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게는 학교 선배부터 멀게는 연예인까지 누구나 한 번쯤은 동경하고 좋아했던 대상이 있을 것이다.
직장에도 수많은 짝사랑이 존재한다.
의사결정능력이 뛰어난 팀장, 업무를 잘 알려주는 고마운 사수, 매사 성실한 신입사원을 향한 짝사랑이 상당히 빈번하게 피어나고 진다.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동고동락하며 다양한 모습을 목격하는 사이에 친밀한 감정이 생겨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가끔 짝사랑을 맞사랑으로 승화시켜 수줍게 청첩장을 내미는 커플을 보면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짝사랑의 대상이 직장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직장에 대한 소속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성실하게 업무에 임하는 것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견지해야 할 자세이다. 나아가 직장에서 수십 년간 자리를 지키거나 임원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진심이든 가식이든 직장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표명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 이상의 맹목적 애정과 신뢰를 직장에 보내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직장을 향한 짝사랑은 절대 이뤄지지 않으며 언젠가는 우리에게 허망함과 배신감을 안겨줄 것이기에,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직장에 대한 짝사랑을 자제해야 한다.
직장은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연인과 같다.
너무 만나고 싶은 마음에 인적사항은 물론 관심사와 이상형까지 철저하게 조사한 끝에 결국 교제를 시작했지만 무엇을 주어도 당연하게 여기는 나쁜 연인 말이다. 다행히 데이트 비용은 분담하고 가끔 예상치 못한 선물도 주지만 어쨌든 우리가 몸과 마음을 다해 정성으로 바치는 사랑은 당연시하고 이를 넘어 우리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때로는 가스라이팅을 통해 우리를 교묘하게 지배하려 하고 지친 우리가 다른사람을 만나 이별을 통보하면 저주를 퍼붓거나 매달리는 등의 추한 행동도 보이곤 한다.
한 마디로 현실에서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전형적인 나쁜 연인의 예가 바로 직장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를 직장으로부터 고통만 받은 피해자 또는 직장에 정착하지 못해 겉도는 부적응자처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와 반대이다.
지난 20년 간 이어져 온 나의 직장 생활은 내가 가진 능력이나 인품에 비해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진상 상사들의 수시 출몰과 계열사 전배, 개인적 건강 이상 등 예기치 못한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그래도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대기업 입사를수 차례나 경험했고 업계에서 이름난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기회도 여러 번 있었다. 나를 지지하는 많은 선후배들과 동료들을 얻었고 조직을 꾸리고 성과를 관리할 수 있는 리더의 권한도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그간 몸담았던 모든 직장들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고맙게 생각한다. 아직도 그들의 상품을 우선적으로 구입하고 주식도 사 모을만큼 응원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내가 처음부터 그들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나도 진심을 다해 사랑했다. 그러나 직장에 대한 나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우리의 관계는 뒤틀렸다. 오히려 조금은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거리를 유지할 때 우리의 관계는 가장 건강했다.
짝사랑은 일방적이다. 한 사람은 상대를 갈망하지만 다른 사람은 상대가 버겹다. 물론 짝사랑이 맞사랑으로 발전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일 경우에만 해당된다.
직장은 우리와 연애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들은 우리가 가진 역량과 경험, 때로는 배경과 조건이 마음에 들어 교제를 시작했지만 연애가 아닌 동료로서의 담백한 관계를 지향한다. 그들이 원하는 교제의 방식은 서로 가지고 있는 것을 주고 받으며 성장하는, 명확하지만 감정은 배제된 깔끔한 관계이다.
이것을 모르고 무조건 직장을 미화하고 집착하며 의지할 경우 우리는 함께 가고 싶은 탐나는 인재가 아니라 떨쳐내고 싶은 부담스러운 잉여 인력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것은 직장이 아니라 업무이다.
직장과는 우호적이지만 지나치게 친밀하지는 않은 관계를 적당히 유지하고 업무에 남은 열정과 애정을 듬뿍 쏟을 때 우리의 업무 역량은 신장되고 성과와 인정은 따라올 것이다.
간혹 공정하지 못한 처사로 인해 업무에 쏟은 우리의 사랑이 제대로 헤어려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향상된 업무 역량은 고스란히 남을테니 헛일은 아니다.
풋풋한 짝사랑은 때로 아름답다. 모태솔로는 때로 귀엽고 애틋하다.
그러나 직장 생활에서만큼은 연애 고수와 같이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을 현명하게 분별하고 불필요한 감정적 소모를 배제했으면 한다.
직장과는 적당히 사이좋은 동료처럼, 업무와는 친밀한 연인처럼 거리를 조절하며 우리의 직장 생활을 현명하게 가꿔 나간다면 때로 직장이 숨겨진 결점을 드러내어 우리를 공격하더라도 배신감에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