마다 달라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나에게 맞는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거듭한 결과 몇 가지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고유한 해소법을 찾아야 하기에 여기서 나의 해소법을 공유하거나 추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기 위해 내가 겪었던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여러분들은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가지 요령을 나누고 싶다.
우선, 스트레스 해소법은 언제든지 손쉽게 시행 가능한 것이 좋다. 직장은 스트레스를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공장과 같아서 언제나 우리의 예상보다 빈번하고, 과다하게 스트레스를 전해주기 때문에 해외여행이나 한 달 살기처럼 즉각적인 실행이 쉽지 않은 해소법은 우선순위에서 조금 미뤄두는 것이 좋다. 해외여행보다는 국내여행, 한 달 살기보다는 1박 2일 주말여행처럼 현실 속에서 쉽게 실행 가능한 해소법이 우리에게는 더욱 유용할 것이다.
두 번째, 스트레스 해소법은 큰 돈이 들지 않는 것이 좋다. 평생 돈 걱정이 없는 분들은 예외겠지만 우리 대부분은 스텔라 장의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이라는 노래에 공감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쌓이는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풀어주려면 현명한 고민이 필요하다. 산책하기, 서점가기, 보드게임하기처럼 큰 돈이 필요하진 않지만 소소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나만의 코스를 개발해야 한다.
세 번째, 스트레스 해소법이 또 다른 스트레스의 유인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폭식을 했는데 이것이 비만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이는 더 이상 스트레스 해소법이 아니라 스트레스 유인책이라 할 수 있다. 스트레스 해소법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좋은 스트레스 해소법 중 하나는 바로 운동이다. 운동은 그 방법과 종류가 매우 다양해서 선호에 맞는 것을 고를 수 있고 반복적으로 수행하다 보면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몸과 마음의 건강까지 가져다주는 일거양득의 해소법이라 할 수 있다.
네 번째, 스트레스 해소법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좋다. 마음에 맞는 동료나 친구와의 술자리나 티타임은 상당히 효과적인 해소법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맞는 동료나 친구를 불러내는 일은 녹록치 않다. 가정이 생기고 책임져야 할 대상이 늘어나면 저녁 시간을 비우는 일이 맘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시회 관람이나 영화 보기처럼 혼자 할 수 있는 해소법이 반드시 하나 이상은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스트레스 해소법은 계속 변화해야 한다. 태어난 지 100일 된 아이가 있는 부모가 스트레스를 풀러 심야 영화를 보러 나갈 수는 없다. 책임은 커지고 체력은 떨어진 50대 임원이 밤새워 친구들과 술자리를 즐기긴 힘들다. 나의 신념이나 믿음에 관한 활동 외에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상황의 변동에 따라 이에 맞는 해소법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나가야 한다.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안겨 주고 그 해소법까지 스스로 고민하게 하는 직장 생활이 때론 억울하고 지칠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직장 생활에서 스트레스는 미워 죽겠지만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원수 같은 짝꿍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그 짝꿍을 잘 어르고 달래서 집으로 돌려 보내는 것 밖에 없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