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물살의 움직임에 따라 좋은 경험과 나쁜 경험을 축적하고 때로는 급류에 휩쓸려 좌초되기도 한다. 아주 가끔 해수면이 잔잔할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크고 작은 물살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우리를 몰아치는 경우가 더욱 많다.
쉴 새 없이 돌변하는 바다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조건 버텨야 한다. 아무리 수영 실력이 뛰어나고 체력이 좋아도 태풍이나 해일이 몰려오면 무력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에겐 버티는 것외에는 답이 없다.
버티는 자가 승자라는 말은 적어도 직장 생활에서는 통용되는 진리이다.
그러나 바다거북도 산란 시에는 육지로 나오는 것처럼 바다에서 반드시 나와야 할 때가 있다. 오랫동안 몸 담고 있던 직장을 떠나 새로운 둥지를 트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무조건 움직여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내 인생의 근간이 흔들릴 때이다.
상사의 괴롭힘이나 동료의 배신, 후배의 하극상 모두 괜찮다. 배울 것이 없거나 회사의 상황이 나빠져도 괜찮다. 승진에서 밀리거나 한직으로 좌천되어도 괜찮다. 이 모든 것들을 내가 감당할 수만 있다면 다 괜찮다.
그러나 이보다 작은 괴로움이라고 하더라도 나의 인생을 좀먹기 시작하고 인생의 즐거움이나 희망을 모두 앗아간다면 그 때는 출구를 찾아 빠져 나와야 한다.
그릇마다 담을 수 있는 양이 다르듯이 사람은 수용할 수 있는 아픔의 크기나 종류가 모두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누군가에게는 더 없는 괴로움일 수 있다. 이런 차이를 무시하고 나 자신에게, 또는 타인에게 무조건 버티기를 강요할 경우 우리는 익사할 수 있다.
퇴사에도 좋은 퇴사와 나쁜 퇴사가 있다. 두 가지를 가르는 유일한 기준은 최선을 다했느냐이다.
심사가 뒤틀려서 홧김에, 대안은 없지만 이 길이 내 길이 아닌 것 같아서, 승진에 누락된 게 민망해서와 같이 단기적인 감정이나 사고에 의해 아무 준비 없이 퇴사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오랜 기간 갖은 노력을 해왔음에도 감정적으로 너무 피폐해져서, 지금 하는 일보다 나에게 더 적합한 일을 찾고 그에 대한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해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계속 냈음에도 불구하고 상사의 악의적인 판단에 의해 승진에 거듭 누락되었을 경우에는 퇴사하기를 권한다.
위와 아래의 사례는 얼핏 보면 원인과 양상이 유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퇴사의 결과는 확연하게 다를 것이다. 나의 한계치까지 노력과 시간을 쏟아붓고 심사숙고하여 결정한 퇴사는 실패하더라도 후회가 적고 귀한 교훈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순간적인 판단으로 명확한 대안도 없이 급하게 결정한 퇴사는 그 순간에는 호기롭고 시원한 해방감을 가져다 줄 수 있으나 결국 큰 후회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우리가 견딜 수 있는 괴로움의 정도와 종류가 전혀 다르듯이 우리를 바다에서 건져 줄 출구의 모양도 모두 다르다. 그러나 그 출구에 도달하기까지 우리의 한계치만큼 노력을 다해야 결과가 좋다는 사실은 모두 동일하다.
바닷물이 턱 밑까지 찼음에도 버티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직장 생활은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 삶을 해치게 놓아둘 정도로 절실한 것은 아니다.
바닷물이 고작 나의 발목 주위로 찰랑거릴 뿐인데 겁을 먹고 달아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직장 생활에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버팀이 필요하다.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가 가장 취약한 부분을 먼저 파악하고 견딜 수 있는 정도를 수시로 가늠해야 한다. 낮은 온도에 유난히 몸이 떨리는지, 해수면 상승에 겁을 집어 먹는지, 수영에 자신이 없는지와 같이 나의 약점을 파악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견딜 수 있는 한계치는 어느 정도인지, 노력을 통해 이를 극복하거나 개선할 수는 없는지 수 차례 고민을 거듭해야 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최선을 다해 수행했다면 출구는 우리가 그리지 않아도 눈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 출구가 전배가 될 지, 휴직이 될 지, 이직이 될 지, 전업이 될 지, 퇴사가 될 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는 최선의 노력 끝에 자신에게 가장 적합하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